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이 되어 승마장이 바빠졌다. 편백숲 외승 체험을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방학이라 어린이들도 많이 온다.
초보자일수록 순하고 난이도가 낮은말로 배정되다 보니 체험 승마를 위해 우리의 영업 3 대장, 스타, 쥬디, 두성이는 너무 바빠서 얼굴도 못 보게 되었고, 나는 아주 생소한 메이블 이란 말을 주로 타게 되었다.
메이블은 스칼렛 보다 더 타기 어려운 말이라 자주 등판하지는 않는데, 요즘 승마장이 워낙 바쁘다 보니 메이블까지 마구간에 나온다. 메이블은 하프링거로 스칼렛 보다는 좀 더 크림색 털이고, 성격은 조용하고 돌발행동은 안 하지만 고집이 무척 세서 잘 안 가는 말로 아주 유명하다.
"용희 씨, 메이블 괜찮겠어요?"
"네. 몇 번 타봤어요."
사람들은 스칼렛이 더 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고집은 세도 돌발행동을 안 하는 메이블이 더 나은 것 같고, 덜커덩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듯, 나는 말을 잘 보내는 편인 게 맞는지 메이블도 내가 보내면 잘 가서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오늘은 미정 선생님과 희숙 선생님이 모두 외승 체험을 나가셨는지 대표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용희 씨, 대표님한테 배워봤어? 대표님이 가르쳐주잖아? 그러면 실력이 많이 는다."
부인분이 신이 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네. 저번에 한번 배워 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대표님은 좀 달라. 세세하게 동작을 지적해서 가르쳐 주기보다는 자신에 맞게, 각자에 맞게 가르쳐준달까?"
부인분은 대표님 수업 방식을 좋아하시는지, 평소 보다 좀 더 들떠 보이셨고, 나 역시 지난번 대표님께 배웠을 때 영감이 막 샘솟았던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뭔가 즐겁고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대표님 수업은 승마의 정해진 룰을 배운다기보단 각자가 가진 상상력을 자극해서 사람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독특한 방식인데, 사실 말의 체형도 다 다르고 사람의 체형도 다 다르다 보니 신체의 무게 중심이 있는 곳이 모두 다르기에 스스로 타면서 신체를 느끼고 자발적인 배움을 가질 수 있는 대표님의 방식은 즐겁고 편안하다.
나는 메이블을 마구간에서 데리고 나왔다. 마구간 입구를 지나 언덕에서 내려가려는데 고집 센 메이블은 안 가겠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나는 아래쪽, 메이블은 위쪽. 이 위치에서 버티는 게 자신이 가장 힘 받기 좋은 걸 아는 눈치였다.
"메이블 가자."
메이블에게 한 마디하고 고삐를 당기는데 위쪽에서 고삐가 휙 빠져서 날아왔다.
'엥? 이게 뭐야? 분명 고삐를 채웠는데 이게 왜 날아오지?'
너무 황당해서 잠시 있다 보니 메이블이 위쪽에서 어슬렁 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빨리 언덕을 뛰어올라 메이블의 얼굴을 안았다.
"대표님! 고삐가 빠져 버렸어요."
앞서 걸으시던 사장님이 내게 오셨다.
"얘가 귀를 내리면 고삐가 빠진 다는 걸 알아요."
"아!"
그러니까 말이 언덕 위에 있고 사람이 아래쪽에서 고삐를 당길 때, 자신의 귀를 아래로 '쫑'하고 내리면 고삐가 '휙'하고 빠진다는 걸 메이블이 잘 안다는 것이다.
나는 메이블이 내 움직임에 맞춰 귀를 내리는 걸 상상하니 좀 귀엽기도 해서 웃으면서 메이블에게 말했다.
"메이블 너 뭐야? 똑똑한 말이었네. 귀를 내리면 고삐가 빠진다는 건 어디서 배웠대?"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빠진 고삐를 다시 채우고 마장으로 향했다.
메이블이 타기 어려운 말이라는 건 바로 타보면 안다. 일단 메이블은 기좌를 단단하게 하면 속도가 무지 느려지고, 살짝 엉덩이를 띄워서 타면 가긴 가는데, 등이 뭔가 동글동글해서 짐볼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어 달릴 때마다 내 상체가 이리저리로 튕긴다.
나는 메이블을 처음 탈 때 좌속보를 하면 잘 안 가길래 말을 빨리 보내고 계속 통통 튕길 때마다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승마에서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보내고 빨리 달릴 때 손잡이를 잡고 위아래로 통통통 튕기다 보니 놀이동산에 온 듯 재미는 있었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출발"
나는 출발 신호와 함께 메이블을 달리게 했다. 회사생활 만렙인 두성이라면 대표님 수업에선 각 잡고 잘 달렸을 것 같은데 메이블은 어째 더 안 가는 눈치다. 나는 상체를 살짝 굽히고 엉덩이를 안장에서 뗀 뒤 말에게 달리라는 신호를 주었다.
뭐 가긴 가는데 상체가 통통거리기 시작하자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용희 씨, 안장에 더 깊숙이 앉으셔서 절대 엉덩이는 떼지 마시고요. 일어설 때 무릎을 살짝 조이고 앉으실 때 무릎을 살짝 풀어보세요. 아주 작은 움직임입니다."
'그냥 무릎만 잘 굽혔다 폈다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디테일이 있었나?'
나는 최대한 대표님의 코칭을 따르려 노력했다.
"좋아요. 용희 씨. 그럼 그 상태에서 일어서실 땐 발뒤꿈치 내리시고, 앉으실 때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보세요."
그러니까 일어서면서 무릎을 조이고 발뒤꿈치를 내리고, 앉으면서 무릎을 풀고 발뒤꿈치를 살짝 들면 되는 거다.
이렇게 하려면 아주 짧은 순간에 많은 움직임을 만드는 거라 잘 되진 않았지만, 나는 네이처라는 걸그룹의 '리카리카 춤'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건가 싶어서 다리를 더 분주하게 움직여보려 노력했다.
몇 번은 되는 것 같고 몇 번은 되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메이블이 별 무리 없이 앞으로 가니 난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수업이 끝난 후 대표님이 내게 물으셨다.
"용희 씨, 우리 승마장에 오신 지 얼마나 되었어요? 1년 되었나요?"
"작년 12월부터 다녔으니까, 9개월 되었네요."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 모르겠다고 잠시 생각하는데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잘 타시는데요?"
"진짜요?"
나는 리카리카 춤을 따라 했을 뿐인데 대표님께 칭찬을 받다니 넘넘 기뻤다. 다음번에 미정 선생님 수업에서도 리카리카 춤을 한 번 해보면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까?
선생님의 반응이 자못 궁금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