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에게 있어 김장이란.
음식만들기, 그 이상의 무언가
11월이 되면 여자들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한다. 올해 김장을 할 것이냐 종갓집 김치를 공수해 올것이냐, 아니면 아쉬운대로 겉절이라도 담글 것이냐. 워킹맘들에게 김장이란 시간과 체력적 한계로 인한 ‘언아더 레벨’일 수도 있지만, 잠시 일을 쉬고 있는 나 같은 전업맘에겐, 그리고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살림이 어느 정도 손에 익은 여자에겐 김장은 단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시댁에서도 꽤 오랫동안 매년 함께 모여 김장을 했더랬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해던가 그 다음 해던가, 형님네 두 집과 동서 네와 우리 집까지, 그리고 관절염이 심해 김장을 못하는 친정엄마 집과 동서네 친정집까지 배추 300포기를 담았다. 그 해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시댁 형님들이 이제 그만 김장은 각자 하자고 말씀하셨다. 새댁인 동서와 나는 그저 양념을 바르는 정도였지만, 김장 양념을 만들기 위해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준비하고 무와 갓을 채 썰고, 새우젓을 공수해오고 하는 등등의 밑 일까지 다 준비해야 하는 두 형님에게 김장은 훨씬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김장을 안 한다고 하니 그저 좋았다. 뭔가 여자로서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한번은 마침 절인 배추에 양념을 다 만들어주고 가서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김장 체험 축제를 하길래 가서 김장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나는 체험이 재밌고도 김장도 꽤 맛있었는데, 남편은 입에 영 안 맞았는지 다음해부터는 가지 말고 차라리 사서 먹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작년부터 시댁에서 김장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남편을 통해 전해졌다. 부인과 수술을 받은 지 네 달 밖에 되지 않을 때였다. 아무 의논도 없이 김장이 부활했다는 소식만 전하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나는 김장을 할 힘도 체력도 없으니 식구들 보고 싶으면 여보만 가서 인사드리고 일손을 보태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가도 도움도 안되고 미안하기만 할 일이었다. 배에 구멍을 네 개나 뚫고 수술을 했지만 밥할 사람이 없어 수술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들어야 했던 나였다. 더 이상의 요구는 나에게 무리였다. (그래도 수술 후 오일간 반찬을 해다 주신 작은 형님 덕분에 온 가족이 생존할 수 있었더랬다.)
한 해는 참 빨리도 돌아왔다. 작년에만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 줄 알았더니 시댁 식구들은 다시 또 모여 김장을 한단다. 어차피 나는 올해도 김장 생각이 없었고, 김장을 다시 하자는 의논도 없었던지라 일요일 점심 식사를 식당에서 대접하자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굳이 김장이 끝난 그 저녁에 가서 인사를 하잔다. 조카사위도 왔으니 인사도 할겸, 내일 아침 일찍 돌아갈 수도 있으니 오늘 저녁에 일단 가고, 내일 식구들이 늦게 가면 점심도 사자는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 보고 싶은 건지, 갓 만든 김치에 수육에, 굴을 쌈 싸먹고 싶어서 하는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하찮은 일로(?)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근처에 사는 형님네에 잠시 들렀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고, 시아버님도 돌아가신지 10년이나 되었기에 시댁식구라 해봤자 두 분의 시댁 형님과 도련님네가 전부라지만 낯을 심하게 가리는 대문자 I인 나는 아직도 시댁 식구와의 만남이 편하지가 않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딱히 음식이 목구멍에 잘 넘어가지도 않는다. 같이 김장을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고된 노동의 결과물을 맨입으로 염치없이 먹느냔 말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과 아이들은 갓만든 김치에 돼지고기 한 점을 스윽 얹어 와그작 와그작 참 맛있게도 씹어 삼킨다. 형님이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신랑에게 이제 그만 가라고 했는데도 남편은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다. (가라고 한다고 바로 간다면 그게 더 내가 밉보일까봐 한 수 더 생각한걸까.)
어제 서울에서 하루 묵었던 호텔이 베이커리로 꽤 유명하길래 롤케잌과 호두파이를 곱게 포장해 왔더랬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직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혼인신고를 마친 조카에게 빵이 든 종이가방을건넸다. 전화로만 축하한다는 얘기를 하기가 미안해서 미처 전화를 못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작은 선물에도 감동하는 큰조카는 “외숙모,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 높여 인사를 했다.
언제쯤이면 시댁이 홈그라운드처럼 느껴질까.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명절 전후로, 제사 전후로, 이제는 김장 전후까지 시댁 일로 예민해져서 서로 날을 세우며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서울에 사는 40대 중년여성들이 속의 화를 풀기 위해 양재천 주변 산책로를 그렇게도 걷는다는데, 나는 우리 동네에 졸졸 흐르는 시냇가 옆의 시골길이라도 좀 걸어야겠다. 그리고 김장은 못해도 가을에는 약이라는 가을배추를 사다 맛있게 겉절이라도 좀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