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 May 27. 2024

공포의 전화벨

현대인들에게 전화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마치 몸의 일부인 것처럼. 직장인, 주부, 할 것 없이 없어서는 안 될 전화기.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전화기를 몸에 찰싹 달라 붙이고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오후 4시. 그때 전화를 하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어제 일요일 새벽 훈련에 경주마 한 마리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부상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오후에 확신을 하고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보았다. 경주마로서 계속 유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용도 변경을 해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다만 경주마로서 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수술을 진행해야 하고 그 후 회복 정도에 따라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수의사의 소견에 난감했다. 정신이 어질어질하고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이 상황을 마주님께 보고를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나는 패닉 상태이다. 지금 당장 전화를 걸기엔 아직 경기가 남아있는 긴장상태에 있는 나의 멘탈이 버티지를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경마일이 끝난 다음 날인 월요일에 마주님께 전화를 드리고 상황 보고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상황 보고가 끝나고 온갖 질타, 꾸지람을 듣고 대가를 치러야 우선 1차 상황이 종료가 된다. 월요일이 되어도 몇 시에 전화를 거는 게 나을지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이른 오전부터 전화를 걸면 나는 마음이 좀 편해지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쁠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저녁시간에 걸기엔 예의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오후 4시 즈음에 전화를 거는 것이 이것저것 따져 보았을 때 적절한 타이밍이란 판단이 섰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숨을 꾹 참고 전화를 걸었다. 차근차근 상황 설명을 했도 보고를 드렸다. 30분 정도 나의 귀와 마음과 멘탈은 너덜너덜 난도질을 당했다. ‘말이 왜 훈련 중에 다쳤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등등.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이런 상황이 생기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 밖에 수십 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끊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셨는지 마주님은 또 전화를 하셔서 했던 질타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먹은 것도 없이 토할 것 같은 몸 상태가 된다. 한 참을 멍 때리다 약봉지를 뜯어서 물과 함께 꿀꺽 삼키고 가사 없는 음악을 틀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나의 몸과 마음을 펴보려 침대에 잠시 몸을 기댄다. 몸과 마음이 구겨져 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자동으로 최대한 쪼그뜨리고 웅크릴 수 있는 자세로 벽을 보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


경주마들이 훈련 중에 부상을 입는 일은 흔하지만 그 흔한 일이 내 일이 아니기만을 바라는 게 대부분의 조교사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이 아닌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나에게도 온다. 자주는 아니지만 세상 어떤 공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힘든 전화이다.


매주 돌아오는 월요일.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게 된다. 월요일 오전 업무를 끝내고 여유가 생길 만한 오후 2시. 일요일까지 치열했던 경주를 치르고 이제 한숨 돌리기 위해서 침대에 누워 무념무상의 자세를 취한다. 천장을 쳐다보며 멍을 때리고 고양이가 배 위로 올라와 나를 간지럽힌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2~3분을 넘기지도 못한다. ‘뭐지? 이 시간에 또 누구지?’ 반가운 전화일 것이라는 기대는 1도 안 한다. 마방에서 걸려오는 직원 전화이거나 발신자가 수의사로 확인이 될 때에는 갑자기 귓속에서‘삐~’하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한다.

수의사가 아니더라도 업무 관련자에게 걸려오는 전화밸이 울리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고. 누군지 모르지만 약간 공황장애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도대체 왜 이런가? 다른 사람은 전화가 울리면 (빚이 많은 사람의 경우를 빼고) 누가 전화했지? 하고 반갑게 액정을 쳐다본다. 가족인가? 친구인가? 연인인가? 반가운 사람이면 냅다 전화를 받지만, 때때로 싫어하는 사람이 전화를 오면 슬쩍 벨이나 진동을 끄고 못 본 척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일단 벨이 울리면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도 하기 전에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핸드폰을 최대한 멀리 두고 쳐다보며 마치 안 보이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한다. 사실 정말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왜냐하면 거의 99% 일과 관련된 전화, 특히 70% 이상은 마주 즉 나의 고객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 50% 이상은 심각한 일, 급한 일, 안 좋은 일에 관련된 것이다.

말이 기분이 좋아서 신이 났다는 전화는 직원에서 걸려 올 일이 없다. 그중 수의사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제일 무서운 전화 중 하나다. 마치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는 듯한 기분이다. 지난 일요일에도 훈련 중에 부상을 입은 말의 엑스레이 결과를 알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는 데 우선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이 순간이 제발 꿈이기만을 바르는 마음뿐이었다. 예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수의사의 목소리 톤이 검사결과를 미리 알려준다. 그때부터 나는 숨을 쉬어도 숨 쉬는 게 아니고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다. 그냥 땅으로 꺼지거나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순간들은 일반 사람들이라면 어쩌다 일생에 몇 번 겪을까 말까 하는 일을 나는 수시로 겪는다. 그리고 일련의 일어났던 일들을 마주에게 보고를 하고 그 후 나의 멘탈이 걸레처럼 너덜너덜 해져야 1단계가 끝이 난다. 그리고 보고가 며칠 늦어졌다가는 더 큰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보고의 유효기간은 하루를 넘기면 안 된다. 그 안에 나는 지옥을 통과하고 나와야 한다.


전화를 받기 싫어 꺼두거나 안 받으면 거기에 대한 대가가 더 따른다. 반드시 따른다. 핸드폰을 공중분해 해서 날려버리고 내가 원하는 전화벨만 울리는 전화를 사서 평화롭게 사는 그날을 기다린다. 지금 현재 감사하지 않는다는 게 절대 아니다. 그냥 그런 날이 내게도 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전에 쓰던 휴대폰의 연락처는 단 한 건도 남겨놓지 않고 불태워버리고, 새로운 전화번호부로 싹 교체하는 그날이 오길.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하고 싶은 걸 다 한다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불안함을 늘 안고 살아야 하는 직업은 쉽지 않은 길이다. 다른 직업보다 훨씬 많은 리스크를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그 리스크들은 모두 전화벨을 통해 내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에겐 공포의 전화벨이다.

이전 09화 가면을 벗고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날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