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남겨진 자가 더 슬픈 법.

장거리 연애의 시작

by 글너머

나와 발렌틴은 브라이튼 여행이 끝난 후, 런던의 근교 쪽에 사는 발렌틴 친구와 그의 여자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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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들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주는 술은 당연히 내내 함께했으며,

우린 보드게임도 하고 크리스마스 날에는 굉장히 드넓은 공원에도 가서 산책도 하는 등 행복하게 지내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푹- 자고 저녁 즈음 일어나니 다시금 나한텐 곧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지고 난 다시 우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귀국 날짜는 조금 더 앞 당겨 졌는데 우리 아빠가 2019년도부터 외국에서 일을 하게

되셔서 아빠가 떠나기 전 난 아빠를 뵈야했고 그러기 위해선 원래 내가 계획 했던 날짜보다 많이

앞당겨 한국을 돌아가야 했다.


갑자기 나에게 들이닥치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그리고 익숙하고 싶지 않은 헤어짐들이 야속했다.

왜 난 떠나보내고, 또 떠나야 하는지.

헤어짐은 살면서 마주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번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빠랑도 이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빠가 외국으로 2년 정도 살아야 한단 걸 듣고서도

많이 울었다. 펑펑 우는 나를 발렌틴은 옆에서 조용히 달래줬고 난 그 자리에서 비행기 표를 변경했다.


그러나 아빠와의 헤어짐은 내가 한국에서 감당해야 할 것이었고 당장 내 눈 앞에 던져진 건

그와 어떻게 헤어지느냐 였다.

난 이미 내가 일하고 있던 한식당을 그만 둔 상태였고 우린 그나마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내가 떠나야 할 날짜는 1월 2일이었으며 나의 귀국 날짜는 눈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발렌틴이 끝나기 전에 항상 파이브가이즈 앞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아까워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항상 애틋했고 난 내가 이제 얘를 당분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 워킹홀리데이 시작과 끝을 한 너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니.

아무리 긍정회로를 돌리고 돌려도 상실감의 부피는 내 노력을 항상 압도했다.


12월 31일, 난 한번 더 내가 일했던 식당의 매니저 분들과 동료들한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발렌틴 손을 꼭 잡고 primrose hill로 향했다. 프림로즈 힐은 런던에 있는 큰 공원 같은 곳인데 나름 높은

언덕이 있어서 그 곳에 올라가면 새해에 런던이 선물해주는 불꽃놀이를 그나마 잘 볼 수 있다.

올라가는 내내 행복함과 슬픔이 공존했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하고 정말 내가 느끼는 그때의

그 감정의 레이어는 너무 촘촘했다. 텍스트화 하기 어려운, 그 복잡한 감정을 오롯이 나 혼자

이겨내야 하는게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때의 나에게 너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나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나.


불꽃놀이가 아름답게 런던의 하늘 밤을 수 놓고 우린 Happy new year!를 크게 외쳤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줬고 소원을 빌었으며, 인파가 더 몰리기 전 우린 재빨리 우리 집으로 가는

tube를 탔다. 사람 몰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덕분(?)에 사람이 거의 없는 튜브를 타고

갈 수 있었는데 그것 또한 우리의 추억이었다.


그 순간은 하나의 필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덜컹거리는 튜브의 한 칸 안에 우리를 제외한 딱 두 커플이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와 발렌틴은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걔 얼굴을 계속 봐 놔야 할거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발렌틴 얼굴만 계속 쳐다봤다.

보통이면 왜 쳐다보냐고 물어볼 법도 한데 발렌틴은 그 날만큼은 묻지 않았다.

아마 걔도 느끼고 있었던 거겠지.

우린 그 복잡다단한 감정을 안고 12월 31일과 1월 1일을 함께 보냈다.

1월 1일은 안타깝게도 파이브가이즈가 쉬지 않아서 발렌틴은 일을 해야 했고 난 발렌틴이 일을 가 있는 동안

그가 제일 좋아하던 내가 만든 떡볶이를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우린 정말로, 내일이 우리가 헤어지는 날이 아닌 것처럼, 정말 평소처럼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발렌틴은 1월 1일에 아침 shift 였기 때문에 굉장히 빨리 일어나야 했는데 나와의 시간을 위해서

12월 31일 새벽까지 깨어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른 저녁을 먹고 나와 발렌틴은 살짝 잠이 들었다.


사실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나는 안자려고 했는데, 일어나보니 저녁 8시.

난 깨어나자마자 울었다. 발렌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우는지 다 알고 있는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날 안아줬다.

말하지 않아도 왜 우는 지 발렌틴이 아는게 날 더 슬프게 했다.

발렌틴 얘 외로운 앤데, 티 안내는 거지 나 없으면 혼자 많이 외로울텐데. 미안하고 안쓰럽고 걱정되고

그럼에도 날 위로해주는 발렌틴한테 또 미안했다.


난 1월 2일 아침 비행기였고 우린 새벽 일찍 부터 출발해야 했다.

공항으로 가는 튜브에서도 난 계속 울었다. 조용히 혼자 눈물 닦아내고 있으면 또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던 걔.

아침 7시쯤에 도착해서 우린 마지막 브런치를 먹었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정말 죽기살기로 꾹 참고

맛있게 브런치를 먹었다. 밥 먹을 때까지 신파를 찍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브런치 이후 난 바로 들어가봐야 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제 여기로 들어가서 한국 가면 적어도 얘를 몇개월 이상 못본다고?

진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내 옆에 있던 앤데.

런던과의 헤어짐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단지 발렌틴과 함께 할 수 없단 사실이 날 너무 괴롭혔다.

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서 정말 수도꼭지 마냥 엉엉 하고 울었다.

눈물이 내 눈에 너무 어려서 계속 흐릿해지는 눈을 닦고 또 닦고 그를 내 눈에 담기 위해 뒤를 하염없이 돌아봤다. 발렌틴은 아무렇지 않은 척 나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또 만날 건데 뭐.' 라는 말로 날 위로 했던 그는 눈으로도 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게이트에 들어가기 직전,

내가 이제 그의 시야에 보이지 않기 딱 직전에 돌아봤던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이제 자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발렌틴은 그제서야 울었다.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던,

지 혼자 남자다운 척 하려고 하던, 걔는 내가 들어가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걘 얼마나 참았을까? 몇 일 동안 참은 걸까? 얼마나 혼자 삼키고 또 삼켰을까?

난 그때의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의 눈물을 본 그 순간 부터 비행기를 탈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난 떠나면 가족도 보고, 친구도 보고 슬플 겨를이 잠시겠지만 걔는 아니잖아.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갔을 때 이제는 내가 사라진 그 방을 보는 일.

남겨진 자의 쓸쓸함은 떠나는 자가 어찌할 도리가 없기에 더 애달프다.


헤어짐에서 비롯된 공허의 부유가 그의 온 몸을 얼마나 휘감았을까.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 우리 장거리 연애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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