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따스한 물 한 잔을 들고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향한다. 베란다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모두 잘 잤니?" 하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오래된 아침 일상이다. 나와 인사를 나눈 상대들은 우리 집 베란다 식구들이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 보는 데서는 절대 식물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이라는 염려의 당부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마당에 핀 수국, 붓꽃,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뒤꼍에 선 감나무, 동백나무들과도 인사하며 지냈기에 베란다의 꽃과 나무들에게도 자연스레 말이 건네진다. 각 화분마다 물이 필요한지, 마른 잎이 생겼는지, 꽃대를 올렸는지 등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이쁜 꽃을 피워 고맙다”, “새싹을 올리느라 수고했어”, “목마르게 해서 미안해” 등등의 말이 나온다. 마음의 소리가 말이 되어 전해진다. 우리는 매일 아침인사를 나누며 사는 식구다. 마음을 나눈 모든 것들은 삶을 공유하는 소중한 존재다.
베란다를 채운 나무 중엔 20년 넘게 키운 '벤자민 나무'도 있다. 처음 어린 나무를 작은 화분에 심어 키웠는데, 기특하게도 쑥쑥 잘 자랐다. 자라는 정도에 따라 분갈이도 서너 번 했다. 그동안 우리도 이사를 두 번 했다. 그 사이 벤자민은 둥치도 굵어지고 가지도 넓어져 어른 나무가 되었다. 베란다 공간이 한정되다 보니 가지치기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맘껏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신기하고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 10년 정도 키웠을 때, 줄기와 잎 사이에 좁쌀만 한 것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첨엔 잎이 움 터는 줄 알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니 좁쌀은 작은 체리크기가 되었다. 잎이 아니라 연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은 열매였던 것이다. 난생 첨 보는 열매에 가족들 모두 신기해했다. 그렇게 해마다 초록으로 시작해서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여준다. 벤자민 나무의 열매를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나무라는 말을 남긴다. 또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선 벤자민 나무를 보고 까치들이 날아왔었다. 까치들은 유리가 막고 있는 줄 모르고 가지에 앉으려 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까치들은 심심하면 날아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듯 유리를 톡톡 두드려 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난간을 왔다 갔다 하다 날아가곤 했다. 그렇게 벤자민 나무는 특별하고도 신기한 나무가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베란다 정원은 아파트 생활의 삭막함을 덜어준다. 계절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을 키워 정원은 다채로운 색으로 피워나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유리를 통하지 않은 밝고 따사로운 햇살, 방충망의 작은 틈새로 드나드는 작은 바람이 아닌 허공을 떠도는 온전한 바람, 꽃을 찾아드는 나비와 벌, 곤충들의 윙윙 대는 날갯짓 소리. 쏟아지는 소나기가 지나는 자연의 정원이 그립다. 타샤 튜더 할머니의 정원만큼 멋지고 넓은 정원은 아니더라도, 아담한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아침 이슬을 받은 이파리들의 청초함과 햇살을 듬뿍 받아 색도 향기도 짙은 꽃들의 정원. 꽃을 쫓아 나비도 벌도 바람도 넘나드는 아름다운 마당을 만들고 싶다. 지금 베란다 정원에서 자라는 식구들도 마당에 옮겨 종일 일광욕을 즐기게 하고, 호스로 뿌려지는 물이 아닌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단장을 하여, 벌과 나비들을 유혹하게 해 주고 싶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매일이 꿈으로 가는 길이라 행복하다. 꿈으로 가는 여정, 베란다 정원을 돌보는 손끝엔 사랑이 묻어있다.
아침에 일어나 따스한 물 한 잔을 들고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향한다. 베란다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모두 잘 잤니?" 하고 인사를 건네는 일은, 오래된 아침 일상이다. 나와 인사를 나눈 상대들은 우리 집 베란다 식구들이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 보는 데서는 절대 식물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이라는 염려의 당부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마당에 핀 수국, 붓꽃,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 뒤꼍에 선 감나무, 동백나무들과도 인사하며 지냈기에 베란다의 꽃과 나무들에게도 자연스레 말이 건네진다. 각 화분마다 물이 필요한지, 마른 잎이 생겼는지, 꽃대를 올렸는지 등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이쁜 꽃을 피워 고맙다”, “새싹을 올리느라 수고했어”, “목마르게 해서 미안해” 등등의 말이 나온다. 마음의 소리가 말이 되어 전해진다. 우리는 매일 아침인사를 나누며 사는 식구다. 마음을 나눈 모든 것들은 삶을 공유하는 소중한 존재다.
베란다를 채운 나무 중엔 20년 넘게 키운 '벤자민 나무'도 있다. 처음 어린 나무를 작은 화분에 심어 키웠는데, 기특하게도 쑥쑥 잘 자랐다. 자라는 정도에 따라 분갈이도 서너 번 했다. 그동안 우리도 이사를 두 번 했다. 그 사이 벤자민은 둥치도 굵어지고 가지도 넓어져 어른 나무가 되었다. 베란다 공간이 한정되다 보니 가지치기를 일 년에 두 번 정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맘껏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신기하고도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 10년 정도 키웠을 때, 줄기와 잎 사이에 좁쌀만 한 것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첨엔 잎이 움 터는 줄 알았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니 좁쌀은 작은 체리크기가 되었다. 잎이 아니라 연초록의 싱그러움을 담은 열매였던 것이다. 난생 첨 보는 열매에 가족들 모두 신기해했다. 그렇게 해마다 초록으로 시작해서 노랗게 익어가는 열매를 보여준다. 벤자민 나무의 열매를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나무라는 말을 남긴다. 또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선 벤자민 나무를 보고 까치들이 날아왔었다. 까치들은 유리가 막고 있는 줄 모르고 가지에 앉으려 한 것 같았다. 그 후로도 까치들은 심심하면 날아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듯 유리를 톡톡 두드려 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난간을 왔다 갔다 하다 날아가곤 했다. 그렇게 벤자민 나무는 특별하고도 신기한 나무가 되었다.
시골에서 자란 내게, 베란다 정원은 아파트 생활의 삭막함을 덜어준다. 계절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을 키워 정원은 다채로운 색으로 피워나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유리를 통하지 않은 밝고 따사로운 햇살, 방충망의 작은 틈새로 드나드는 작은 바람이 아닌 허공을 떠도는 온전한 바람, 꽃을 찾아드는 나비와 벌, 곤충들의 윙윙 대는 날갯짓 소리. 쏟아지는 소나기가 지나는 자연의 정원이 그립다. 타샤 튜더 할머니의 정원만큼 멋지고 넓은 정원은 아니더라도, 아담한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꾼다. 아침 이슬을 받은 이파리들의 청초함과 햇살을 듬뿍 받아 색도 향기도 짙은 꽃들의 정원. 꽃을 쫓아 나비도 벌도 바람도 넘나드는 아름다운 마당을 만들고 싶다. 지금 베란다 정원에서 자라는 식구들도 마당에 옮겨 종일 일광욕을 즐기게 하고, 호스로 뿌려지는 물이 아닌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단장을 하여, 벌과 나비들을 유혹하게 해 주고 싶다. 꿈을 꾸는 사람은 매일이 꿈으로 가는 길이라 행복하다. 꿈으로 가는 여정, 베란다 정원을 돌보는 손끝엔 사랑이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