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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엘 Jan 29. 2024

수험생이 된 세 아이의 엄마

#번역대학원 도전기 #마흔 #동기부여

"공부하라고 판깔아줄 때는 뭐 하다가 지금 아이들이 가장 나의 손을 필요로 할 때 이러고 있냐, 한심하다...

마흔에 멈출 것인가, 마흔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40대가 가장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그 기반이 닦여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이게 강하고, 이게 약하고. 이걸 좋아하고, 저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이 키워보니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알겠고. 그래서 돌고 돌아 이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일 십 년 하고, 육아 십 년 하고.

어느새 인생의 중간지점.

마흔 살의 수험생, 가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들: 찍히고 있는 거야?

엄마: 어. 옆으로 와. 같이 찍자, 우리 아들.

조엘: 그래, 같이 찍자. 엄마의 도전이 너무 멋지잖아!

엄마: 우리 아들이 매일 밤 기도해 줘요. 엄마 1등 하게 해달라고.


세 아이를 챙기는 것만 해도 24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끓었다. 과거를 향한 후회일 수도, 미래를 향한 조바심일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원동력이었다.


살아온 만큼 살아가야 하는 나이, 마흔. 이제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같다. 


조엘: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가을: 언론 홍보일을 십 년 정도 하고, 세 아이를 낳아 키운 지 십 년 됐어요. 앞으로의 십 년은 제2의 커리어를 개척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공부를 하고 있고요. 언론 홍보일을 하면서 번역 일도 드문드문했었는데 좀 더 깊이 있게 잘하고 싶고, 출판이나 문학 쪽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싶거든요.


조엘: 아이 키우면서 공부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가을: 너무 힘들죠. 공부하라고 판깔아줄 때는 뭐 하다가 지금 아이들이 가장 나의 손을 필요로 할 때 이러고 있냐, 한심하다, 이런 생각도 종종 해요. 반대로 애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답니다. 애들이 있으니까 해봐야겠다는 의지도 강렬해지고. 아이들이 진짜 많이 응원해 주거든요. 매일 저녁마다 우리 엄마 1등 하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엊그제 가족들끼리 모여서 얘기하다가 제가 이런 얘기하니까 모두 웃으면서 이 집은 거꾸로 돼서 입시생이 엄마네. 애들이 백일기도를 하고, 하시더라고요.


엄마의 도전은 아이들에게 생명력 넘치는 모델이 된다. 목표를 세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꿈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엄마의 등너머로 인생을 배운다. 삶의 지혜가 뼛속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꽃같이 젊던 그때, 이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을: 종종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좀 더 일찍 결정해서 번역가가 됐으면 좋았을 걸 그런 후회는 없어요. 오히려 이런 것들을 밟아왔기 때문에 지금 하고 싶은 열망이 크고, 한자라도 더 공부하고 싶고, 알고 싶은 열망도 최고조에 와있는 것 같고요. 40대가 가장 많은 것을 이룰 수 있고, 그 기반이 닦여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반이라는 게 객관적인 게 아니라 차곡차곡 경험치를 쌓고, 그러면서 시행착오도 겪어보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잖아요. 나는 이게 강하고 이게 약하고, 이걸 좋아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이 키워보니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도 알게 되고. 그래서 돌고 돌아 이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엄마는 그렇게 마흔이 되어서야 길을 찾았단다. 엄마의 뒤늦은 성장은 아이들이 마흔을 찾아가는 길에 겪을 공허함을 채워줄 것이다.



불확실한 길. 

누군가는 말한다. 

번역가가 사라지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마흔에 찾은 꿈에도 어김없이 걸림돌은 있다. 

하지만, 엄마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걸림돌이 결국은 징검다리가 된다는 걸.


가을: 저도 재밌었던 게 챗 GPT 나오고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1위가 번역이고, 2위가 언론홍보더라고요. 제가 했던 일과 제가 앞으로 할 일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는데, 저는 궁극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차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일을 뺏기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느낌이나 감정이나 인문학적인 것들은 더욱 사람의 손길이나 감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조금 더 깊이 파고드는 게 중요한 시기 아닐까요. 저는 번역 공부하는 데 있어서는 단순하게 이걸 자격시험처럼 따서 취직 수단으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 내가 좀 더 깊어지고 싶기 때문이거든요. 이 단어를 이 단어로 옮기는 것, 이 사람의 이 표현을 저렇게 옮기는 작업에 깊이 빠져서 해보고 싶어요. 그런 열망이 크니까 공부하는 데 있어서는 큰 영향은 없어요. 



남과 비교하던 이십 대를 지나, 사회가 요구하는 '나'로 살던 삼십 대를 거쳐, 마흔의 나에겐 '나'다움이 있다.


가을: 제가 실력이 많이 쌓인다면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텍스트와 작품을 한국어로 알리고 싶어요. 그게 조금이라도 약자의 편에 있는 이야기, 꼭 알려져야 할 가치 있는 이야기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이 있고요. 큰돈이 안되더라도 가치 있는 작업이라면 너무 행복할 것 같고. 그게 제 손에 주어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실력을 쌓겠습니다. 파이팅!


파이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해방'이다. 

활짝 핀 가을의 꽃을 응원한다.


https://youtu.be/mVmhLdo5cLQ?si=Em909OMffdCZ9H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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