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사용법, 억누름 장치? 발전 모색!

(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30화)

by 오해영

도는 지방행정의 가장 높은 단계로 현재 중국에서는 없고 한반도에는 살아있다.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어 후에 한반도에도 사용됐지만 생명력을 달리하고 있다. 도의 역할이 중국에서는 통제 장치로 한반도는 발전 장치로 사용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을까? 그 과정을 살펴보자.


당‧송의 도와 로는 실패했다


나라의 도와 송 나리의 로는 두 왕조의 가장 높은 지방행정 단계였다. 도‧로의 의미는 글자 뜻 그대로 통행하는 길이다. 중국 왕조사에서 이들은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당은 개방적이고 융합적이었던 세계 제국이었고 송나라는 상업이 매우 발달한 왕조였다.


이 두 왕조는 지방의 큰 혼란을 극복하면서 세워졌기에 건국 이후 지방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무척 신경을 기울였다. 그래서 지방행정 체계에 도와 로를 설치하는데 주안점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억압함에 두었다.


중국의 핵심지역인 중원은 지세가 평탄하여 지역을 명산대천으로 분할이 곤란하였다. 일단 재난이 발생하거나 외적의 침입을 받으면 큰 자연 장애물이 없어 쉽게 전 지역으로 퍼져갔다. 그래서 군현만으로 대응이 곤란하여 여러 군현을 통솔하는 행정단위의 설치가 제기된다.


이런 경험은 이전 통일 왕조인 한나라에서도 있었다. 한 왕조는 군현을 감독하기 위해 주州를 도입하였으나 관할 구역이 너무 넓어 제대로 관리를 못해 오히려 분열의 기지가 되고 주의 권력이 군벌의 자본이 되어 중앙의 멸망을 초래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지방의 할거는 270년간의 남북조 시기를 거치는데 그야말로 지방행정의 대혼란 시대였다. 일부 왕조는 자기 판도 확대를 위해 공훈자, 투항한 적 및 전란으로 피난하는 유민을 위해 주나 군을 포상으로 주기도 하고 또 여기저기 신설도 했다.


이런 수요를 감당하려고 군을 분할하여 4~5개로 현도 2~3개 늘리다 보니 주군의 숫자가 많아지는데 면적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심지어 2개 군이 1개 현을 관할하거나 2개 주를 하나의 군으로 통합하기도 하였다.


그 정도를 보면 남조의 경우 502년 23주 226군이 546년 100주 586군으로 늘어나고, 북조(동위‧서위)는 116주 413 군이었는데 직전 통일왕조인 진에 비해 주 숫자 11배 군은 6배 늘어난 실태였다,


수나라의 주‧군 감소 시도


남북조 시기 주군 감소를 시도했으나 효과는 없었고 통일왕조인 수나라 시기에 추진된다. 양제는 주현을 합치고 주를 군으로 바꿔 190주 1255현을 감소시켰으며 강 특산물을 참작하여 지명도 바꿨다. 주군현 3급제를 군현 2급 제로 되돌렸다. 그러나 10년 만에 나라가 멸망하여 중단되었다.


당은 도를 설치한다


당 왕조도 건국과정에서 공훈자나 귀순한 장군들에게 주의 벼슬을 주었으며 특히 서남지역 소수민족 수령에게도 주 자사 벼슬을 주고 귀순시켰다.


이러하다 보니 주가 무척 많아져 관리가 어려워졌다. 이전 한漢왕조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를 직접 관리하지 않은 시도를 하는데, 627년 당 태종은 전국을 산천형세에 따라 10도(현종 15도)로 나누고 안찰사를 내보내 감찰하게 한다.


그러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안녹산이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도의 감찰업무와 절도사의 군사 역할이 합류하게 된다. 그래서 도는 새로운 행정단계로 변하고 이후 절도사들의 할거 시대가 초래된다. 당 조정의 지방 통제 역량이 이전보다 높아지고 실패 사례를 참작하였음에도.


송나라의 로 설치


송대 통치자는 당의 지방 할거를 교훈 삼아 도를 로로 개명하고 내용도 개선한다. 로이 관할 지역을 중복되지 않게 구획하고 다른 계통으로도 통제하여 중복 통제하였다. 즉 로이 행정권한을 분산시키고 감독을 교차하여 할거를 못하게 억압한 것이다.


또한 로를 구획할 때 산천 형세를 존중하되 행정단위 경계가 서로 얽히게 하였다. 그런데 로의 이런 역할이 다른 변화를 가져온다. 산천경계는 자연의 경계일 뿐 아니라 기후, 땅 모양, 토양에 영향을 미쳐 삶의 방식에 큰 차이를 가져왔다. 단순히 산천의 형편을 따름은 지방 할거의 뿌리를 심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로의 운명


지방행정 구획은 문명사회 발전과 자연지리의 상호 작용으로 구획되다 보니 어떤 흐름이 생겼다. 가장 아래 행정단계인 현은 수천 년 흘러도 살아왔으나 상위의 행정단계들은 침몰소실되어 새로운 행정단위가 대신한다.


군은 진시기 현의 상급 행정단위였으나 동한 시기 주 아래의 행정단계로 변했다가 당 시대에 소멸한다. 주도 군을 대신한 최상급 행정단위로 등장하는데 당 시대에 현의 상급단위가 되었다가 원‧명‧청 왕조시기 현과 비슷해진다. 민국 시기 모두 현으로 귀속되었다. 현재의 도시 지명에서 주 글자만을 볼 수 있다.


도‧로도 원 왕조 시대에 성省 아래 감찰 역할로 변했고 명‧청 왕조 시기 성과 주 사이에 도를 두었으나 20세기 완전히 사라진다.


한반도의 도는 1000년 이상 생존하고 있다


도를 지명으로 처음 출현시킨 사람은 궁예이다. 그는 건국 과정에서 그에게 호응하는 지역의 주州를 도로 바꿨는데 황해 지역의 패서도, 전남의 나주도, 춘천의 삭방도 등이다. 이때의 도는 주의 상급 행정단계 개념이 아니라 지역의 이름을 바꾸는 차원이었다.


고려에 들어서 신라의 지리 개념인 9주가 5도라는 행정체제로 크게 변화되는데 역시 왕조의 건국과정에서 관계 정립에 따른 보상 내지 처별 성격이었다.


우호 지역 강화 : 경상도,

정권 반대지 분할 : 전라도, 양광도

궁예 근거지 분할 : 철원은 교주도, 기타는 양광도 귀속

왕건 근거지 강화 : 서해도, 특히 개경 외곽 : 경기도


조선에 들어서 도는 완전히 지방행정 체계로 정착되는데 태종은 1413년 전국을 8개의 도(경기, 충청,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 평안)로 나누고 각 도는 중앙 조정의 행정 역할을 대행하는 성격이었다.


결국 제도의 생명력은 사용법에 달려 있다고 본다. 중국은 최상위 행정단위가 성장하지 못하게 억제하였지만 한반도는 중앙을 보조하는 역할로 봤다. 그래서 한반도와 중국의 생명력 차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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