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회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불편하다.
아파트 경비원이 에어컨을 트는 게 불편하다.
임대아파트 아동이 우리 아파트 놀이터를 이용하는 게 불편하다.
나의 소유가, 권리가 침해되는 느낌, 손해를 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의 사유지를 밟지 않고 살아왔는가?
당신의 걸음걸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당신의 행동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지 않는가?
당신은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 적이 없는가?
당신은 어린 시절 당신의 사유지에서만 놀이했는가? 애초에 그런 것들을 판단하며 놀이할 수 있었던가?
당신의 삶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왜 타인의 움직임에는 그토록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었을까?
누군가의 세금으로 인해 무상으로 지급되던 교과서와 무상교육 없이 자랐을까?
영유아에게 필수여서 국가에서 세금을 거둬 지원해 주는 다양한 예방접종들을 맞지 않고 자랐을까?
나이가 들어 부양할 가족도 없고 소득이 없을 때 그 아이들이 자라서 낼 세금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사회에 아무도 없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타인의 호의와 배려, 먼저 살아간 자들이 일궈놓은 토대 위에서 살아간다.
안타까운 점은 점점 더 그런 현상이 많아지고 뚜렷해진다는 점이다.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라고 말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풍경처럼 받아들이던 일들도 이제는 하나하나가 모두 불편한 일로 느껴진다.
무던하던 나조차도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꽉 찬 지하철, 아이들의 큰 울음소리, 전단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생.
자연스럽던 풍경에 '불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모두 큰 문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이 때 울지 않는 아이였던가? 학생 때 나도 전단 아르바이트 해봤었는데?
언제부터 개인의 감정이 사회 다른 구성원들의 삶보다 중요해졌을까?
이 글은 '불편함'이라는 감정과 불편함에 잠식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글을 읽으며 내용에 공감이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혹은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됐던 이 글이 '불편함'이라는 감정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