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찾아 읽은 임신 일기

by 소소러브

근래에 딸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내 태몽은 뭐야?”


무려 16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시냇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느새 큰 물고기가 품에 안겨 있더라~”


막상 대답을 하고 보니 그런 중요한 경험과 기억은 일기장에든 어디든 간에 기록을 좀 해두었어야 하는건데...’하며 아쉬움이 남았더랬다.


요즘 두 아이는 다이어트에 한창이다. 둘 다 밥 양을 꽤 줄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자신이 먹을 만큼 먹을 수 있도록 식사 시간이 되면 스스로 밥과 메인반찬은 자기가 접시에 담도록 한다. 오늘은 둘째인 아들이 줄넘기를 좀 해야겠다며 오전부터 현관 입구의 창고를 뒤졌다. 그러더니

“엄마, 여기 앨범이 여러 권 있네~ 꺼내 와서 봐도 돼?

“그럼~”


그 속에는 결혼 스냅 앨범, 결혼 당일 사진 앨범, 처녀 때 갔던 호주 사진이 앨범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들이 찬찬히 한권 한권 보더니 말했다.

"엄마~ 이런게 말로만 듣던 고주파? 초음파? 사진인가?"

어디 보자 하며 아이가 들고 온 앨범을 살펴 보았다. 큰 아이의 초음파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은 무려 임신일기라는 한권의 책 안에 들어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임신해서 일하느라 몇 번 쓰지는 못했지만 초음파 사진 세장과 임신해서 유독 당기던 음식들을 적어 두었다. 거기에 더해 아이의 태몽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23주 하고도 4일이 지난날에는 아이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 초음파 사진과 함께 ‘813그램’이라는 아이의 몸무게까지 적혀 있었다.

“누나, 누나 813그램이었네!”

“아~ 진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누가 다이어트 하는 중 아니랄까봐, 딸아이가 던지는 실없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의 몸무게 밑에는 ‘아빠랑 함께 지낸 한 달 동안 무려 4킬로 가량이 찐 엄마. 너는 고작 500그램이 늘었는데 말이야.’하는 메모가 함께 적혀 있었다. 주말 부부로 따로 떨어져 지내면서 자취집이자 신혼집에 혼자 지내던 나는 임신 후 살이 더 빠졌더랬다.


임신 한 몸으로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집으로 오면 손가락 까딱 할 힘도 없이 겨우 간단히 사온 길거리 컵밥 같은 류의 식사를 챙겨먹고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이러다가는 혼자서 애낳고 키우겠다 싶어 여름 방학 때 신청한 도간 이동이 다행히도 한 번에 일대일 교환으로 잘 진행되어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 일이 임산부에게 얼마나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정감이 들게 했던지 새로 살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느라 시댁에서 홀 시아버님과 한 달간 함께 지냈는데도 어렵고 불편하다는 느낌 없이 오히려 잘 먹어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요즘 너무 좋아하는 음식들’이라는 타이틀 아래에는 복숭아, 자두, 얼큰한 김치찌개, 삼겹살 등이 적혀 있었다. 지금도 딸아이의 최애 과일들이자 메뉴였다. 뱃속에서 좋아하던 음식들은 태어나서도 좋아한다더니 무엇보다 정확한 증거자료가 우리 집 안에 있는 줄 몰랐다.


태몽의 내용은 내 기억보다 디테일 했다. 그리고 뱃속의 아가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아직 성별을 알 수도 없던 임신 초기였던 것 같다. ‘엄마가 냇가에 가게 되었는데 아주 맑은 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고기도 잡고 웃으며 즐겁게 놀고 있었어. 그런데 큰 물고기가 엄마 품에 와서 안겨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우리 사랑이 태몽이란다. 사람들 말로는 큰 인물이 될 남자아이 꿈이 그렇대. 근데 신기한 건 사랑이 할아버지도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꿈을 꾸셨다는 거 있지? 엄마는 우리 사랑이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단다. 우리 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해’


태몽에서 물고기 꿈이 남자아이를 암시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곱슬머리가 매력적인 사랑스러운 딸을 나는 한 명 얻게 되었다. 그 딸아이는 이제 그 곱슬머리가 싫어서 외출 때마다 고대기로 머리를 펴며 아침마다


“아놔~ 나는 왜 곱슬 머리인거야?”를 외치고 있다. 아직은 사랑스러운 이 아이와 고등학교 시절 3년만 함께 지내면 품을 훨훨 떠나 날려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문득 문득 벌써부터 아쉽곤 한다.

박완서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성이란 임신하고 있는 동안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감 그리고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은 여성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며 귀한 체험이지요.”

선생님은 문학 작품 활동에서만 다작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식 농사도 풍작을 하셨더랬다. 무려 4녀 1남을 낳아 기르셨다.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무한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감정은 내가 아이를 직접 낳아 키우면서 더 실감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창고 안에서 잠자고 있던 임신 일기를 아이들 덕분에 꺼내 읽으며 그 시절 풋풋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