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 Jun 10. 2024

예고 없는 이별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란 없다, 그저 오

예고 없는 이별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란 없다,

그저 오늘 뜨겁게 사랑하는 것뿐


경주마 한 마리가 죽었다.


예고 없는 죽음이었다. 또 한 번,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많은 경주마가 경주 중 또는 훈련 중 즉사한다. 혹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당하기도 한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이별의 경우는 조금 더 충격적이었다.

새벽 훈련을 잘 마치고 아침, 점심까지 잘 먹고 잘 지내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약속이 있어 회사 밖을 나왔는데 잠깐 사이 마방 팀장으로부터 몇 통의 전화가 와있었다. 그 시간에 몇 통의 전화라. 좋은 소식일 리 없었다. 불안한 예감이 몰려왔다. 벌써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추스르며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영영삭스가 쓰러졌어요.”  

“왜!! 조금 전까지 마방에서 잘 놀고 있는 거 보고 나왔는데 무슨 일이야? 그 말이 왜 쓰러져!!”

“일요일에 편자를 갈아끼기로 했는데 장제사가 오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조금 전에 편자를 갈아 끼우는데, 말이 너무 흥분해서 그만….”

나는 말 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뒤로 넘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진 것 같아요.”

“하아….”


순간 아찔하고 앞이 캄캄해졌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빨리 조치를 취해 말에게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 조치라 함은 말을 안락사시키는 것이다. 수의사에게 즉각 조치를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바로 마주님께 연락을 드렸다. 말이 경미한 부상을 입거나 치료가 가능한 부상 또는 질병이 생겼을 때도 마주에게 소식을 전하는 건 늘 힘이 든다. 그때도 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전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큰일이 일어나면 호흡을 가다듬을 정신조차 없이 반사적으로 바로 전화를 하고 상황보고를 하게 된다. 이런 큰일을 말할 때는 나도 마주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상황 보고를 하고 서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다. 더 이상 취할 조치란 한 가지밖에 없어 서로 주고받을 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예고 없는 이별을 가져다주는 수많은 관계들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별, 사람과 동물 사이의 이별이 모두 그렇다.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는 현대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고 없는 이별은 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기에 사람과 동물의 예고 없는 이별의 경우 또한 많다. 나처럼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도 수없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예고 없는 이별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이별은 매우 어렵다.


준비 없는 이별을 맞닥뜨렸을 때 그 충격은 어떤 식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수년간 눈을 마주치고 함께 체온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특히 경주마들은 경주로에서 힘들고 고된 훈련을 해내며 인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이번에 떠나보내게 된 경주마는 나와 함께 여러 해 동안 경주로를 달리며 꿈을 키워왔던 친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느닷없는 이별이라니. 준비된 이별이라 해도 익숙하지 않을 이별의 소식을 갑작스럽게 듣고 나니 그 슬픔을 어찌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조교사라는 직업. 경주마를 관리하고 훈련시키고 그 경주마를 경주에 출전시키는 직업. 스포츠로 치면 팀의 감독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조교사라는 직업은 동물을 매개로 스포츠팀을 구성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직업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과 함께 하는 직업이라 많은 어려움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과는 다른 말 못 할 동물과의 고차원적인 교감을 통해 얻는 성취감 또한 남다른 매력이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26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경주마와 만나고 이별했다. 만남은 언제나 설레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이든 만남의 끝에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조교사라는 직업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무척 사랑한다. 그러나 준비된 이별이든 갑작스런 이별이든 이별을 겪을 때면 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리 훈련이 되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이란 인간이 겪어야 할 가장 큰 슬픔이 아닐까.


피할 수 없는 이별에 대한 슬픔을 대하는 자세라는 게 있을까. 아무리 많은 이별을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방법이란 없는 것 같다. 그저 나와 함께 이 세상에 잠깐 와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사람 그리고 동물들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밖에는.

그래서 이미 이별이 찾아온 후에 어떤 대처를 하기보다는 함께 있는 그 순간순간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테다. 특히 나에게 말이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인간을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경주마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경주마들에게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나도 있는 것이니까.

이전 11화 내가 마주가 된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