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폭파와 당근

당신 근처에 좋은 이웃이 있음을.

by 소소러브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얼마전 미니멀리즘에 관한 글을 읽다가 '둥지폭파'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둥지폭파란 물건을 담을 수납장 자체를 없앤다는 의미이다. 수납장이 있으면 쓸데 없이 자꾸 무언가를 넣게 되고 또 다른 수납장을 사서 놓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집에도 그런 쓸모없는 둥지 들이 있지. 그 중 하나의 둥지를 오늘 아이들과 함께 폭파해 보기로 한다.


왜 때문에 집에 입을 옷은 없는데도 옷장은 미어 터지는지 모르겠다. 책장도 마찬가지다. 읽을 책은 없는데 책장은 미어 터진다. 그리고 책장으로 쓰던 수납장이 어느새 잡동사니들의 안식처로 현관 입구에서 터줏대감 마냥 버티고 서 있게 되었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눈에 가시가 따로없다. 그 속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 보니 이제 아이들에게 작아져서 쓸 수 없는 중형 KF94 마스크가 3박스나 나온다. 큰딸아이에게 "이걸 어떻게 하지?" 하고 물으니 버리기는 아깝고 주변에 딱히 줄 사람이 없으니 자기가 당근에 나눔으로 올려보겠다 한다. 좋다. 오늘은 '당근'이다.


얼마전 당근에서 좋아하는 보이그룹 NCT의 앨범과 사진들을 나눔한다는 글에 1등으로 줄서 놓고도 일정상 빨리 받으러 가지 못해 놓친 일을 두고 두고 후회하던 딸이었다. 딸아이는 이번에는 입장이 바뀌어 받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이 되어 사람들이 줄을 서니 도대체 이걸 누구한테 줘볼까나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딸아이가 당근을 하러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 마치 부자가 된 것 같아. 근데 연락 온 사람 중에 누구한테 주지?"


"뭘 고민해? 제일 먼저 줄서고, 제일 먼저 받으러 온다는 사람에게 주면 되지."


"그래. 그래도 일빠한테 주는게 제일 공평하겠지?"


딸아이가 당근에 마스크 사진을 올린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여러개의 입질 알림이 바바박 왔다. 딸아이는 만족한 듯 웃음을 흘리며 집 근처 도서관 앞으로 장소를 정하고 다 차려놓은 아침도 먹지 않은 채 얼마 전 산 신상 버킷햇을 눌러 쓰고 룰루랄라 집을 나선다.


오늘 뭔가 특별한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재밌는 일이 생겨 신난 눈치다.아침에 눈만 뜨면 밥을 먹는 녀석이 밥도 거르고 당근을 하러 스스로 집을 나서다니. 도서관 앞에서 애기 엄마에게 마스크를 잘 건네주고 온 딸아이는 뒤늦은 아점을 먹으며 다음번에는 이제는 입을 일이 없어진 중학교 교복을 당근에 올려서 나눔을 해봐야겠다며 새로운 이벤트를 구상중이시다.


이전 01화60일간의 방학일주 대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