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
로맨틱 영화가 현실이 되다니.
요즘 나는 ‘케빈 오’라는 가수에게 흠뻑 빠졌다. 평소 ‘공블리’라고 불리는 배우 공효진을 참 좋아해왔는데 비혼주의자라던 그녀가 10살 연하의 가수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에는 결혼에 골인하여 유부녀가 되었다는 신선한 소식에 상대가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가진 남자일까 궁금했더랬는데 그가 바로 케빈 오였다. 사랑에 빠진 여배우와 사랑에 빠진 남자가수의 만남이란 영화배우의 소재 같이 로맨틱하기만 하다. 그런데 공효진이 하루는 인스타그램에 ‘작사 공효진 작곡 케빈오’라고 손으로 흘려쓴 악보의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야말로 로맨틱 영화 아닌가. ‘그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한국 버전만 같다. 이렇게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를 아니 들을 수 없어 달달하기만 할 것 같은 그 노래의 제목인 ‘너도 나도 잠든 새벽’을 유튜브를 검색했더니 케빈오의 얼굴이 담긴 라이브 영상이 아름다운 음색을 타고 흘러 나온다.
너도 나도 잠든 새벽
창 밖 모든 게 까만 이 밤
아무 소리 없이 외롭고 고요한데
쌔근 깊이 잠든 너의
숨소리만 들리는 방
마치 우린 세상에 단
둘 만 있는 것 같아
오래도록
너는 나고 나는 너일까
너의 사랑스런
눈에 내려앉은 어둠이
혹시 날 지울까
쓸데없는 걱정들이
피어오른 까만 이 밤
반짝이는 너의 두 뺨에
사랑이라 쓰여 있네
오래도록
너는 나고 나는 너일까
너의 사랑스런
눈에 내려앉은 그 빛이
곧 나일까
멜로디도 노랫말도 달콤하다. 아름다운 노래는 그 자체로 시 한편이고, 아름다운 시는 그 자체로 노래가 된다더니 진짜 그렇다. 게다가 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무려 잘 생기기까지 했다. 평소 꽃미남 스타일은 좋아하지 않지만 저렇게 소년미가 흐르는 남자라면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 스타일의 남자이다. 게다가 내 또래인 공효진보다 10살이 어리다면 그는 이제 겨우 30대 초반이니 소년미가 충분히 넘칠 나이이기도 하다. (물론 소년미는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불혹의 나도 이제는 잘 안다.)
그런 케빈 오가 군대에 갔단다. 그는 미국에서 출생해서 자란 미국 시민권자라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데, 사랑하는 아내가 사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팬들을 위해 군대를 가기로 선택했고 공효진은 40대 초반의 나이에 졸지에 ‘곰신’이 되었다.
학교에 다녀온 중3짜리 딸아이에게 말했다. 딸아이는 밴드부 피아니스트라 평소 노래를 꽤 많이 듣는 편이라 케빈오를 아는지 궁금했다.
“소희야, 너 케빈 오 알아?”
“아니 몰라.”
“그럼 공효진은 알지? 공효진이 결혼한 10살 연하 남편이 케빈 오야.”
“아~알겠다. 케빈오 군대 갔잖아. 근데 엄마 그거 알어? 케빈 오가 군대 가기 전에 예약 이메일을 써 두어서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공효진에게 매일 메일로 편지가 온대.”
햐...멋지고 잘생기고 목소리가 좋은데 타고난 건지 노력하는 건지 암튼 센스까지 좋다. 게다가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여보가 군대가면 나한테도 그렇게 예약메일로 편지 써줄 수 있어?”
“아니~ 이제 아닌건 아니라고 확~실히 얘기해주기로 했어.“
이 남자, 평소 단호한 줄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단호박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래도 우리 남편은 20대 초반의 풋내기 시절, 까까머리를 하고 밖에서 소변을 누면 모양 그대로 얼어버린다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이기자 부대’에서 여자 친구 없이도 혼자 씩씩하게 군대 생활 잘 해낸 덕분에 나를 40대 초반에 곰신으로 만들어 힘들고 슬프게 하지 않았으니 예쁘게 봐주기로 한다. 침대 위에서 뭔가를 먹는 걸 질색 팔색 하게 싫어하는 나지만, 영하 9도의 춥디 추운 날씨에도 가족들 먹여 살리려고 하루 종일 외근하고 밖에서 오들오들 떠느라 삭신이 쑤신다는 남편에게, 침대 위 40도의 뜨끈한 전기 매트 위에서 지지며 맛동산을 오드득 오드득 씹어 먹을 수 있는 특권 정도는 쿨하게 허락하기로 한다. 심지어 오늘은 오랜만에 뽀송뽀송한 스프레드로 갈아 두었지만 말이다.
내가 ‘공블리’가 아니기에 남편이 ‘케빈 오’가 아닐 뿐인 거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밤이 되면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이 노래를 남편과 함께 들으며 노곤노곤하게 잠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밤이 되었을 때 ‘자러 가자’하고 함께 침실로 들어가는 그때가 바로 신혼이라던데, 잠드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어느새 많이 달라져버린, 결혼 15년차 우리는 그저 달콤한 노래 하나로 뜨겁지는 않더라도 뭉근한 애정을 확인하며 스르르 잠이 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