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꽃고무신 신던 소녀가 동생들의 엄마가 되기까지
내가 열일곱 먹은 해에 엄마가 임신해서 애기를 낳을라 했어.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저녁밥까지 다 해 놓고 배가 아프다고 방으로 들어가는 거야. 저녁 내 배가 아프다고 소리소리 질러.
근께 그때 오빠가 십 리를 걸어서 새벽에 의사를 델러 갔어. 막내 동생이 그날 저녁 내내 엄마 찾으면서 운께, 나는 동생 업고 저녁 내내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면서 저 산만 쳐다봤지. 날 새면 애기 낳을 것 같아서.
그런디 어떻게 연락이 되었던지, 애기 낳았다고 의사 데리고 오지 말라 해서 오빠가 도로 혼자 왔어. 근디 와서 보니까 엄마가 애기 낳아놓고 돌아가셔 분거야…… 애기도 나오다 죽어부렀고. 오빠가 그때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부렀어. 근께 아짐(아주머니)들이 물 갖다 맥임서 “정신 차려야지. 동생들 어쯔라고, 느그 아부지 어쯔라고” 그랬지. 기가 맥히제.
엄마 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비 오믄 묘에 비 들어갈까 봐서 막 울었어. (울먹인다)
글고 그때는 거지가 많앴어. 보릿고개 시절(보리가 여물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이 바닥나 굶주리던 5~6월 무렵 시기)이었지. 그래도 우리는 그런 보릿고개를 모르고 살았어. 그 시절에는 엄마들이 막 뭘 얻으러 댕겨. 그런디 그 사람들 보면서 '그런 엄마라도 엄마라고 한번 불러봤으면' 싶었지. 그것이 한이야. 동생들 너무 불쌍하니까 내가 어쩌든이 이쁘게 키워야지 그럴 마음으로 엄마를 잊으고…….
그 뒤로 인제 동생들 키우는 것이 내 일이 돼부렀지. 엄마 돌아가신 해에 내 밑으로 동생들이 열다섯 살, 일곱 살, 네 살, 세 살 이랬어. 아침에 일어나서 밥하고, 애기들 밥 맥이고, 학교 보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남은 시간엔 수(자수)놓고… 그렇게 하면 그나마 엄마를 더 잊어지는 시간이 많제. 누가 나보고 하라고 시킨 것이 아니었는데도,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
동생들이 엄마 찾으니까 동생들 양쪽 팔에다 팔베개해서 재우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그러면 막내 남동생이 학교를 안 갈라 해. 그러면 내가 업어다가 학교 들어간 디까지 데려다주고 그랬어. 오빠 뒷바라지도 내가 다 했지. 거그는 가방만 짊어지고 도시락만 싸갖고 학교 가니까.
오빠는 중학교까지 나오고, 남동생은 고등학교까지 나왔어. 여동생은 둘 다 국민학교 나왔어. 뒤에 동창(나주시 세지면 소재지)에 중학교가 생겼었어. 그래갖고 막내 여동생은 중학교까지 댕겼어.
또 그때부터 길쌈하고 그것이 내 일과여. 동네 숙모들, 아짐들, 큰집 올캐하고 같이 품앗이를 한께 여 집이서 하루 일하고, 저 집이서 하루 일하고. 집안 살림은 기본적으로 어머니한테도 배운 것도 있지만, 동네 어른들한테 배운 것이 더 컸어. 두루마기 재단하는 것은 큰엄마한테 가서 배왔어.
저녁밥 먹고는 서로 모여서 수를 놓는데, 작은 집 언니랑 큰 집 언니랑 같이 자수를 놓으면 내가 일등으로 마쳤어. 잠을 안 자고 붙잡고 있어. 안 자고라도 얼른 끝낼려고. 하하.
한 번은 엄마가 으찌 보고 잡던지, (감정이 올라오는지 잠시 멈춘다) 내가 혼자 산에 가기 무서운께 남동생을 데리고 산소에 갔어. 여동생들은 안 데꼬 오고. 여동생 우는 꼴을 보면 내가 다 속이 상하더라고. 근께는 내가 동생들 앞에서는 울도 못해. 다 따라서 울어분께. 그때 산소 가서 얼마나 울어 불고 온께는 더 낫더라. (훌쩍인다)
남동생은 평소에 의젓하고 그런디, 내가 본께 뒤에 한 모퉁이에서 고놈이 울고 있더라고. (훌쩍이며 말을 쉽게 잇지 못한다) 내가 근께, “울지 마야, 울지 마야. 네가 울면 누나는 어쩌라고 그러냐” 그랬지. 그때 남동생이 아홉 살이나 됐겠다.
그때는 누구하고 내 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어. 다 알고 살으니까 오히려 더 못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