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29화)
농토가 많은 지역은 산이 많은 지역보다 식량 생산이 쉬워 살기에 더 적합하며 산촌의 경우는 이와 반대이다. 국가는 세금징수와 인력자원을 통제하기 위해 행정구획을 하는데 군현郡縣이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농촌지역에는 산촌보다 더 세분화된 행정 체계를 설치함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산천지리는 중요한 요소이었다. 중국과 한반도의 지연지리는 그 차이가 매우 커서 서로 비교하기도 곤란할 정도이다. 교통이 불편하였던 왕조시대의 경우 지방행정을 구획할 때 산천지리에 크게 의지 하였다. 그런데도 중국과 한반도의 행정구획은 2~3단계로 비슷하였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방 행정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현縣이며 생명력이 매우 강해서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다. 이는 자연지리와 사회발전이 잘 부합되기 때문이며 진한秦漢시기의 행정구획 규칙이 여전히 존중받고 있다.
현의 관할 구역은 어떻게 정했나?
1개 현의 관할 범위는 한漢 나라의 경우 보통 사람이 하루에 걸어서 도달할 수 있는 범위로 함이 일반적이었다. 공무출장을 기준으로는 먼 시골 마을까지의 도달거리를, 농민이 읍성에 갔다가 당일 시골로 되돌아올 수 있는 정도로.
만일 해당 지역의 인구나 일이 많으면 관할 면적을 줄였다. 반대로 인구가 적은 지역은 행정 원가를 고려하여관할 지역을 넓혔다. 이런 규칙은 오늘날도 볼 수 있는데. 인구가 많은 지역은 소규모 도시가 연달아 설치되어 있고 반대인 경우 관할면적이 성省의 만큼 되는 경우도 있다.
군현 2단계 행정체제가 나오다.
분열되었던 국토가 통일되자 현의 개수가 크게 늘어 관리의 효과에 문제가 생겼다. 진秦 시기 1000개 현이 한 漢나라에서는 1587개로 증가한다. 역대 왕조는 1200~1600개 정도이었는데 중앙조정에서 이렇게 많은 현을 직접 관리함은 사실상 곤란했다.
그리하여 현을 감독하는 행정단계를 계획했는데 바로 군郡이다. 군현郡縣은 주周나라 시기에 나타나고 군의 출현은 현보다 늦으며 내용도 달랐다. 주周 양왕 기원전 651 진晉 나라 헌공이 죽자 후계 다툼이 일어나 진秦나라에 있던 진晉 공자 이오는 진秦에 도움을 청하며 군현을 떠어 주겠다는 언급이 나온다. 가장 이른 기록이다.
처음 군은 현 아래 행정단위로 군사 역할만 하고 행정기능은 없었다. 전국 중기까지 이런 역할이 유지되다가 전국 말기로 접어들면서 역할의 변화가 온다. 전쟁이 격렬해지는 상황에서 군의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 즉 군사 업무에 행정 사법 재정 기능을 추가되면서 점차 현의 상급 단계로 자리를 잡아갔다.
진秦제국이 군현제를 마련할 때 평균적으로 1개 군이 20개 정도 현을 감독하였다. 이후 역대 통일 왕조는 보통 이 비율을 유지한다.
3단계 체제의 첫걸음은 한무제이다. 한漢 초기 지방행정체제는 군현제가 기본이었다. 제후의 관할구역을 제외하고. 이런 2단계가 불안해진다.
왕조 초기 제후의 난이 평정되자 이들 지역을 여러 지역으로 나눴다. 제후 왕은 군과 같아지고 제후 영역은 현과 같아졌다. 난 제압에 공을 세운 제나라를 7개로 양나라를 5개로 나눠 이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또 큰 군을 분할하고 수도(내사)의 경우 경조윤 좌풍익 우부평 등 3개로 나눴다.
또한 한 무제는 사방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군현을 추가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군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 중앙 조정에서 직접관리는 곤란해진다. 그래서 새로운 지방행적 단계를 설치하는데 바로 자사부部(훗날 주)다.
기원전 106 전국을 13 자사부(부에 1인 자사)로 나누고 군 위의 상급 행정 역할을 부여했다. 수도에는 사례교위를 별도로 설치. 자사는 6가지 규정으로 군을 감독하였지만 행정 사무에는 간섭하지 못했다. 봉급은 자사 600석 군태수 200석으로 자사가 비롯 감독자이나 급료는 오히려 낮았는데 이는 업무의 경중에 따름이다.
13 자사부 이름은 상서 주례의 9주 명칭에서 따왔으며 서한 말기에 이르면 상서 요전에 있는 이름을 차용하여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바꿨다(이후 주목과 자사가 혼용). 지명을 지을 때 옛날 이름을 응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제의 주목 행정구획은 또 다른 화근을 심게 되는데, 후한 말 황건적 난이 크게 발발하자 군의 역량으로 대응이 어려웠다. 그래서 조정은 군사 재무 행정을 겸임한 고위관료를 파견하여 주목 이름으로 여러 군들을 지휘하여 난에 대응한다.
그러면서 주州의 감찰역할이 군 위의 행정단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방행정 체제가 2단계에서 3단계 체제로 변화하게 되었다.
크게 보면 통일 왕조의 행정 계층은 기본적으로 2단계 또는 3단계이었다. 왕조마다 큰 변화가 있었지만.
진한에서 남북조 시기 800년 : 2단계에서 3단계로 변화
수당에서 송‧요 시기 700년 : 2단계로 되돌아갔다 3급 단계로
원나라에서 현재 700년 : 다급제에서 간소회되어 3단계로 정착
왕조사대 한반도의 지방행정 체제는 2단계 또는 3단계였다. 현재는 2단계이다. 왕조가 바뀌면서 기본 체제인군현에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상급 행정단위를 증설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설치 효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져 다른 감독 단계를 도입하거나 중요 지역의 경우 관리자의 직급을 높여 책임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왕조별 개략적인 체제를 살펴보자. 통일신라는 주군현의 체제였다. 이때의 주는 지리적 개념이었기에 2단계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주의 책임자를 처음에는 군주軍主라 하였다가 후에 군郡으로 바뀐다. 군의 책임자를 태수 현에는 소수少守라 하였다.
고려에서 주州는 지리 행정체계로 정착되는데, 신라의 주군현제를 주州와 주현主縣 속현屬縣제로 바꿨으며 주와 주현에 관리를 파견하였다. 주요 지역에 주목을 설치하기도 하였으며 속현은 주현에서 관리하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행정단계를 2.5 체제라고 볼 수 있는바 호족연합 성격의 왕조 특징을 나타낸다.
조선의 경우 최상급행정 단계로 도道를 두고 그 아래에 부목군현府·牧·郡·縣을 두었다. 부목군현의 구분 기준으로 인구와 토지 규모를 제일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중앙조정의 지방행정 통제의 기본 목적은 중앙직권제의 강화였다. 이를 위해 지방행정을 체계화하여 효과적인 관리를 도모하였는데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이 이런 시스템을 설계하고 실행하였다. 즉 경제적 측면을 중시한 시스템에서 정치적 목적 달성울 의도하였으며 지방의 자율성을 보살피지 않았다.
그러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목적 달성의 부담과 압박이 커지면서 시스템 자체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여러 겹의 감독이나 감시 체계를 만들다 보니 행정체계가 복잡해진다.
그럼 세분화되고 복잡해진 행정체제에서 원래의 효과를 제대로 보았는가? 여기에 행정기강이 해이해지면서 다층의 관리 감독으로 행정의 비효율성과 난맥상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