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번째 퇴사기: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3.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by 하루

목차



1. 저 다음 달에 퇴사합니다!

2. 요즘애들은 끈기가 없다고요?!

3. 나의 1번째 퇴사기 : 열정페이인데 경력인정도 안된다고?

4. 나의 2번째 퇴사기 : 계약직, 이건 안되는데 저건 해야 돼?

5. 나의 3번째 퇴사기 :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렴

6. 낯선 휴식,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7. 나의 4번째 퇴사기 : 관행?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건 뭔데

8. 나의 5번째 퇴사기 :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9. 나의 6번째 퇴사기 : 병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10. 나의 N번째 퇴사기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졸업 그 후 :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학생활 마지막 학기의 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내가 초등학교시절부터 꿈꾸던 일이었기에 이제 막 자격증을 따고 사회의 문턱에는 발도 내밀지 못한 대학생이었지만 벌써부터 꿈을 이룬 것만 같이 부풀어 있었다.


나는 새내기 사회복지사였다.


새내기 사회복지사인 내가 졸업 후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생각보다 다양해 보였다.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 등 대상도 다양했고, 의료사회복지, 학교사회복지, 교정복지 등 직종도 다양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중 나의 원픽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사회복지였다.


하지만 학교사회복지는 당시에만 해도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였고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한 직종이었다. 또한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실습, 인턴 등의 짧은 경력이 필요했다.


졸업 후 취업을 기대했던 부모님은 일반적인 취업을 권유하셨지만 나는 '나는 돈을 벌려고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에요!'라는 지금 생각하면 웃픈 선언을 하고 투잡을 하겠다는 각오로 학교사회복지 인턴직을 찾았다.


하지만 학교사회복지라는 분야 자체가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였기에 인턴자리를 찾는 것조차 참 쉽지 않았다. 졸업식이 다가오자 나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직종까지 지원할 정도로 초조해졌다. 같은 년도 졸업이었던 언니의 취업이 무산되고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닌 터였다.


언니는 졸업 전부터 학교와 연결된 회사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사회에 무사입성할 줄 알았건만 고용한파는 예정되어 있던 학생들의 취업을 모두 무산시켰다. 비단 우리 가정만의 일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취업 취소, 고용 축소 등의 취업준비생으로서는 무서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마음이 급해진 나도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마침 학교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 학교들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그런데 화기애애하던 면접에서 '그런데 왜 이 일을 하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말문이 턱 막혔다. 하고 싶은 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돈 벌려고 사회복지를 한 게 아니라던 나는 어느새 불안감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직종으로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답을 못하고 얼어버린 나를 보고 면접관들은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면접을 마쳤다.


어쩌면 그때 그 면접이 나의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두근두근 입사기 : 잘 부탁드립니다!!


그 면접 이후 나는 조금 더 신중해졌다. 사회분위기와 취업난이 두렵기는 하지만 내가 평생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은 정해져 있었다. 당장의 두려움 때문에 경로를 벗어나 헤매고 싶진 않았다. 휩쓸리지 말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자!

그러다가 집에서 2시간 반거리에 있는 학교복지실에 드디어 보조사회복지사 자리가 나게 되었다.


2시간 반 거리,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어느 경기도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 월 30만 원의 열정페이. 나는 주저 없이 지원하였다. 지금껏 10만 원도 안 되는 용돈을 받고 지내온 대학생인데 뭐 더 나빠질게 뭐가 있겠는가? 순수하게도 그때의 나는 노동의 가치를 셈할 줄 몰랐고, 어떤 조건보다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먼저였다.


2시간 반 거리의 학교를 면접을 위해 찾아갔을 때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모른다. 나의 첫 면접은 아니었지만 쉽게 나타나지 않았던 기회였기에 간절했던 것 같다. 손에 땀을 쥐고, 학교를 들어섰을 때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당시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내가 어떻게 면접에 통과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면접장소에 들어서니 환하게 웃는 선생님 한분이 맞아주셨고 따뜻한 라벤더 차 한잔을 내주셨다. 라벤더 꽃이 동동 떠다니던 투명한 찻잔에 긴장됐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곧 1대 1 면접이 진행되었다. 나의 미래 계획과 학교사회복지에 대한 지식수준을 확인한 선생님은 곧 연락 주시겠다는 말을 끝으로 면접을 끝내셨고, 그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3월이 되기 며칠 전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다.


나의 첫 사회생활 : 열정페이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처음으로 시작된 사회생활은 신나는 일 투성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몰려오는 아이들과 즐겁게 보드게임을 하고, 선생님이 맡겨주신 서류업무를 하고, 여기저기 심부름도 다녔다. 지출결의, 품의 이런 기본적인 회사용어와 서류 작성법도 그때 많이 배웠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학사사 선생님(학교사회복지사) 선생님도 25살, 지금 생각하면 참 젊은 나이였기에 우리는 죽도 참 잘 맞았다.


웃픈 일들도 많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작은 키에 꽤나 동안인 외모로 나는 자주 학생으로 오해받곤 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다니던 나는 딱 고학년 초등학생 같았다. 급식실에 가면 조리사선생님들은 '아이고~ 선생님도 좀 크자' 하면서 밥을 듬뿍 담아주셨고, 초등학생에게 하듯 남기지 못하게 하셔서 꾸역꾸역 다 먹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힘든 점도 있었다. 월 30만 원의 보조 월급에 급식을 떼고 세금을 떼면 남는 돈은 24~5만 원 남짓, 월급이라 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출퇴근 거리도 쉽지만은 않았다. 2시간 반을 버스 타고 왕복해야 하다 보니 9시 출근이어도 5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교통비만으로도 7~8만 원이 매달 나갔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나는 나의 선택으로 4대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이게 후에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지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여전히도 셈에 약한 열정 넘치는 새내기였다.


이런저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결국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전단지도 돌리고 공장에 나가 한 번씩 돈을 벌어오기도 했다. 그러다 주중에도 투잡을 뛰게 되었다. 새벽 5시 반에 시작된 하루는 매일 꼬박 새벽 1시가 넘어야 끝이 났다. 청소년 관련 자격증을 더 따기 위해 사이버대로 온라인 강의도 수강했다. 정말 열정적으로 살았다. 몸에서는 여기저기 망가지는 신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여기서 몇 개월만 있으면 시험 자격이 되니 조금만 힘을 내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나의 1번째 퇴사기 : 경력인정이... 안된다고요?


어느덧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소식을 듣게 되었다. 6개월간 내가 해온 '보조'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인정되는 경력에는 '인턴', '실습' 만이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전개에 함께 일하던 학사사 선생님도, 학부에서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도, 해당 협회에 계셨던 교수님까지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소속이 같은 옆학교 사회복지실에서는 인턴이라는 명칭으로 채용하여 경력인정이 되지만 '보조' 사회복지사를 뽑은 우리 학교의 경우 정식채용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인턴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건 예전과 같았지만 또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았다. 신났던 학교 생활도, 짧게만 느껴졌던 2시간 반의 통근도, 정말 괜찮았던 열정페이도 아무것도 예전과 같이 할 수 없었다. 다음 학기부터 당장 실습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말씀에도 나는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균 4시간 여의 수면시간과 고된 투잡, 쓰리잡으로 몸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나는 앞으로 2학기 더 이 일을 계속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첫 퇴사는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많은 것을 배웠고 너무 즐거웠지만 남은 것 없이 태웠던 7개월은 도무지 회복되지 않는 위염과 잦은 위경련만을 할퀴듯 남기고 끝맺어졌다.


(한참 후 알게 된 사실 : 나의 의지로 가입하지 않은 4대 보험 덕에 이 경력은 있지만 없는 경력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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