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과 분리수거
아들이 방학을 즐겁게 나는 방법
아침부터 마이너스 10도를 찍었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눈발이 꽤 흩날리고 있었다. 북극발 한파가 한반도를 덥쳤다더니 여느 겨울 날씨와는 뭔가 조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근무하던 직장을 들러 서류 처리할 일이 있다. 방학이라 느긋하고 달콤한 늦잠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뒤로 한 채 연습장에 아이들이 오전에 해할 일들을 적은 다음 맨 밑에 “이따 만나요, 사랑해.” 라고 써서 식탁 한켠에 올려둔다. 어쩌면 매일 같이 아침마다 이런 비슷한 일들을 반복할 워킹맘의 마음을 오랜만에 짠하게 느껴보는 순간이다.
아이들이 일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밥을 따끈하게 데워두고 국도 작은 냄비에 적당히 덜어 두었다. 항상 냉장고에는 언제든지 꺼내서 바로 계란 후라이든 스크럼블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유리병에 10개 정도의 계란을 깨 둔다. 아침에 엄마가 없어도 김치찌개에 계란에 김이면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식성과 입맛을 타고난 아이들이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에 있는 직장이지만, 오늘은 눈발도 날리겠다 콜택시를 타고 느긋한 출근시간을 만끽해본다. 적은 두고 있지만 아직 한번도 제대로 근무해 보지 못한 학교다. 방학이라 학교는 한산했지만 방과후 수업을 하는 아이들이 종종 보인다. 역시 아이들은 떼거지(?)로 있는 것보다 드문드문 보이는게 더 이쁘고 반갑다.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보기도 한다. 복도를 지나며 교실 앞문의 한켠에 붙여져 있는 학급 안내판도 슬쩍 바라보았다. 학급당 학생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매년 체감하는 요즈음이다.
행정실에 들러 서류 작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평소처럼 걸어보기로 한다. 2킬로가 채 안되는 거리라서 20분이면 내 걸음 속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9시에 집을 나섰는데 벌써 10시가 되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가 20분 후쯤이면 집에 도착할 거라고 알려준다. 데드라인이 있는 자유시간이 얼마나 짜릿한지 내가 더 잘 알기에.
두 아이는 엄마가 없는 자유시간을 누리고자 깨우지 않았는데도 역시나 일어나 있었다. 집에 가 보니 한참 둘만의 만찬을 즐기고 있다. 불닭소스는 아침에 웬만하면 못먹게 하는 메뉴인데 따끈한 밥에 불닭소스를 넣어 비비고 계란 후라이와 함께 티비를 보며 먹는 아침 식사라니. 이건 뭐 아이들에게 있어 호텔 조식 뷔페 부럽지 않은 메뉴이자 환경이다.
엄마가 오자 어쩔 수 없이 다시 티비를 끄고 아침 식사를 마무리 한 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이부자리를 개서 정리한다. 둘째 아이는 방학 중 자신이 맡은 분리수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갔다. 나가기 전 베란다 창문을 열어 물뿌리개를 뿌려 고드름 만들기를 잊지 않는다. 오늘같이 추운날은 고드름이 빠르게 주렁주렁 잘 열릴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온 아이는 왠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왜? 무슨 일 있어?”
“나 우리집에 데려올 아이들을 찾았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분리수거장에 인형 두 개를 걸어놓고 갔어. 게다가 새 것인지 아주 깨끗해.”
“희준아~ 이제 제발 물건은 그만 주워오자. 우리집에도 인형 많아서 발에 채이는게 인형인데 뭘 또 데려오니.”
“아니야 엄마. 일단 한번 때깔을 보고 결정해. 있어봐봐.”
아들은 쏜살같이 나가더니 두 마리의 새(bird) 인형을 데리고 왔다. 무려 텍도 떼지 않은 새(new) 인형이었다.
“엄마, 예쁘지? 빨면 완전 새거야. 누가 가져가라고 일부러 고리에 걸어놓고 갔더라니깐~”
에휴. 어쩔 수 없이 두 인형을 세탁기에 넣고 바로 울코스로 돌린다. 어릴 적부터 아파트 재활용품 공간에 쓸만한 물건이 있을 때 옮기는 걸 도와주웠던 아들은 어느새 때깔나고 쓸만한 좋은 물건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는 묘한 버릇이 생겼다. 물론 너무 자주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방학동안 심심하지 않도록 자기만의 삶의 재미를 찾아가는 아들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자녀를 키우는 것의 행복감은 유년기를 두 번 보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던가. 나도 저 나이쯤에는 아직도 미미 인형을 가지고 놀았더랬지. 인형 옷을 바꿔 입혀가며 인형 머리를 빗겨 주고 까만 마이크 스펀지 커버를 빵모자라며 씌워줘 가면서 말이다.
60여일의 방학 중 이제 2주가 채 남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학의 하루 하루가 소중하다. 잠들기 전 내일의 세끼 식단을 메모해 두고 내일의 식단을 아이들에게 공지한 후 함께 가족 기도를 하고 잠드는 오늘 하루가, 아이들의 마음에도 내 마음 속에도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