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는 맛.
개학을 이 주일 정도 앞두고 한창 새 학년 학급 배정 발표가 한창인가 보다. 어제 딸아이는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 대부분 간 여고에서 반 배정 결과가 나왔다며 친한 친구들이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엄청 심란해 했다며 말한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마음 정리 했어. 반 배정, 담임선생님, 자리 순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어.”
고등학생이 되어도 반 배정 결과가 이렇게 중요할 줄이야. 반 배정 따위(?)야 초등학생 때나 유효한 건 줄만 알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 역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 학년 초에 반배정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 떠올랐다. 역시 삶의 어느 단계에서나 인간관계란 행복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요인인지도 모르겠다.
온통 다른 반으로 흩어진 친구들을 위로하는 전화를 길게 하더니 딸아이가 갑자기 방을 뛰쳐 나왔다.
“엄마! 우리 학교도 반 배정 떴대!”
“아 그래? 그럼 얼른 확인해 봐~”
“그런데 엄마, 나랑 동명이인이 있어. 소정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자기랑 나랑 같은 7반이래서 좋아했는데 막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나랑 성까지 똑같은 이름이 두 개가 있는 거야. 한 명은 4반, 또 한명은 7반!”
“그럼 얼른 학교에 전화를 걸어봐~”
이미 시계는 4시 2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학이라 당직을 서신 선생님께서 퇴근 준비를 마무리 지을만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서둘러 전화번호를 찾아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만 걸면 바로 누군가 받을 줄 알았더니 수화기 사이로 기계음이 들린다.
‘1번 교무실, 2번 행정실, 3번 급식실....’
도대체 어디까지 읊을 때까지 기다릴 쏘냐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다급한 와중에도 느긋한 성격의 딸아이는 어느 파트에다가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전화를 끊고는 다시 전화를 걸어 내 옆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물어본다.
“엄마, 어디다 물어봐야해?!”
“어디긴 어디야 교무실이지~”
“아~난 또 행정실인가 하고.”
분초를 다투며 교무실로 다시 연결이 되었다. 길고 지루한 연결음이 들린다. 내 속만 타들어 가는건가. 오늘이 지나면 학교 문이 열리는 내일 아침까지 다시 하루를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 딸아이는 얼마나 그 결과를 노심초사 궁금해 하며 기다릴까. 속으로 제발 전화 좀 받아 주십사 하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졸여졌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는지 수화기 건너로 들리던 벨소리가 끊겼다. 딸아이는 몇 마디 더 주고받더니 전화를 끊고는 또다시 내가 있는 거실로 달려 나왔다.
“엄마! 나 7반이래! 아싸~~ 소정이랑 혜윤이랑 같은 반이야!”
소정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데다 6학년 때던가 같은 반을 하며 친해진 아이였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친하게 지냈고 딸아이의 밴드부 공연을 보며 감동해서 딸아이를 안으며 눈물까지 흘렸다던 친구였다.
다행이다. 처음 가는 낯선 학교에서 같은 반에 친한 아이가 두 명이나 있다면, 이제 수능도 야자도 대입 준비도 해 내야 하는 시기에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버팀목이 되어줄 거다 싶어 안심이 되었다.
반배정이 잘 되었으니 올해도 무난하게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선생님 역시 잘 만나게 해 주십사 자기 전에 매일 기도를 드리고 자야겠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반 배정이 잘 된 기념으로 딸아이가 좋아하는 토마토 스파게티를 해주어야 겠다. 아이가 클수록 내가 별로 해줄 게 없다는 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어쩌면 이제 하숙집 주인처럼 아이를 적당한 거리로, 적당한 존중으로 대해주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