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방법
슈링클스야, 애 둘을 부탁해!
하루를 그날 해야할 일 체크리스트 목록을 작성한 후 하나 하나 지워가며 생활한 기간이 참 오래 되었다. 그건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들기 전 다음날 해야할 목록을 작성하고 나면 그나마 푹 잘 잘 수 있었다.
교실 안 한쪽 내 책상 위의 달력에는 늘 여러 가지 일정과 해야 할 일들로 빼곡했다. 하루는 학년부장선생님께서 내 달력을 보시더니
“정샘, 무슨 연예인이야?”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린 적도 있다. 그렇게 바쁘게 가열 차고 치열하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날 해야 할 체크리스트들을 다 해치우지 못 한 채 하루가 마감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다. 출산과 육아는 현실이었다. 혼자서 내 몸 하나 건사하며 다니는 직장생활과 두 아이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다니는 직장은 천지차이였다. 늘 종종거리며 바둥 거리며 지내도, 잠들기까지 아등바등 해도 해야 할 일들을 다 끝내지 못 한 채 이상하고 묘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열패감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좌절감이 몰려왔던 것이다.
얼마전, 이제는 GD보다 더 멋있는 이찬혁의 노래를 듣고는 ‘그래, 이거지’ 싶었다. 유튜브에서 한 책의 리뷰를 하며 마흔의 등대 김미경 언니가 말씀하시지 않던가. 그날 해야 할 모든 일의 목록을 다 해치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말이다. 해야 할 일 목록만 처리하며 살다가는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해야할 일만 뒤치다꺼리 하다가 끝난다고 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스티븐 코비도 비슷한 맥락으로 말했다. 삶에서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행하며 살라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저 멀리 있는 등대는 등한시하며 살아온 건지 모르겠다.
방학이라 맡은 집안일 목록과 가야할 학원 스케줄 틈에서도 중3 딸아이와 초5 아들은 슈링클스 만들기에 한창이다. 종이와 코팅지를 반쯤 섞은 듯한 데에 연필로 그림을 그린후 색연필로 칠한다. 주로 캐릭터를 그린다. 가족들에게 원하는 캐릭터를 주문 받기도 한다. 나는 빨강머리앤을 주문했고, 남편은 강백호를 주문했다. 부부간에 근본없는 커플 매칭이지만 어쩌랴.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니까.
아침에 일어나 눈곱도 떼는 둥 마는 둥 하고 작업모드에 들어간 아이들을 보며 마냥 웃음이 지어지는 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그 마음을 나 역시 잘 알기 때문이다. 자야하는데 읽던 책이 마저 읽고 싶고, 밥을 해야 하는데 하필 글감이 떠올라 글이 마구 쓰고 싶어진다. 때론 병원에 가는 시간조차 아깝게 느껴진다. 기이한 일이다. 좋아하지만 아직은 마음만큼 잘 하지 못하는 일에 안달이 나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더 하고 싶고 더 잘해 내고 싶고 말이다.
오늘도 둘이서 인터넷으로 캐릭터 이미지를 찾아 따라 그리고는 난데 없이 색칠공부?를 하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나도 내 삶에 어떤 활력소와 재미를 끌어와볼까 곰곰이 생각한다. 음악, 영화, 티비 예능 프로그램. 아침공기 맡으며 걷는 산책. 내 삶에 활력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겠다.
내일은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방학동안 삼시세끼 굴레에 씌여 해오지 못했던 나의 루틴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때로 시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태우는 쓰레기 더미 냄새로 매캐하지만, 혼자 고즈넉이 맞이하는 시골길의 아침은 그 연기조차 상쾌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It's you
시리얼에 우유를
부을 때조차 It's you
창문을 열었는데
뭉게뭉게 구름이
변하더니 네 얼굴이 보여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손톱만큼도 의미 없어
네게 달려가지 않으면
오늘 내 몸이 제 역할을 한 적이 없어
이럴 계획은 없었는데 Yeah
우선순위를 정하고 싶어
다른 것을 다 제쳐두더라도
널 보고 싶어 (I miss you)
옷장을 열었는데
멋진 가죽 재킷이
날 껴안고 속삭이네
Let's go
<당장 널 만나러 가지 않으면 by 이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