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의 절친 민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용희, 나 곧 펜션 오픈할 거. 오픈 전에 한 번 놀러 와."
참고로 말하면 제주 친구들은 말끝을 줄이는 경향이 있는데 ‘할 거야.’라는 말을 할 때 ‘야’ 자를 빼고 ‘할 거’라고 주로 말한다. ‘했어?’라는 말을 할 때도 역시 비슷한데, 이때는 ‘핸?’으로 줄여서 말한다. 암튼 오늘 민주는 나를 오픈 전 자신의 펜션으로 초대했다.
“물론. 갈게.”
“나 돈은 안 받을 거고, 그냥 화분만 받을 거.”
육지에서는 손님들이 개업에 갈 때 돈 봉투를 가져가지 않는데, 제주는 특이하게도 돈 봉투를 선물로 가져간다. 그런데 오늘 민주는 친구들이 부담스러울까 봐 초대하면서 봉투는 받지 않을 거고 화분만 받겠다고 말한 것이다.
“알겠어. 예쁜 화분으로 사 갈게.”
나는 최대한 고심해서 민주가 일주일에 한 번 물만 잘 주면 절대 죽이기 힘든 화분 두 개를 사서 펜션으로 갔다.
“인테리어 잘 됐다. 이 의자 네가 산 거야? 예쁜데? 민주 진짜 감각 있다.”
“내가 하나하나 골랐지. 나름 재밌었어. 나 이런 거 적성에 맞나 봐.”
펜션 한 켠 작은 화단에는 수국이 심겨 있었는데 민주가 꽃도 고르고 직접 심었다고 했다. 곧 여름이 되면 수국은 탐스럽게 필 예정이었고 제주의 새까만 흙과 핑크와 보라색 수국들이 어우러져 예쁜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여름에 또 펜션에 오게 되면 마당 가득 수국이 핀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펜션에는 창고를 개조해 만든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와인바는 대부분 시크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내 친구 민주가 만든 공간은 포근하고 안락했다. 그냥 저곳에 푹 틀어박혀서 조용히 사색에 잠기다가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마당에는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한 민주의 친구들이 많았는데 활발한 친구들이 모여서인지 분위기는 시끌벅적하고 흥겨웠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민주와 나는 동갑 친구라 오늘 모인 모든 사람은 동갑이었고 그만큼 편했다. 민주의 친구들은 민주 만큼이나 다들 개성이 넘쳤다. 어떤 친구는 마당에서 춤을 추면서 동영상 녹화를 했는데 곧 SNS에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춤을 구경하면서 앉아서 약간 따라 해 봤다. 바닷바람과 함께 살짝살짝 춤을 추고 있자니 왠지 모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때 민주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용희 너 하도리 철새도래지 취재할 거?"
"응."
"할 거면 나 따라와.”
나는 민주와 다른 곳에서 펜션을 운영한다는 또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철새 도래지로 향했다. 차에서 나는 그동안 써놓은 원고를 민주의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김용희고요. 요즘 책을 쓰고 있어요.”
친구는 그제야 우리가 왜 파티를 빠져나와 철새도래지를 가는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주차하고 민주가 내게 말했다.
“저기 한가운데 보이는 산 같은 게 지미봉인데 여기 도로를 한가운데 놓고 왼쪽은 하도 해수욕장이고 오른쪽은 철새도래지야. 여기서 사람들 사진 많이 찍더라. 여기가 인생샷 명소래. 너도 한 장 찍어봐.”
민주의 말을 듣고 나도 인생샷 명소에서 사진을 찍어 보았다. 내 눈에는 아스팔트 무늬가 너무 빨갛게 나와 좀 삭막한 분위기를 내는 것 같았다.
“저기 철새 도래지 쪽으로 들어가 볼게.”
나는 민주와 민주의 친구를 뒤로하고 철새도래지가 있는 늪으로 들어갔다. 철새를 한 번 찍어보려는 마음이었는데 신발이 미끄러워 늪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수풀도 많아 다리를 자꾸 긁어 댔다.
‘뭐 어쨌든 다 좋은데, 이렇게 가면 핸드폰으로 철새 찍을 수 있는 거 맞아?’
나는 철새 있는 쪽으로 계속 걸었지만, 사진에 익숙하지 않아 속으로는 매우 불안했다.
나는 일단 늪으로 들어가서 철새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갔지만 철새는 엄청나게 멀리 있었다. ‘찰칵찰칵’ 최대한 열심히 사진을 찍어 봤지만, 빛은 역광이었고 철새는 손톱보다 작게 나왔다.
"이 사진 쓸 수 있는 건가?"
늪에서 나와 민주에게 말했다. 민주는 내 사진을 보더니 말했다.
“철새 이렇게 찍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안 되겠는데? 그냥 이 새 모형이라도 찍어봐."
나는 민주의 말대로 하도리 철새도래지를 배경으로 멋진 새 모형을 찍었다. 사진은 제법 그럴싸하게 나왔다. 나는 아까 찍은 사진이 생각나서 민주에게 말했다.
“잠깐만 민주야. 아까 네가 지미봉을 가운데 두고 찍으라고 할 때 큰 새가 찍힌 것 같았었는데... 이거 봐봐.”
민주는 내가 찍은 사진을 유심히 보다 한마디 했다.
“뭐야? 그것도 새 모형이잖아.”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53-2
핸드폰으로는 철새 찍기 힘듦
하도리 철새도래지
철새는 생각보다 매우 멀리 있음
용희, 너 별방진 가봤어?”
철새 도래지에서 돌아오며 민주가 내게 물었다.
“별방진?”
“응. 나도 몰랐는데 여기 별방진 사진 명소라고 사람들 많이 와. 궁금하면 너도 한 번 올라가 봐.”
나는 사진 명소라는 말에 잠시 들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그럼 나 잠시 들렀다가 펜션으로 갈게.”
나는 친구들과 헤어진 뒤 별방진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성곽이 높아서 입구를 잘 찾지 못했다.
‘어디로 들어가는 거지?’ 입구가 안 보여서 뒤쪽으로 반 바퀴를 돌다가 문득 ‘이 성벽 타고 오르는 건 불가능한가?’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내가 오르기엔 너무 높고 반질거렸다. ‘뭐야. 이래서 영화에 보면 적들이 성으로 쳐들어오면 사다리를 밀어 버릴 수 있는 거야?’ 나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입구에는 표지판이 있을 것 같아 먼저 안내 표지판을 찾았다.
‘별방진이 뭐 하는 곳이야?’ 궁금한 나는 표지판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별방진은 조선 종종 5년(1510) 제주 목사 장립이 이곳은 우도와 함께 왜선이 와서 정박하는 곳과 가깝다 하여 김녕 방호소를 철폐하고, 이곳 하도리로 옮겨 구축한 진(鎭)이다.」
옆에는 그림도 있었는데 『탐라순력도』 중 「별방시사」에 그려진 별방진의 모습이었다. 아래쪽에는 이런 설명이 있었다.
「별방진은 제주 도내 9개 진성(鎭城)중 하나로, 우도 부근에 빈번히 출몰하는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진성이다.」
글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제주도에 진성이 9개나 있다고? 그럼 9개 진성은 어디 어딜까?’ 나는 바로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고려 때부터 동부와 서부 해안에 석성을 쌓아 군인들을 주둔시켜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는데 화북진, 조천진, 별방진, 애월진, 명월진, 차귀진, 모슬진, 서귀진, 수산진 등 9진이 있었다.」
-두산백과 두피디아
‘아 그렇구나. 이제 이해됐네’ 그제야 나는 별방진을 올랐다.
안으로 들어가서 본 별방진은 겉에서 본 별방진보다 훨씬 예뻤다.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건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과 노란 유채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형형색색의 지붕이 한적한 느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별방진에는 웨딩촬영부터 프로필 촬영, 여자친구 촬영 등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은 성벽에 앉아 유채꽃을 보면서 뒷모습 사진을 찍어도 예쁜 분위기가 났다. 나는 성벽에 앉아 한참 사람들이 봄을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을 즐기고 있었고, 우리도 아마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네 삶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354
사진 명소, 별방진
유채꽃 보러가기 좋아요!
“민주야, 나 갈게.”
파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떠나야 했다.
“용희, 가는 길에 세화해수욕장 보고 가. 거기 갈매기 많아.”
새 모형만 찍고 가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민주가 말했다.
“아 맞다. 거기... 전에 가본 적 있는데... 여기서 가깝지?”
“응. 여기서 가까워. 길 따라 쭉 가면 돼.”
“전에 가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거든. 세화 바람이 얼마나 센지 갈매기가 날개를 다 못 펴고 공중에 붕붕 떠다니더라. 무동력 갈매기. 웃겼는데... 오늘도 갈매기 있을까?”
“응. 그 동네도 새 많으니까 지금 가면 갈매기 만날 수 있을 거.”
그렇게 나는 세화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어느덧 저녁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어떤 사람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둑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오 저기서도 바다를 볼 수 있네? 저 사람 참 평화로워 보인다.’
마침 해 질 무렵 방문한 세화해수욕장은 노을과 바다 쉬고 있는 사람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고 그곳의 모든 색이 어우러져 색감이 좋았다.
‘좋아. 이번에는 사진을 잘 찍어 보는 거야.’
난 마음을 다잡고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운 좋게도 그때 하늘 위로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찰칵’
긴장하며 셔터를 눌렀지만 사진을 확인하고 나는 뛸 듯이 기뻐 갈매기에게 감사를 전했다. 생각보다 예쁜 사진이 내 핸드폰에 담겼다.
‘갈매기 고마워. 드디어 예쁜 사진 나왔어.’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세화해수욕장
갈매기 많은 세화해수욕장
노을 보며 잠시 물 멍 때리기 좋음
‘아까 이곳으로 오는 길 마을 입구에 커다란 당근이 박혀 있는 마을이 있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나는 아까의 기억을 더듬어 마을을 찾았다. 동네 입구에 커다란 당근 모형이라니 너무 특이했기 때문이다.
‘아 저기 있다.’
지나가다 본 커다란 당근 모형이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찍었다.
마을 입구에는 당근과 함께 안내 표지판이 있었다.
<천년을 가꿔온 마을이 더 아름답게 이어져 가기를 꿈꾸는 평대리>
평대리는 예로부터 '평평하고 너른 땅이라고 해서 ‘벵듸'로 불렸으며, 1910년 이후 그 뜻 그대로 평대리(平岱里)로 명명되었다. 행정구역상 구좌읍 중앙에 위치한 평대리는 동동(갯머리), 중동(감수굴), 서동(대수굴)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근에는 비자림과 바닷가 주변으로 새로운 관광명소가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평대리는 제주의 청정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가장 제주다운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제주 당근‘의 주산지이며, 청정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도 풍부하다.
남쪽으로는 세계 최대의 비자나무 군락지인 '비자림'과 함께 돼지의 모양을 지니고 있어 ‘돝오름'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오름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청정 제주 바다를 품은 쉰모살 해변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마을 길을 이어서 만든 '벵듸 고운길'을 걷노라면 평대리의 삶과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러면 나도 이 마을에서 당근을 구매할 수 있나? 제주 당근 맛있는데...’
나는 당근을 아주 잘 아는 토박이 절친 효경이에게 물었다.
“효경아, 제주 마을 지나다니면서 현지에서 당근 살 수 있는 곳 있어?”
“아마 도매로 다 넘겨서 현지에서 소량으로 사는 건 어려울걸?”
“그럼, 당근은 어디서 사?”
“당근은 당근마켓.”
“엥, 진짜야?”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649-9
당근 명소 평대리 마을
마을 입구 큰 당근이 보이면 우회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