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제주에 놀러 오신다고 하면 어디로 모시고 가면 좋을까? 왠지 부모님과 여행이라고 하면 평소 쉽게 보지 못하는 곳,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곳,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 기억이 될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어진다.
사실 제주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는 부모님처럼 특별한 손님이 오신다고 하면, 그저 그렇고 그런 관광지보다는 아무래도 깜짝 놀라게 해 드릴 수 있는 곳을 찾고 싶기 마련이다. 나중에 함께 추억하면서 "그때 거기 정말 좋았었는데... 더 늙기 전에 가보기 잘 했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부모님과의 여행이 더욱 특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게는 부모님께 꼭 보여드리고 싶을 만큼 특별하게 아끼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바로 80만 년 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머리 해안이다. 한라산이 1만 9,000년 전에 마지막 화산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에 용머리 해안은 한라산보다 훨씬 앞선 시점에 형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용머리 해안은 제주의 현존하는 화산 지형 중 가장 오래된 지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80만 년 전에 지층을 만난다고 해서 어떤 감흥이 있을 지 지질학자가 아니고서야 그 가치를 피부로 느끼지 못할 것 같지만, 용머리 해안은 확실히 좀 다른 것 같다. 켜켜이 쌓인 지층을 보고 있자면 비전문가인 우리가 가보더라도 한눈에 특별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곳이다.
용머리 해안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은 해안으로 땅속에서 솟아나던 마그마가 지하수와 반응하여 분출된 화산재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좁은 통로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수천만 년 동안 쌓인 사암층 암벽이 나온다. 방문객은 입구를 통해 사암층 암벽을 걸어 출구로 나가는 데 걸어가면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에 대체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용머리 해안은 총길이 600m로 그렇게 짧진 않지만 ‘이게 가능해?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보존되어 있다니?’ 하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금방 다 보게 되는 것 같다. 이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느낄 수 없는 고유의 특별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데 이곳의 풍경은 타지역에서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용머리 해안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바다가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파도가 너무 높은 날은 관람이 어렵다. 방문하고 싶으면 당일 아침에 관람 가능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용머리 해안은 매표소 입구 탁 트인 곳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출구까지 나왔다가 출구에서 다시 내려다보는 게 정말 멋지다. 출구의 좁은 암벽 사이로 바다가 펼쳐지는 경관이 가장 멋져서 나가기 전에는 꼭 뒤를 한번 돌아봐야 한다.
처음 용머리 해안을 찾았을 때는 제주에 오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었는데, 당시에는 입구가 두 군데였다. 지금의 입구로 들어가는 쪽과 지금의 출구로 들어가는 쪽. 하지만 지금은 입구가 하나로 통합되고 지금의 출구가 생겼다. 나는 당시 출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용머리 해안에 들어가 보았었는데 처음 발을 내딛자마자
"아. 말도 안 돼.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고." 하며 진심 어린 탄성이 나왔다. 그 뒤 나는 용머리 해안의 경이로운 광경에 마음을 뺏겨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방문은 지금의 입구 쪽으로 들어갔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경관이 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상한데? 지난번에 받았던 감동이 왜 안 느껴지지?'
이상했던 나는 출구까지 도착한 후에 뒤를 돌아 입구까지 걸어봤다.
'역시 이거지. 용머리 해안. 용머리 해안은 출구에서 입구로 걸어야 해.'
출구에서 다시 뒤를 돌아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나만 느낀 감정인 줄 알았는데 도민들은 이런 내용들을 거의 알고 있는 것 같다. 용머리 해안에 가기 전 들렸던 단골 김밥집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용머리 해안에 가실 거면 출구에서 꼭 뒤를 돌아내려 가 봐야 해요. 느낌이 아예 달라요."
희 언니의 절친 김 언니도 내게 말했다.
"용머리 해안에서 좀 걷다가 뭐 별거 없다 하고 다시 돌아 나가려는 데 어떤 아저씨가 그러잖아요. 돌아가지 말고 출구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내려 와 보라고. 그래서 한 번 그렇게 해봤더니 정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거 있죠?"
역시 용머리 해안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고, 출구에서 꼭 한 번 뒤를 한 번 돌아 다시 내려가 봐야 하는 곳 같다.
부모님께서 제주에 오시기로 한 날 나는 용머리 해안을 꼭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아침부터 분주했다. 용머리 해안은 날씨가 맑아도 파도가 높으면 입장이 통제된다. 보통 언제 부터 관람할 수 있는 지 전화로 문의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안내받은 시간이 되더라도 파도가 높으면 해안이 좀처럼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날은 오후 2시 부터 관람할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우리 가족은 무작정 용머리 해안으로 갔다. 하지만 해안이 2시가 되어도 열리지 않아 우리는 오늘 관람은 포기하고 용머리 해안의 한 카페에서 용빵을 먹고 가기로 했다.
"용머리 해안이라 용빵을 파는 거야? 너무 귀엽잖아."
광고판에는 주인장이 직접 만든 곡물 수제 반죽에 머리에는 모짜렐라 치즈, 몸통에는 고구마무스가 들어 있어 단짠의 환상케미를 꼭 맛보고 가라고 써 있었다. 나는 이 카페가 왠지 제주스러운 느낌이 들어 잠시 앉아서 부모님과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여가 흘러 만약 오늘 용머리 해안이 열리지 않으면 송악산을 구경하고 다른 날 다시 용머리 해안에 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부모님께 보여드리지 못하는 건 자못 아쉽지만, 오늘이 날이 아니면 다른 날에 와도 괜찮으니까.
그냥 송악산으로 걸음 하기가 아쉬워 나는 용머리 해안 안내소에 전화를 한 번 더 걸었다.
"아, 지금 오시면 볼 수 있어요. 지금 해안이 열렸어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본 거였는데,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용머리 해안으로 들어갔다.
혹시 바위가 미끄러워 엄마가 걸음을 잘 못 걸으실까 걱정했었는 데 다행히 경사가 많지 않아 엄마도 곧잘 걸으셨다.
"용아, 여기 정말 멋진데?"
"좋은 데 알려줘서 고마워."
부모님이 여행에 만족하시니 나도 기뻤다.
용머리 해안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멀리 보이는 <산방산랜드 바이킹>을 타기 위해 다시 용머리 해안 입구로
걸어갔다. 용머리 해안에 바이킹이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가는 길에 웬 보기 드문 파랑새가 한 마리가 보였다.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사진은 잘 안 나왔지만, 나는 이곳에서 파랑새를 만난 게 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새 이름을 검색해 보니 모양이나 생김이 '푸른 바다직박구리'였다. 가끔 제주에서 파랑새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아이가 이 '푸른 바다직박구리'였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푸른 바다직박구리'를 만나게 되니 마치 꿈 많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지금 하는 일 잘 되게 해주세요."
푸른 바다직박구리를 만나니 마음속 파랑새를 만난 듯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다.
"용아, 여기 달고나 판다. 나 하나 사고 싶은데..."
용머리 해안도 구경하고 용빵도 먹고 푸른 바다직박구리 까지 만나고 나니, 엄마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으셨던 것 같다. 용머리 해안 기념품 가게에서 우리는 달고나를 사서 나왔다.
사실 나는 달고나보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귤 모자가 더 사고 싶었다.
'하나 사서 관광지 갈 때마다 쓰면 괜찮은 구매 아닐까?'
나는 귤 모자가 사고 싶어서 이래저래 써 보았지만, 가족들 반응이 별로라 조용히 놓고 나왔다.
'힝'
용머리 해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단연 <산방산랜드 바이킹>이다. 이 바이킹은 거의 직각으로 높게 올라가는 게 특징으로 바이킹을 타고 산방산 꼭대기까지 오르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원래 바이킹이 저렇게 높게 올라가는 거야?'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데 보다 좀 더 높이 올라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이 바이킹은 우울증, 암, 자살 예방에 아주 좋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궁금해진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진짜 산방산 바이킹 타면 기분이 좋아져?"
무서운 걸 질색하는 나는 바이킹은 못 타고 아래에서 사진만 찍었다.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건 모르겠는데, 이 바이킹 높게 올라가고 되게 재밌네."
오늘 우리는 용머리 해안에서 여느 놀이동산보다 더 알찬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찾아가기>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12-3
문의: 064-760-6321
부모님 모시고 가기 좋은 용머리 해안
가끔 푸른 바다직박구리도 만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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