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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May 13. 2024

‘꿈의 동반자’

경주마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기수 시절에는 경주마를 타고 꿈을 향해 달렸다. 조교사가 되고서는 경주마를 타고 직접 경주에 출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수와는 또 다른, 어쩌면 더 넓은 의미의 꿈을 꾸는 것 같다. 조교사는 경마장에 들어오기 전 망아지 시절부터 함께하게 될 말을 만난다. 조교사는 말이 경주에 출전해 경주를 잘 치를 수 있도록 직접 기승해서 훈련하는 역할을 한다. 이뿐만 아니라 24시간 아기를 돌보듯 먹는 것부터 아픈 곳, 잠자리까지 챙기는 것이 조교사의 일이다. 그리고 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이별의 절차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것 또한 조교사의 몫이다.


나는 적게는 한 달에 두 번, 많게는 한 달에 네 번 정도 제주도에 간다. 경주마 생산 목장에 가기 위해서다. 미래의 경주마가 될 여러 말들을 미리 만나면서 열매의 씨에서 나무를 보듯 망아지에게서 명마의 미래를 본다. 우리는 대부분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의 표면만을 본다. 하지만 말을 다루는 우리 조교사들은 마치 본능이자 습관처럼 그 안에 담긴 잠재성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제 겨우 초원을 달리기 시작한 망아지를 보면서 미래의 경주마가 되어 경주에 출전해 함께 우승하는 꿈을 꾼다. 그 안에 담긴 재능과 미래에 이룰 꿈의 씨앗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조교사는 단순히 좋은 말을 고르고, 훈련하는 일만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꿈을 읽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은 내게 꿈의 동반자와도 같다.

우리는 사물을 통해서 의미를 새기고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한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되며 서로의 영혼 속에 기록되기도 한다. 말 역시 그렇다.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함께한 모든 순간이 영혼에 기록된다. 특히, 함께 훈련한 말이 우승했을 때, 우리는 서로 그 우승의 기쁨을 공유하는 특별한 관계로 남게 된다.  


조교사는 마음에 드는 말을 만났을 때 큰 경주에서 우승하며 함께 영광을 누리는 상상을 펼친다. 그래서 목장을 돌아다니며 여러 망아지들을 만날 때면 미래의 멋진 모습들을 수없이 상상하며 ‘아…! 조교사란 직업은 정말 매력적이야.’ 하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그리고 선택한 말들이 경마장에 들어와 나와 호흡하면서 함께 훈련하고 성장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낀다. 아마도 ‘꿈의 동반자’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때때로 ‘우리는 어쩌면 한 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나쁜 기록이 나오면 말과 나는 함께 욕을 먹는다. 한 몸이기에 함께 우울하고 함께 좌절감을 느끼기도 한다.

수많은 말과 만나고 또 이별했다. 조교사로서 가장 힘든 일은 수년간 함께 동고동락한 말들과 이별을 할 때다. 어느 말 하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친구는 없다. 그중에서도 종종 특별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그런 이별이 있다. 그날은 언제까지고 잊히지 않는다.

매년 봄이 되면 2세의 어린 말들이 적게는 각 마방마다 15마리 많게는 25마리 정도가 경마장에 들어온다. 다른 의미로는 그만큼의 경주마가 경마장을 떠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마리 한 마리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나도 십수 년간 많은 말을 만나고 또 이별했다. 기대한 것보다 좋은 성적으로 잘 뛰어주고 건강하게 경주마로 은퇴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제2의 삶을 찾아 경마장을 떠나는 말들은 그나마 다행이고 마음이 놓인다. 그렇지 않고 잔뜩 기대를 안고 경마장에 들어와서 기대만큼 성적을 내주지 못하는 말은 나와 함께 엄청난 질타와 욕을 먹으면서 경마장에서 버텨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경마장을 떠나보내야 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었다. 그 말들을 볼 때면 내가 부족해서, 내가 미진해서 그랬던 건 아닐까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런 말들은 더더욱 오래도록 아프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슬프고 아픈 꿈을 꾸다 깨서 남는 여운처럼.


함께 꿈을 꾸는 존재, 사랑하는 존재는 현재 모습만을 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잠재력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믿고 지지하고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함께 꿈꾼다’라는 것은 일단 서로를 선택하고 함께 가기로 했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기쁨도 슬픔도 공유하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가는 것이다. 나와 말의 관계가 그렇다. 일단 선택했다면 최선을 다해 함께 가보는 거다. 설령 그 선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처음 함께 꿈을 꾸던 ‘꿈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어쩔 수 없이 짧은 인연으로 이별해야 하거나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게 서로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믿었다면, 그 관계가 끝났다 하더라도 영원히 가슴에 새겨진다. 서로를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관계로 남는다. 그게 진정한 꿈의 동반자가 아닐까.

그러니 사람이든 말이든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꿈을 꾸기로 했다면, 그게 누구든 끝까지 믿고 지지해주길. 함께하는 동안 원 없이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끝까지 가보는 거다. 그런 진정한 ‘꿈의 동반자’가 내 삶에 가득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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