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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희 Feb 05. 2024

26. 말 등에서 한쪽 다리로 버텨볼까요?

"용희 씨, 지금 달리고 있는 데 오른쪽 발목이 안 움직여요. 발가락에 힘 빼시고, 발목을 아래로 내리세요." 


쥬디가 트랙을 달려 나갈수록 내 발은 점점 까치발이 되어갔다. 


'이게 아닌데?' 


"용희 씨, 허벅지 안쪽을 안장에 붙이고, 발목을 더 내리세요. 발목에 힘 빼고." 


트랙을 돌면 돌수록 점점 발목에 힘을 빼면, 까치발이 되고, 발목을 내리면 상체가 앞으로 굽어져 갔다. 특히 왼발 보다 오른발이 더 안됐다. 쥬디의 목은 어느새 왼 편으로 꺾여 있었고, 회전할 때 내 발은 왼쪽 펜스에 자꾸 부딪혔다. 


"용희 씨, 팔꿈치를 옆구리에 딱 붙이고, 버티세요. 왼쪽과 오른쪽 어깨를 중앙으로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중심이 한쪽으로 쏠리면 안 돼요." 


발목을 밑으로 내리면 상체가 앞으로 나가고 상체를 펴면 발이 까치발이 되고, 왼쪽으로 돌면 왼쪽에 부딪히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무엇보다 내가 중심을 못 찾으니, 쥬디의 목은 이미 왼쪽으로 휘어진 채 트랙을 달리고 있다. 


"용희 씨, 자신의 몸을 컴퍼스 라고, 생각해 봐요. 중심에 있는 컴퍼스 바늘은 움직임이 없잖아요. 자기 몸이 컴퍼스라고 생각하고 딱 버텨야 해요. 용희 씨가 지금 원의 중심에 있으니까, 조금만 회전해도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몸을 다 돌릴 필요가 없는 거예요." 


아 지금 내 상태는 선생님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긴 하지만, 몸이 맘처럼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 게 문제다. 달리며 회전하는 말 등에서는 무게 중심을 대체 어디에 둬야 몸이 딱 버틸 수 있는 걸까?  


"용희 씨, 허벅지 밑으로 다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중심 자리를 찾아요. 엉덩이를 푹 앉은 채로 상체를 뒤로 젖히고, 허벅지에 힘주고 주먹 올리고 고개 내리고 그 상태에서 코어의 힘으로 버텨요."


으헝. 이렇게 하니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허벅지 안쪽에서 아랫배로 전해오는 근육의 움직임이 전해진다. 무지 어색한 걸 보니 아마 나는 그 동안 지금 쓰는 모든 근육의 반대편에 있는 근육들을 쓰고 다녔던 것 같다. 


"용희 씨, 지금 오른쪽 다리 고관절을 옆으로 더 열어야 되요.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잠시만 다들 정지할게요. 정지." 


일렬로 다니던 우리는 잠시 트랙에 멈췄다. 앞에 계신 부부 분들은 이미 십 년 이상 말을 타고 계신 분들이라고 했다. 나 때문에 일행이 모두 정지하다 보니 내가 미안해할까 봐 미소로 웃어주시고 계셨다. 멈춰 선 쥬디와 내 앞으로 이미정 선생님이 오셨다. 


"용희 씨, 왼쪽 발은 등자에서 빼고 그냥 아래로 늘어뜨려 보세요.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절대 안 넘어지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요. 그리고 오른쪽 발은 등자를 끼고, 다리를 접어서 말 옆구리에 붙이고 발목을 아래로 내려요.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굽힌 채 말 엉덩이 쪽으로 깊숙이 붙이고 오른쪽 발목을 내려요." 


"아!" 


이 자세를 취하니 오른쪽 고관절이 벌어지면서 오른쪽 골반부터 허리 뒤쪽에 알싸한 통증이 전해진다. 나는 평소 이 곳을 고이 접고 다녔구나. 다리를 꼬는 버릇을 반성하고 있을 때쯤 오른쪽 엉덩이 위쪽 뼈가 저릿하게 저려온다. 진심 넘 아프다.  


"용희 씨, 이 상태로 달려볼게요. 용희 씨는 안장에 앉지 마시고, 지금 자세로 그대로 서서 달리고, 다른 분들은 속보로 가볼게요. 용희 씨는 이 상태로 두 바퀴만 돌아보세요." 


이미 시작부터 오른쪽 고관절 통증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지만, 뭔가 내가 절대로 버티지 못할 자세를 찾으니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단전 끝에서 물밀듯이 밀려 올라왔다. 옳지 않은 자세로 오랜 시간 살아와서 그런지 당연히 돼야 하는 자세가 안되는 것도 속상했고, 나의 신호를 예민하게 알아주는 쥬디 목을 트랙 중앙에 바르게 해서 달리게 하고 싶은 생각도 굴뚝 같았다.      


"자, 출발." 


똑똑한 쥬디는 벌써 선생님이 '출발'이라고 말하자마자,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앞에서 잘 달리시는 부부 분들이 출발하기도 했고 쥬디도 그 속도에 맞춰서 달리기 시작해서 나도 할 수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참 안되네.' 


트랙을 달려 나갈수록 코어가 자꾸 무너져서 안장에 주저앉았다. 될 것 같으면서, 될 것 같으면서, 잘 안됐다. 


'뭐, 그냥 하는 데 까지만 하지, 뭐.' 


약간의 심적 포기와 함께 상체를 살짝 앞으로 기울여 허벅지로 버티며 타기 시작했다. 말 등에 설 때는 이렇게 상체를 살짝 기울여야 한다고 언젠가 배운 것 같다. 


"용희 씨, 오 지금 좋아요. 그렇게 계속 버텨요." 


말 세 마리가 계속 트랙을 돌고 있고, 나는 마지막 주자로 쥬디 등에서 일어서서 달리고 있다. 지금 내 자세가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잘 모르겠는 데, 선생님께서 맞는 자세라고 하시니 아마 잘 된 건가 보다. 나름대로 안 되는 자세를 도전하고, 성공했다고 하니 마음속에 묘한 희열이 올라왔다. 


"용희 씨, 더 버텨. 한 바퀴 더 버텨요." 


내 자세가 되기 시작하니까 내 스승님인 이미정 선생님도 뿌듯해 하셨다. 처음에 오른쪽 고관절을 때는 통증이 심했었는데, 등에서 움직이다 보니 근육들이 늘어났는괜찮아졌고, 이렇게 계속 달리다 보니 문득 내가 코어를 쓰는 감각이라든지 오른쪽 골반에 대한 느낌이라든지 전에는 잊고 있던 몸에 대한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나는 가만히 버티며, 쥬디의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처음보다는 편해지기도 했고, 어색한 자세로 등에서 버티다 보니 땀이 쫙 나니까 운동을 했다는 느낌도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특훈을 해주신 이미정 선생님께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용희 씨, 두 바퀴 돌라고 했더니, 세 바퀴 돌아버리네. 오늘 완전 잘 했어요. 어땠어요?"


"저도 좋았어요. 이제부터는 오른쪽 고관절을 좀 펼 수 있을 것 같아요."


"느낌 왔죠? 잘했어요. 잘했어." 


수업이 끝나고 나는 문득 나는 내가 잊고 있었던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나 자신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찾겠다고 혼자 산속에서 말만 타면 그것도 참 외롭고 쓸쓸할 텐데, 이미정 선생님도 계시고, 쥬디도 있고, 내 앞에 잘 달려주시는 부부 분들도 있으니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외롭지 않고 행복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 시간에는 또 어떤 걸 배우게 될까? 이날부터 나는 그동안 무섭다고만 생각했던 승마가 처음으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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