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를 마무리 짓고 부엌을 정리하면서 초5인 아들에게 남은 음식물들을 숟가락으로 긁어 음식물쓰레기통에 모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손끝이 야무져서 일을 시키면 척척 해내는 아들은 나에게 있어 부엌일을 도와주는 든든한 일꾼이다.
아들이 내가 건네준 숟가락을 보더니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는다.
“엄마, 이 숟가락 어디서 놨어?”
“이거? 엄마 어릴 때 쓰던 숟가락이야.”
“근데 이게 왜 우리집에 있어?”
“엄마가 자취할 때 쓰다가 결혼하면서 이것까지 챙겨왔네. 하하.”
그렇다. 그 숟가락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쓰던 숟가락이니 족히 30년이 넘은 유물이었다. 어쩌면 족보를 제외하고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거 우리 급식소에서 제일 좋은 숟가락이야. 바로 인삼 뿌리가 그려져 있는 그림 말이야. 우리가 밥 먹을 때 급식소에서 숟가락을 하나 꺼내잖아. 우리는 그걸 숟가락 뽑기라고 부르는데 숟가락마다 등급이 있어. 제일 좋은 이 인삼뿌리 숟가락을 뽑으면 말년병장이야. 100개 중에 하나 정도의 비율로 있거든. 나도 일년동안 딱 한번만 걸려 봤어. 그다음 일등병 숟가락이 있고, 이등병 숟가락이 있어. 이것들은 뭐 흔해 빠진 보통 숟가락들이고 그림도 똑같아. 그래서 그래.”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미건조한 학교생활에서도 아이들끼리 스스로 활력을 찾고 재미를 찾는 다는 것이 꽤 멋지다고 느껴졌다. 특히 올해 아들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디어가 다양하셨다. 두 달 전쯤이던가. 사회시간에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면서 부모님들에게 ‘만약 내 아이가 임진왜란 당시에 군인으로 나가게 되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지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세요.’ 라고 부모용 숙제를 내주셨더랬다.
브런치에 글쓰느라 바빴던 이 무심한 애미는 아들의 숙제를 해주지 못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편지를 써 볼까 하고 그 상황에 몰입해서 잠시 생각하기만 했는데도 너무 끔찍하고 실감나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 애써야 했다. 분명 군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나라를 위해 싸우라고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상황이 살면서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진다. 내 마음이 그러하더라도 열심히 잘 싸우다 오라거나, 엄마 걱정은 하지 말라거나, 이런 말들을 해줘야 하는데, 솔직하지 않은 것은 말로도 글로도 못하는 성미라 웬만하면 학교에서 요청하는 일들에 참으로 협조적인 나로서도 이번에는 패스해버렸다.
다행인지 몇 분의 부모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셨고 그 수업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절절한 마음으로 써 주셨길래 그랬을지 나도 궁금하였다. 아마도 그 부모님들은 생활에 치여 평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셨을 것이고, 사실은 너를 아주 많이 아끼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셨을 것이다.
지난 여름에 남편이 아들과 아들 친구 둘을 데리고 왕복 3시간을 걸려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대전 시티즌 홈경기를 보러 함께 다녀왔던 적이 있다. 남편은 두 아이 어머님 전화번호를 미리 받아 전화를 드려서 경기를 잘 보고 집까지 아이를 내려 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미리 잘 말씀을 드렸다. 남편은 그날 아이들과 함께 치킨과 햄버거를 먹으며 축구 경기도 직관하고 집 앞까지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해 주었다.
며칠이 흐른 후 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 축구 같이 보러 갔던 재연이가 너희 아빠 진짜 최고라고 하더라. 자기 아빠는 무섭기만 하고 자기랑 잘 놀아주지도 않는다면서...”
남자아이지만 유독 공감능력이 뛰어난 아이인지라 그 말을 나에게 넌지시 하면서도 아빠에 대해 고마우면서도 친구에게 뭔가 미안한 아무튼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게 전해졌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도 그 아이에게는 자신의 아빠가 훨씬 더 소중하고 더 없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저 아빠와의 다정한 한때와 함께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일상이 필요했을 뿐일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아이의 가까운 친구들 중에서도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빠 혹은 엄마와만 지내는 경우를 아이는 많이 보고 들어왔다. 나 역시 초등교사로 오래 교직에 머물면서 부부간의 어려움이나 문제로 인해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이로 인해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학업에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더랬다. 이혼은 부부 개인의 선택이고, 각자 얼마나 많은 사연과 다사다난함으로 힘들게 내린 결정인지 그 과정과 결과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 곁에서 오래 지켜봐오면서 절절히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결과의 몫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다는 것도 참 많이 보아왔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떤 면으로든 어른의 결정으로 아이의 인생의 중요하고도 꽤 많은 부분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게 되기 때문이다.
매일 급식시간마다 숟가락 하나씩을 꺼내며 뽑기 놀이를 하는 아직은 철이 들려면 멀은 것 같은 아이들이라도 사실은 다 안다. 부모님의 사이와 그것이 우리 가정에 가져올 파장과 이로 인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꽤 진지하게 걱정하고 고민한다. 그것은 사이가 좋은 부모를 둔 아이에게도 그렇지 않은 부모를 둔 아이에게도 정도의 차이이지 꽤 중요한 관심사이고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잘 키워낸다는 것은 사실은 부모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좋은 사람으로 좋은 어른으로 그저 잘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 나는 가정보다 더 본질적이며 중요한 단체와 조직을 알지 못한다. 가정이 흔들릴 때 학교가 흔들리고 나아가 사회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부부로서, 가족으로서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삶 자체로서 보여주는 것은 아이가 삶에 대한 희망과 지표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방향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도 부족하나마 나 자신을 잘 관리하고 집을 잘 관리하며 가족 관계를 잘 가꾸어가고자 노력한다. 그저 ‘house wife'로서가 아니라 ’home maker' 이자 가정 내의 ‘peace maker'가 되고자 나는 오늘도 내 마음과 몸을 거울에 비춰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