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라생태숲에는 백로가 살아요

by 김용희

제주에서 숲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한라생태숲이다. 이곳은 먼 옛날부터 말을 키우던 방목지를 숲으로 복원한 곳으로 난대성 식물에서부터 한라산 고산식물까지 한 장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사전 예약 시 누구나 무료로 숲해설가와 함께하는 탐방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내가 처음 한라생태숲 해설가 선생님을 만난 건 가을이 한창일 때 단체로 신청한 숲 체험 행사에서였다. 처음에는 제주의 숲과 나무를 배우고 싶어서 찾아갔지만, 탐방이 진행될수록 숲 해설에 깊이 빠져들었다. 해설가님은 나무와 숲에 대해 아시는 게 많았고, 다양한 전공 서적을 통해 늘 숲에 관해 공부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해설을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최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열심히 핸드폰에 적어 보았지만, 나와 해설가 선생님의 지식 차이가 너무 커서 나의 얕은 지식으로 해설가님 안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이야기들을 한 번에 모두 다 담아내거나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한라생태숲을 거닐며 해설을 듣고 사진을 찍고 식물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평소 숲에 관심이 많은 나였기 때문에 나무와 숲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배우고 싶었지만, 숲 해설을 다시 들을 방법이 없어서 너무나 아쉬웠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나는 해설가 선생님께서 말해 주었던 나무에 대한 깊은 지식과 시적 표현들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용기를 내서 봄에 다시 한번 한라생태숲을 찾아가기로 했다.


한라생태숲의 숲 해설을 예약하려면 누구나 쉽게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하지만 혼자 해설을 듣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지인분들께 함께 가자 청했다. 숲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흔쾌히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총 10명의 사람들이 한라생태숲에 모였다. 이날 나는 운 좋게도 해설가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은 또 어떤 멋진 표현을 해 주실까?' 마음속에는 벌써 기대감이 앞섰다. 이날은 날씨도 화창해서 우리는 좋은 분위기를 느끼며 함께 한라생태숲으로 들어갔다.


숲 해설은 한라생태숲을 돌면서 특정 식물 앞에 가면 그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구상나무 앞에 섰다.

구상나무

"바다 생물 성게를 제주에서는 ‘쿠살 ’이라고 합니다. 구상나무는 왜 구상나무가 되었을까요?"


구상나무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배운 것은 봄이 되어 구상나무의 잎이 피는 모습이 성게 가시가 움직이는 모습 같아서 '쿠살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기서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나는 나무를 낭으로 줄여 부르는 게 귀엽다고 생각해서 속으로 '낭', '낭' 하고 몇 번 발음해 보았다.


구상나무를 살펴보면 한 나무에 암술과 수술이 있는데 암술은 멀리서 오는 다른 나무의 수꽃 가루를 받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달려 있고, 수술은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도록 가루를 날리기 위해 아래쪽에 붙어 있다. 수꽃가루 주머니가 터져서 꽃가루를 날리면 다른 나무의 암꽃에 가서 앉는 형태로 수정이 된다.


“절대 우리 엄마 DNA 안 받아. 다른 수꽃 가루를 받아서 건강한 아이를 만들 거야.”


해설가님은 건강한 씨앗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무의 수꽃가루를 받아야 하는 구상나무를 생생하게 연기하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무를 의인화해서 설명해 주시는 게 신기하고 재밌다고 느꼈다.


우리는 목에 거는 10배 현미경을 해설사님께 받고 현미경 안에 수꽃 가루를 가운데 놓고 자세히 관찰하였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들은 의미 없다고 그냥 지나쳐 가는 게 많았는데 이곳에서 모르던 세상을 다시 배울 수 있는 게 좋았다.

해설가 선생님이 나눠주신 10배 현미경




“이 나무는 단풍나무인데요. 싹을 틔운 지 얼마 안 된 작은 나무예요.”


해설가님의 말씀에 나는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단풍나무는 엄마 밑에 떨어지면 여러 가지 이유로 잘 자라나지 못해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야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어요."


"인간도 좀 그렇지 않나요?"


"그런가요?"


해설사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IMG_0784.jpg 어린 단풍나무



우리는 '솔비나무' 앞에 섰다. '솔비나무'는 제주 안에 갇혀 있는 식물로 제주 특산식물이다. 콩과 나무이고 솔비나무는 여름 장마철에 꽃을 피운다. 여름에 꽃을 피우는 아이들이 그렇듯 꽃 피우는 시기가 짧아 번식이 활발하지 못하고, 장마철 비 오는 시기라서 꽃이 핀다고 해도 곤충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한 씨앗이 맺지 못한다고 한다.

어린 솔비나무

"여러분 공기 중에 가장 많이 포함된 기체가 질소인데요. 질소는 공기 부피의 78%를 차지하고 있어요. 나무는 성장하는 데 질소가 필요해요. 솔비나무는 스스로 질소를 가져와 땅에 고정하기 때문에 주변 식물들도 도움을 받습니다."


해설가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솔비나무가 제주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제주 사람들은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걸 많이 나누어 주려 한다. 솔비나무는 여름에 꽃을 피워서 번식이 좀 어렵다는 해설가님의 말을 듣고 나는 올여름은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솔비나무의 번식이 활발해졌으면 하고 바라보았다.


나오면서 사람들이 말했다.


"용희 씨, 여기 진짜 좋다. 나 부모님 모시고 또 올 거야."


"언니, 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와도 배우는 게 많아서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다음에 여기 또 오자. 사람들 모아서 한 번 더 오면 좋을 거 같아."

나는 한라생태숲에 가자고 먼저 나서서 사람들을 초대했기 때문에 오늘 방문이 재밌었는지 자못 궁금했었다.


한라생태숲을 나서며 사람들이 전하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었다.




이후 나는 한라생태숲에 자주 찾아갔다. 한라생태숲은 꼭 숲 해설을 신청하지 않아도 개인적으로 들어가서 산책해도 좋은 것 같다. 이곳에는 자연습지를 대신해 조성한 연못인 '수생식물원'이 있는데 옆에서 구경하면 늪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이곳에는 개구리 소리라기엔 좀 두껍고 두꺼비 소리라기엔 좀 얇은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고 한 마리의 고고한 백로가 먹이를 사냥하고 있었다.


'앗 백로다.'


나는 백로의 아름다운 자태에 이끌려 백로 쪽으로 다가갔다.


사진을 찍으려 접근하는 데 백로는 좀 똑똑해서 내가 가는 방향의 반대쪽으로 계속 날아다녔다.


'수생식물원도 큰 데 백로를 따라 계속 이리저리 다니다가는 사진도 못 찍고 하루가 다 가겠네.'


좌절해서 연못 난간에 기대 있는 나를 보고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여기 자주 와요?"


"네, 저는 자주 와요."


"여기 너무 좋죠? 저는 일요일마다 여기에 와요."


"정말요? 일요일마다 오세요?"


"네, 일요일마다 혼자 오는데 친구들하고 오면 이야기하느라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보잖아요. 그런데 혼자 와서 이렇게 풍경을 바라보면 좋은 생각도 많이 떠오르고 마음도 조용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아 그렇군요."


나도 아주머니처럼 일요일마다 혼자 와서 연못을 보며 '멍' 때리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 이런 데가 있다는 게 어디예요?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곳이 정말 고마워요."


백로를 찍으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나는 정말 행복하다.'는 마법과 같은 말은 내 마음을 감사로 가득 채워주었다.


'맞아. 인간들이 쉴 곳을 위해서 이런 생태숲이 조성되어 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야. 마음이 따뜻한 어른이시네. 나도 사진 못 찍어도 그냥 마음 비우고 이곳을 더 느끼고 가야겠다. 못 찍으면 또 오면 되겠지!'


아주머니와 말씀을 나누고 있자니, 욕심이 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잠시 풍경을 감상하다가 나는 아주머니께 물었다.


"근데 여기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는 개구리 소리 맞아요?"


"네, 이 소리는 참개구리 소리예요."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신기해서 아주머니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는데 마침 백로가 우리 쪽으로 날아와 한쪽 바위에 앉았다.

백로가 나는 한라생태숲


"지금이에요. 어서 가서 한 번 찍어보세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조심조심 백로 쪽으로 향했다.


"난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지 말고 몸을 구부려서 난간 사이로 찍어보세요. 다들 그렇게 찍던데."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는 몸을 최대한 구부려서 난간에 사이로 백로를 찍었다. 백로는 그사이에 날아올랐다.


"됐죠? 사진 찍으려는 순간 고맙게도 백로가 날아올랐네."


나보다 더 기뻐하며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 된 것 같아요. 성공이에요."


나도 흥분해서 외쳤다.





어느 날 나의 절친 희 언니는 나에게 말했다.


"자기야 '숫모르편백숲길' 가봤어?"


"그런 곳이 있어요?"


"응 한라생태숲 안에 있어."


"저 저번에 한라생태숲 가봤는데 편백 숲길은 못 가봤어요."


"거기는 사람이 많아서 숲에 혼자 가고 싶을 때 가면 좋아. 나랑 한번 갈래?"


"네 좋아요."


나는 희 언니와 한라생태숲에서 만나 입구에서 함께 '양치식물원' 쪽을 향해 걸었다.

팸플릿에는 숫모르숲길 소개가 쓰여 있었다.


<숫모르숲길 4.2km, 1시간 30분 소요>

숫모르란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의 옛 지명으로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옛 숯 굽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숲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환상의 숲길이다. 숲길 2.4km 지점에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숫모르편백숲길은 오름 트래킹과 산림욕을 겸할 수 있다.


"여기는 오르막이 있긴 한데 그리 높지는 않고 계속 가다 보면 평상이 많아서 앉아서 삼림욕을 즐기기도 좋아."


희 언니의 안내에 따라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편히 쉴 수 있는 평상이 나왔다.


"우리 여기서 잠시 쉬어갈까?"


언니와 나는 평상을 털고 잠시 누웠다. 하늘에는 나무들이 빼곡히 보였다. 평상에 누워 희 언니가 말했다.


"자기 그거 알아? 산의 나무들은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는 것. 서로 겹치지 않게 피해서 자라. 골고루 햇빛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양보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로 큰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가 겹치지 않게 자라나 있었다.


"정말 그러네요? 나무 참 똑똑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연은 정말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희 언니와 나무를 한 참 구경하다가 숲을 나왔다.


숫모르숲길의 나무들



<찾아가기>

주소: 제주시 용강동 산 14-1

문의: 064-710-8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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