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도두봉에 닭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닭? 닭이 있다고요? 도두봉에요?"
내가 생각하는 닭은 보통 닭장에 사는 데, 어떻게 닭이 도두봉에 있는 건지. 도두봉에 있다면 그 모습이 어떻게 생겼을지, 나는 궁금함에 무작정 도두봉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도두봉에 도착한 나는 일단 주차장에 주차하고 어느 쪽으로 오르면 닭을 볼 수 있는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털사이트를 아무리 검색해도 도두봉에 닭이 있다는 말만 있지, 도두봉 어디쯤 닭이 있는지 정보가 없었다. 도두봉은 별로 높지 않아서 정상까지 가는 부담은 없었지만 도두봉에서 닭을 찾는다는 게 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서 기다린다고 딱히 찾을 방법도 없고... 그냥 일단 올라가 보지 뭐.’
한 참을 차에서 멍하게 있던 나는 용기를 내어 도두봉 정상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와. 뭐야? 나 봄인 것도 잊고 있었네.'
나는 닭을 찾으러 왔지 벚꽃을 보러 온 것은 아니었지만, 도두봉을 오르며 산책로에 핀 아름다운 벚꽃을 감상했다. 날씨도 좋고 맑은 하늘이 예쁜 날이었다. 닭을 못 찾아도 오늘은 벚꽃을 실컷 구경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 도두봉은 햇살과 바람이 좋았고 연인들, 친구들이 함께 여행하고 있어서 분위기도 좋았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자니 내 마음마저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한쪽에는 탁 트인 바다와 반대편에는 커다란 한라산이 나를 반겼다.
‘와 여기 전망 좋다. 여기서 한라산을 지나는 비행기 사진을 찍으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렇게 나는 핸드폰을 들고 나를 반기는 한라산을 맘껏 찍었다. 파란 하늘 탁 트인 한라산 뷰, 벚꽃이 어우러져 도두봉은 장관을 이었다.
‘혹시 키세스 존에 닭이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닭이 사람 많은 키세스 존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호기심에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키세스존은 도두봉에 있는 사진 명소로 우리가 흔히 아는 초콜릿 모양의 돈나무 굴이 있는 곳이다. 예쁜 경관 덕분에 많은 연인이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사람들은 알까? 이 나무가 돈 나무인걸... 기왕 온 김에 나중에 쓸지도 모르니 나도 나무 사진이나 찍고 갈까?’
나는 도두봉에 와 본 적은 있지만 사람 없이 키세스 존 나무만 찍은 사진은 없었기 때문에 오늘 여기 온 김에 사진 몇 장을 찍어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키세스 존 앞에 줄을 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연인 아니면 가족이었고,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2명씩 여행하기 때문에 사진 찍을 누군가가 필요해 보였다.
‘어차피 남는 인력.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면 뭐 해? 연인들 사진이나 찍어주는 게 낫지.’
나는 닭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냥 여기 줄 서 있는 김에 사람들을 도우며 생각을 좀 정리해 보기로 했다.
“사진 찍어 드릴까요?”
나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앞줄의 연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정말요?”
“네. 저는 어차피 나무 사진만 찍고 가면 돼서 제가 찍어 드릴게요.”
나는 연인들의 모습이 예뻤고 나무가 예뻤고 도두봉의 분위기가 좋았다. 사진을 찍다 보니 닭에 대한 거민은 잊고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사진 엄청 예뻐요. 한 번 보세요. 두 분 사진 잘 나온 것 같은데 맘에 안 드시면 다시 찍어드릴게요.”
“오 잘 나온 것 같아요. 멋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가죽 재킷을 입은 연인>,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 <아이 두 명과 함께 온 엄마>, <신생아를 안고 여행 온 젊은 부부>의 사진을 차례로 찍어주었다.
‘설마 나도 사진 잘 찍는 사람인가?’
나는 평소 내 사진 실력에 대해 엄청난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만큼 나는 최고의 사진사가 된 것 같았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키세스 존이 너무너무 예뻤고 사람들이 예뻤고 사람들이 사진 멋지다며 감탄해서 더 즐거웠다. 사람들이 만족해하니 내가 마치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혹시 여기서 닭을 보신 적 있으세요?”
나는 사진을 찍으며 조심스레 사람들에게 물었다. 뜬금없이 도두봉 정상에서 닭을 보았냐고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놀라서 되물었다.
“닭이요? 여기 닭이 있대요?”
“네. 여기 닭이 있대요. 도두봉에 산다고 해서 닭을 찾으러 왔는데 정상에도 없고 키세스 존에도 보이지 않네요...”
그 말에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여기서 닭은 못 봤는데요?”
나 역시도 이곳엔 닭이 없을 것 같은 확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그 그렇죠. 저도 여기 닭이 있대서 왔는데... 와보니 닭이 있을 곳이 도저히 없어 보이는데...”
사진 촬영을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다시 도두봉 정상에 올랐다. 혹시라도 정상에 오르면 닭이 있을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정상에 올라 산 아래쪽을 살펴보았지만, 정상에 올라서 아무리 굽어보아도 능선 아래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닭을 어떻게 찾는 담?‘
정상의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닭을 찾아보아도 능선 아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이 곳에서 닭을 찾는 다는 건 좀 무리인듯 하다.
정상에서 두리번 거리는 사이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 팀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언니, 아까 사진 찍어 주셔서 감사해요.”
“하하. 뭘요.”
나는 친근하게 건네는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의 감사 인사에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
“아 저는 도민인데요. 여기 살아요.”
“여행 온 게 아니시구나. 근데 언니 왜 닭을 찾아요?”
“제주 곳곳에서 동물을 만나는 콘셉트의 책을 쓰고 있는 데... 도두봉에 가면 닭이 나온대서 한번 와 봤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닭이 안 보이네요.”
닭이 나오는 책을 쓴다니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은 나를 꽤 흥미 있어 했다. 우리는 잠시 여행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방문하면 좋을 듯한 도내 여행지 몇 곳을 소개한 뒤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여행 즐겁게 하시고요. 추억 많이 만들고 가요. 저는 이만 닭을 찾아야 해서요. 안녕.”
나는 <귀엽고 발랄한 친구들>과 웃으면서 헤어졌으나, 닭이 어디 있는지 몰라 다시 제자리걸음이었다.
‘나 오늘 도두봉에서 닭 찾을 수 있는 거 맞아?’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터덜터덜 내려오는 데 길옆에 귀여운 <뱀 주의> 표지판이 있었다.
‘아 맞다. 이 표지판. 여기 있었네. 이 표지판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찾아다니려 했는데...’
이 표지판을 어디선가 봤었는데 그게 어디인지 생각이 안 나던 차에 도두봉에서 다시 뱀 표지판을 만나니 반가웠다. <뱀 주의> 표지판은 제주공원녹지과에서 설치한 귀여운 뱀이 직접 뱀을 주의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표지판이다.
제주에는 동물이 직접 자신을 주의하라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많다. 나는 이렇게 사소하고 귀여운 것들이 유머러스한 제주의 감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귀여운 뱀 주의 표지판이 반가워서 나는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내 옆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나는 애완견을 데리고 온 사람들이나 동네 산책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닭의 행방을 물었다. 왠지 도두봉에 자주 오는 느낌이 나는 분들이라면 닭의 행방도 알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 혹시 여기 닭이 산다던데... 닭은 보신 적 있으세요?"
동네 산책을 나온 듯한 옷차림의 한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닭? 우리 여기 매일 오는 데 닭은 본 적은 없는데? 석굴암에 가면 토끼가 있는 데 거기 한 번 가봐요.”
도두봉 어디에 닭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애타가 닭의 행방을 찾는 나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지 사람들은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닭의 행방을 물었으나 거짓말처럼 도두봉 닭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어서 그냥 한참을 표지판 근처에 서 있었다. <뱀 주의> 표지판은 도두봉 중턱에 박혀있는데 지금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나는 오늘 닭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최선을 다해서 찾아봤으나 이제는 뭐 못 만나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고 내려가긴 아쉬워 몇 분에게만 더 물어보고 아무도 모르겠다고 하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조금만 더 물어보고 가자. 아마 오늘은 닭이 없나 봐.’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 근처에 살고 계신 것 같은 분들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애완견을 데리고 내려가는 사람 뒤에 있는 등산복장을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여기 닭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닭이요?”
“네 닭이요.”
“네. 알지요. 저기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도두봉 표지판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있어요.”
나는 닭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신다는 말에 혹시 내가 지금 뭘 잘 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곧 흥분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정말 닭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세요? 아래쪽 입구에 있는 표지판이요? 그리고 그다음에 어디로 가는데요?”
닭의 소식을 반가워하면서도 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내 얼굴을 보며 왜 닭은 찾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은 채 그분은 내게 말했다.
“음. 그러면 저랑 같이 갑시다. 어차피 운동하러 왔으니까... 같이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그 뒤로 나는 그분을 <도두봉에서 만난 이>로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우연히 닭을 찾는 여행을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네”라는 대답을 활기차게 하는 분이었다. 어느 책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요청할 때 세상을 향해 “네”라고 크고 긍정적으로 대답을 하는 사람은 복을 쉽게 받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분이 그런 분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찾으시는 닭은 도두봉 정상에서 도두봉 입구 쪽으로 내려가 도두봉 안내 표지판 앞에서 왼쪽으로 돌아 능선을 타고 도두봉을 반 바퀴쯤 돌면 나와요. 이쪽으로 가면 돼요.”
“닭이 정말 있는 거예요? 닭 있는 곳을 찾으려면 어떻게 찾으라고 하면 돼요?”
“처음 온 사람들은 여기 무지개 해안가 ‘도두봉 주차장’에 주차하고 도두봉 쪽으로 올라오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돼요. 여기 보면 오른쪽에는 ‘길 없음’ 표지판이 있잖아요. 저기는 길이 진짜로 없으니 들어가면 안 되고 왼쪽 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닭이 곧 나와요. 닭은 원래 반경 50m를 넘어가지 않으니, 닭이 우리를 찾진 않고 우리가 닭을 찾아가야 하는 거예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나와 함께 걸으며 닭을 찾는 법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진짜 닭이 있을까? 여기에 닭이 있을 곳은 없어 보이는데...'
나는 이곳에 대체 어떻게 닭이 살고 있는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걷다 보니 거짓말처럼 수탉이 나왔다. 수탉은 동백나무 밑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이는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었다.
‘얘는 어쩌다가 여기에 살게 되었을까?’
궁금함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닭 옆으로 밥그릇이 보였다.
“어? 여기 밥그릇도 있네요?”
“그건 사람들이 이 수탉 먹으라고 가져다준 거예요. 원래 여기에 암탉도 있었는데... 어느 날 암탉이 없어진 뒤로 얘가 영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사라진 암탉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셨지만 나는 혹시 수탉이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봐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빠르게 닭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다르게 수탉은 원래 운동성이 없는 동물인지 아니면 정말 암탉이 사라져서 우울해져서 그런 건지 움직이지 않고 증명사진 찍듯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수탉이 다소곳이 포즈를 취해준 덕분에 고맙게도 나는 사진을 수월하게 찍었다. 옆에 있는 동백꽃과 수탉의 색이 어우러져 좀 키치 한 느낌이 나는 것도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수탉을 촬영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어? 이거 뭐야. 여기 왜 닭이 있어?”
나도 아직 이 닭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몰라서 사람들에게 대답해주진 못했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수탉 촬영을 마치고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수탉 말고 혹시 관광할 건 또 뭐가 있어요?”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도 차분히 대답해 주셨다.
“저는 항상 이쪽 무지개 해안으로 걸어 다니는 데 여기 걷기 좋아요. 여기서부터 걸어서 무지개 해안 끝 유명한 돈가스집까지 걸어가면 걷기 딱 좋지요.”
나는 무지개 해안이 걷기 좋다는 말에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함께 해안 쪽으로 나왔다. 들은 대로 무지개 해안은 바다를 보며 걷기에 좋았고, 주변에 카페와 식당이 많아 잠시 쉬어가도 좋은 곳 이었다. 나는 오늘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커피를 대접하면 좋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카페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아쉬운 대로 길가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서 드렸다.
“제가 사야 하는데... 커피 감사해요.”
커피를 받으시며 <도두봉에서 만난 이>가 말했다. 도움받은 건 난데, 커피까지 사주시려 했다니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도움받았으니 당연히 제가 사야죠.”
무지개 해안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나도 덩달아 무지개 해안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무지개 해안은 무척 평화로웠다. 그제야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닭을 찾으러 왔어요?”
“아, 제가 제주에 사는 동물 책을 쓰고 있는데 수탉이 여기 있다고 해서 찾으러 왔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동물을 만나는 관광콘텐츠를 소개하는 책을 쓰려고요.”
“아 그래요? 그러면 여기 무지개 도로도 더 찍어요. 저쪽 해안에 보면 새가 많은 데 쟤들은 ‘가마우지’라고 해요.”
“아 쟤들이 ‘가마우지’예요? 저 쟤네 해안에서 많이 봤는데 이름은 제대로 몰랐어요. 가마우지라고요?"
나는 나중에 생각이 나지 않을까 봐 핸드폰을 꺼내 가마우지라고 적고 <도두봉에서 만난 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바닷새를 잘 아시네요”
“네. 저는 낚시를 좋아해서요. 일 년에 한 100번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나 봐요.”
나는 핸드폰을 보다가 깜짝 놀라서 <도두봉에서 만난 이>를 쳐다 보며 물었다.
“일 년에 100번이요? 그럼, 낚시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요?”
“한 20만 원 정도 들어요.”
“20만 원 내면 100번 태워준다고요?”
나는 '세상에 무슨 그런 저렴한 멤버십도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되물었다.
“아니오. 한 번에 20만 원이요.”
“네? 그럼, 일 년 비용이 얼마예요?"
나는 비용이 많은 것 같아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한 뒤 되물었다.
"꽤 비쌀텐데... 그 비용이 다 감당되시는 거예요?”
“그럼요. 그 정도는 젊었을 때 다 벌어 놨지요.”
낚시를 즐긴다는 말과 이분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이분이 ‘도두봉에 사는 신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두봉 중턱에서 곤란할 때 나타나 주신 것도 그렇고... 신선이시든 아니든 나는 정말 신선을 만났다는 생각으로 평소 궁금하던 것들을 묻기로 했다.
'신선을 진짜 만난다면 난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사람들이 가진 그릇에 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이 있잖아요.”
“있죠.”
“혹시 그것은 어떻게 키워요?”
나는 사람들의 마음의 그릇도 '자기 계발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오던 터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좀 의외였다.
“못 키워요. 그냥 자기 그릇대로 사는 거죠.”
나는 못 키운다는 말에 너무 놀라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그럼 내 인생이 양념 종지라면 양념 종지로 살다 죽는 거예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다 그릇대로 사는 거예요.”
나는 그릇을 키울 수 없다는 말씀에 다소 실망하긴 했지만, 그릇은 생각의 크기가 커 지면 키울 수 있을 거라는 1% 정도의 희망은 잃지 않기로 했다. 나는 평소 궁금하던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러면 사람들이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잘 되면 막 잘난 줄 알고 못되면 막 비굴해지고.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절대 안 돼요. 아마 그렇게 하면 세상이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예요.”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도두봉에서 만난 이>와 함께 무지개 해안 끝 돈가스집까지 걸어갔다.
“여기 돈가스집도 사진 찍어요. 책에 다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가라고 하면 좋지 않아요? 여기 사람들 많이 오던데.”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책 구성에 대한 좋은 생각이 떠오르신 듯 내가 권유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책 샘플을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저에게 어디 가면 뭐가 맛있다는 것도 넣어달라고 하긴 했어요. 근데 돈가스집을 실으려면 이 돈가스 집주인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일일이 가게에 다 물어보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직 초짜라 아는 게 많이 없어요.”
“뭐 주인이 싫어할 리가 있나요? 홍보해 준다고 하면 모두 다 좋아하겠죠. 그리고 일일이 물어보는 것도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안 걸릴 텐데요.”
나는 이분과 대화하면서 내가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에 많은 철벽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 나는 내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분처럼 상대방의 말에 '네'라는 대답을 크게 할 순 없는 걸까?'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어떤 질문에서도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보다는 아예 침묵했다. 나는 그런 점이 이분을 일 년에 100번이나 낚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 걸 거로 생각했다.
대화를 하다보니 평소 좋아하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미래를 결정합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을 실현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때 ‘생각’은 그 사람이 마음속으로 한 말입니다. 그 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달라지지요.
- 사이토 히토리 『부자의 행동습관』, 152p.
우리는 무지개 해안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근처에는 커피를 마시는 하르방, 머리 위로 손 하트를 한 하르방이 보였다. 하르방 사진 찍고 싶다는 내게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말했다.
“하르방은 손 모양이 다르잖아요. 그런 것도 책에 소개하면 좋을 텐데. 혹시 알고 있어요?”
“하르방이요? 아뇨 그런 건 몰랐었는데요.”
나의 대답에 <도두봉에서 만난 이>는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며 말씀해주셨다.
“봐봐요. 여기 찾아보면 하르방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데 왼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무관’ 오른손이 더 높이 올라간 하르방은 ‘문관’이에요. 문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의미로 한 쌍의 하르방이 늘 함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군요. 몰랐었는데 알게 돼서 기쁘네요. 제가 하르방 이야기는 책에 꼭 적을게요.”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제주투어버스’가 지나갔다.
「수요일 탑승 무료」
나는 재빨리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뭐야? 원래 제주투어버스 수요일마다 무료였어?'
나는 평소 제주투어버스에 대한 로망이 많았는데, 어느 수요일 시간이 되면 한 번 꼭 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나는 도두봉에 와서 그동안 내가 제주에 관해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도두봉에서 닭도 찾고 신기한 경험도 많이 하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닭을 찾으러 도두봉에 오지 않았다면 이런 분을 만나지 못했을 텐데...'
나는 언젠가 <도두봉에서 만난 이>를 한 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헤어지면서 나는 이분의 성함과 연락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제주에 오래 계실 거예요?”
나는 용기를 내어 다음에 또 뵐 수 있는지 물었다.
“아마 한 3년은 여기에 있을 거예요. 나중에 도두봉에 오시면 아마도 저 있을 거니까 다시 만나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책이 완성되면 도두봉 입구에서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도두일동 1727-2
제주에 온 첫날 잠시 들리기 좋은 도두봉
닭은 찾고 싶으시면 직접 찾으러 가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