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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Jun 03. 2024

내가 마주가 된다면?

우리나라 말에 ‘역지사지’라는 게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상대방이 되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찰이 생길 때 상대의 마음 혹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역지사지는 관계를 잘해나가기 위해 무척 중요한 말이다. 그러나 실천하기란 참 쉽지 않다. 나와 상대의 입장을 바꿔보라니… 어찌 그것이 그리 말처럼 쉽겠는가.


조교사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마주와의 관계이다. 조교사, 마주 모두에게 경주마의 부상, 성적 부진 등을 피해가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서로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한국에서 처음 개인마주제(개인이 마주가 될 수 있는 시스템)가 시작된 1993년, 초창기 시절의 마주들이 1세대 개인마주라 할 수 있겠다. 약 20년이 흘러 2010년 이후로 1세대 마주들이 경마장을 떠나고 새로운 세대의 마주가 경마장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이전 세대 마주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예를 들면 1세대 마주들은 조교사를 한 장인으로서 인정하고 경주마를 맡겼다. 즉, 전적으로 조교사에게 경주마 관련 업무를 믿고 맡기는 문화를 당연시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의 마주와 조교사의 관계는 그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갑을 관계’라고 해야 할까. 마주가 조교사의 영역에 들어와 이것저것 관여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동등한 관계로 각자의 입장과 위치를 인정하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면 지금은 그 영역이 허물어진 듯하다. 어떤 마주는 경주마의 훈련, 사양 관리 기수선정, 훈련 지시까지 하기도 한다.

“이론으로 조교사 면허 딸 것 같으면 아무나 조교사 다 하겠다.”라는 우스개 아니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이런 문화는 점점 더 심해지는 듯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상적인 시스템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러다 조교사가 꼭두각시 역할만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주마의 성적이 나쁘거나 경주마의 상태에 따른 모든 책임과 원한은 조교사의 몫이다. ‘왕관을 쓴 자여,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다면 조교사는 ‘조교사의 완장을 찬 자여, 그 어깨의 짐과 스트레스를 견뎌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마에서 ‘마주’라 함은 우선으로 명예직을 꼽는다. 금전적인 것을 떠나 마주란 자체가 영예로운 자리로 인식되는 것이 오랜 전통이자 마주의 위상이다. 그러나 현재의 경마는 영예로운 명예직보다는 마주 자체가 본업인 경우, 또는 부업, 투자의 방법 중 하나인 경우의 비중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자신이 맡겨둔 말 한 필이 매우 중요한 자산의 일부이다 보니, 점점 더 높은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며 또 관여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주의 입장도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말을 따라 ‘내가 마주라면 과연 어떤 마주일까?’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마주란 곧 나의 고객이며, 내 일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입장을 바꿔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 오래전에 보았던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떠올리고 다시 보게 되었다.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마주로서 산다면 어떨까, 처음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나는 절대 마주는 될 리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입장을 바꿔보면 조금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은 광해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아 잠시 자신의 대역이 되게 하고, 왕이 훗날을 도모하며 은신해 있는 동안 가짜 왕이 왕 노릇을 하는 이야기다. 가짜 왕이 왕의 역할을 하는 동안 실제로 왕 다운 왕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내 시각으로 본 이 영화의 핵심이다. 실제로는 그게 쉽지 않겠지만. ‘만약 내가 00이 된다면’이라고 가정을 했을 때 이상적인 역할이 상상 속에서는 가능하듯 말이다.


그래서 나도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우선, 내가 마주가 된다면 경주 기승 경험이 있고 경주마 관리에 있어 섬세하고 예민한 조교사를 선택할 것이다. 우선 스포츠의 감독으로서 기본적으로 필드에서 실전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1번 원칙이다. 그리고 동물을 다룬다는 것은 아기를 돌보듯 섬세하고 예민해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길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인 책임감과 성실함이 있으며 나와 소통이 잘 되는 조교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간섭하고 일일이 체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조교사를 신뢰하고 믿으며 전적으로 지지해주고, 조금 부족한 면이 보인다면 더 잘할 수 있게 서포터를 해주는 마주가 될 것이다. 조교사 역시 나의 꿈의 동반자이니까.

내가 신중하게 선택한 사람이라면 단번에 갈아치우고 실수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바로바로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는 실수를 만회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마주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랬을 때 조교사도 더욱 마주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되고 충성심도 높아질 것이다.


요즘은 조교사가 전문가라기보다는 점점 영업사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마주가 게임 속 캐릭터에 덕질하듯 키워 게임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처럼 경마라는 분야도 점점 그렇게 되는 기분이다. 조교사는 게임 속의 캐릭터이고 캐릭터에 덕질을 해줄 수 있는 플레이어가 마주인 것이다. 장인정신이 점점 퇴색되어가고 조교사의 허들이 낮아지며, 덩달아 조교사의 위상도 낮아지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조교사든 마주든 각자의 역할에서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마주가 되어보았던 것처럼 한 번쯤 마주도 ‘내가 조교사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갑질보다는 나를 영업자가 아닌 전문가로 믿어주고, 성장의 기회를 주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나에게 돌리기보다는 함께 아픔을 공유하며 나아가는 한 팀으로서의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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