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리뷰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영화는 자주 눈 덮인 산이나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를 보여주지만, 고정된 프레임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있나 착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만약 연극이 삶의 닮은 꼴이라면, 그것은 삶이 진정한 연극의 닮은 꼴이기 때문’이라는 아르토(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 앞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정말 실재인가? 끊임없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천국 불신 지옥의 나라에서 대도시의 아파트는 가장 본질적인 욕망의 구현이고, 계급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척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임대와 자가가 뒤섞인 같은 단지 안에서도 임대 아파트의 자녀들이 같은 놀이터를 공유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가 아파트 거주자. 임대단지의 거주민들과 같은 출입구를 사용할 수 없다고 출구를 구분하는 모습은 잔혹하고 살벌한 계급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살벌한 계급사회에서 영태와 미주의 마음은 소박하다. 볕 잘 드는 아담한 아파트에서 월세 안 밀리고 살아가며 2세를 갖는 것. 하지만, 이 소망은 외면받는다. 지역주택조합이라고 의심되는 분양사기에 걸린 영태는 거지꼴이 되고, 미주는 자주 해고를 겪어야 하고, 유산의 아픔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잔혹하게도 실감이 간다. 하지만, 그런 현실 앞에서 그들은 흐느껴 울지 않는다. 어두운 방에서 복싱하며, 의지를 불태우고, 눈 내리는 창밖에 주먹을 내지른다. 보이지 않는 강요된 욕망, 부조리한 현실에 대고 내지르는 주먹은 가녀리지만, 굳은 의지를 나타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는 감독의 그 의지를 보며, 속으로 손뼉을 쳤다. 그건 ‘변하지 않음’에 대한 내 나름의 응원이었다. 수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영화산업의 구조에서 투자사에 의해 감독의 창작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 하지만, 박송열 감독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그래서 감독의 생각을 가감 없이 모두 담을 수 있고, 그래서 이젠 장인정신까지 느껴지는 그만의 촬영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처럼 그 역시 흔들렸을지 모른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그리고, 월세에서 자가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그런 욕망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겨지는 이 욕망은 누군가 조장한 것은 아닐까? 갚으면 된다고 유혹하는 사채업자처럼, 그냥 은행에 월세 내며 사는 거라고 자조하는 삶은 정말 온당한가? 의문이 들었다. 더불어 돈에 대한 영태의 생각을 들으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화폐의 본질은 그저 교환수단일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자꾸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고, 영태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여전히 무한 신뢰를 보여주는 미주가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