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간의 방학일주 대작전
개학까지 잘 살아남기로 해요, 우리.
어느새 훌쩍 1월의 하순이 되었고, 5학년인 둘째 아이의 기나긴 겨울 방학은 이미 월초부터 시작되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둘이 나란히 같이 방학을 해서 방학이 되어도 두 아이의 하루 일정이 비슷하게 돌아가니 그나마 지낼 만 했더랬다. 그런데 첫째 아이가 중학교를 가면서부터는 두 아이의 방학 일정이 서로 완전히 달라지면서 누나 없이 일찍 방학을 하면 둘째아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몰라 했다. 맨날 하는 말이 “엄마, 누나 언제와?” 였고, 그 질문을 하루 서너번, 혹은 내댓번 해대야 하루가 지나갈 정도였다.
이제 둘째도 많이 자랐는지 올해부터는 누나 없는 혼자만의 방학을 꽤 잘 보내주고 있다. 학기 중에 미리 신청해 두었던, 하지만 본인과 의논 없이 신청했다고 타박을 들었던 학교 영어 캠프를 일주일간 잘 다녀주었다. 원어민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이었고 하루에 1시간 20분 정도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그날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아이클레이로 어떤 것들을 만들었는지 보여주었다. 영어 캠프의 주제는 ‘Monster' 였는데 손재주가 있는 원어민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시간 이었나보다. 원어민인 제임스 선생님이 직접 아이클레이로 만든 갖가지 몬스터를 보여주며 영어로 "가지고 싶은 사람?" 하고 물었는데 아이들이 그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 한국말로 자기가 갖겠다고 했다나.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영어 학원을 보냈던가. 3학년 봄부터 보냈던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꽤 늦게 영어를 시작했는데도 아이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나 겁이 없어 다행이었다.
이번 방학 때는 아이들에게 학기 중에 못해주었던 어떤 것들을 심어주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이제 두 아이는 내가 옆에서 끼고 앉아 공부를 봐줄 시기는 어느덧 지난 듯하다. 이제 고등학생으로 올라가는 딸아이의 문제집이나 교과서는 이제 읽어도 당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은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이다. 도대체 내가 중고등 학교를 어떻게 다니며 공부했지 싶다. 아니면 요즘 아이들의 교육과정이 20-30년 전에 비해 많이 어려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학원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지 때때로 물어보고, 학원 수업에 늦지 않도록 식사를 제때 챙겨주는 것 말고는 내가 공부에 별로 도움이 될 건덕지가 없다.
언젠가 교육대학교 교수로서 30년 가까이 일하시고 계시는 가까운 지인분께 어떻게 하면 교대에 갈 수 있냐고 여쭈었다. 나도 교대를 졸업해놓고 어떻게 하면 교대에 갈 수 있냐고 묻는 건 좀 아이러니하기도 할테지만 엄마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벌써 많이 바뀌지 않았던가.그러자 교수님은 의외로 이렇게 말씀 하시는 거였다.
“교대에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일단 자기 관리가 되어야지요. 그리고 집안일을 일정 부분 돕게 해서 생활력과 자생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안일을 좀 더 체계적으로 아이들에게 분배해서 가르쳐보자고 생각한 게 말이다. 집안일을 하나하나 가르치는 건 차라리 내가 하고 마는 게 훨씬 속편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시켜보고 가르쳐본 사람은 안다. 가르치는 게 더 힘들다. 느리고도 부족한 걸 지켜보는 건 때론 속이 터진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하면서 느는 거지.' 하고 좀 느긋하게 지켜보고 '실수해도 다시 하면 된다'고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시행착오 없이 자라는 아이는, 어른은 없기에 말이다.
첫째 아이도 며칠 전 중학교 졸업을 하고 시작한 방학이 오늘로 이주일째다. 두 아이가 함께 방학을 하니 아침에 함께 일어나고 아침 식사 준비도 같이 한다. 학기 중에는 스스로 계란 후라이 하나 해 먹을 여유가 없지만 방학 때라도 이런 연습을 일부러 꾸준히 시켜본다. 재활용 분리수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러 간다. 설거지도 한 시간 동안 해보며 4인 가족의 하루치 설거지의 양을 체험해 본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넌다. 그렇게 엄마인 나의 지휘 감독 하에 세 명이서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도 저녁에 남편이 집에 올 때 쯤되면 정리되지 못한 옷가지들이 거실에 수북히 쌓여있다. 하루 세끼 밥 해 먹고 청소하고 중간에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 도서관도 가고 학원도 가다보면 그 정도가 우리의 베스트인 것이다. (물론 이 모든 목록 중 몇가지만 하는 날이 더 많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직접 해보며 살림이란 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도돌이표의 무한반복인건지 의아해 하며 엄마의 노고를 몸소 느껴본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해나가야 하는 집안일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도 자연스레 체득한다.
생활력이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자립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내고 싶다. 본인 스스로의 만족감, 자기 효능감과 더불어 보다 오래 행복하기 위해서. 두 아이가 사회적인 성공만 하고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고 집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요리도 좀 하고 살림도 꽤 해서 삶의 전반적인 만족감을 가지며 살기를 바란다. 결국 공부란 자신들의 내적 동기로 인해 불타올라야 잘 할 수 있는 것이고, 공부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낀다면 어떤 분야에서든 조금 늦은 나이더라도 배워나갈 수 있지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에게 환기를 시키고 이불을 정리하고 가습기 물을 채우는 루틴을 반복하며 방학을 하루 하루 알차게 차곡차곡 쌓아 나가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