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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l 24. 2024

연재 소설 13화 - 폭로

미스테리 연재 소설 -  드러난 진실

자동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손동호였다. 이제 모든 게 끝이구나! 사이버 침투대회마다 침착하고 전략적이란 평가를 들었던 해커 차은호는 어디로 간 건지. 디도스 공격에 먹통이 된 컴퓨터마냥 머릿속이 블랙아웃 되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가 정수기 앞으로 가더니 종이컵에 물을 따른다.    

 

”어쩌지.. 손동호 입장. 지금 정수기 앞. 그냥 나가도 될까?“

-카피 끝. 걱정 마.-     


지훈이는 나보다 침착했다, 목소리가 노출되지 않게 문자로 답을 하더니 USB를 초록색 꽃병에 넣는다. 이제 손동호는 종이컵을 들고 원장실 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훈이는 심호흡을 하고는 원장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나가려 한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듯싶었다. 현시점에서 자연스레 배달 온 것으로 둘러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 같기는 하다. 방문 하나를 두고 마주 서 있는 두 사람. 그리고 이 순간 화면을 통해 두 사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나.


 디도스 공격에서 급하게 벗어나야 할 때는 일단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해야 한다. 지금 이런 메뉴얼 따윈 통하지 않지만, 지훈이와 손동호를 비추고 있는 두 개의 CCTV 화면이 4차원의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서로를 향해 영원히 열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영원처럼 길고, 숨 막힐 듯 짧은 순간. 손동호가 와이셔츠 앞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다시 바지 주머니를 뒤적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병원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허술한 심플 플랜은 ‘어쩌다 퍼펙트 플랜’이 되어버렸다! 다락방으로 각자 향하는 길, 휴대폰의 지훈이 목소리는 엄청난 미션을 수행한 비밀요원처럼 들떠 있었다.     


“대박, 손동호 들어왔다는 소리 듣고 순간 창문으로 뛰어내릴 뻔!“

”위치 확인해보니 그 인간 식당에 뭘 두고 온 모양이더라구. 진짜 오늘 영화 찍었다!    


 

다락방에서 지훈이가 복사해온 파일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그 속에는 우리가 원했던 수학 N제 파일은 물론, 상상하지 못했던 MP3 파일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건...선정이의 음성이었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단단한 목소리.     



“블로그 글 삭제와 공개 사과 원합니다. 그 약은 1학년 때 잠깐 먹어보고 두통 때문에 중단한 거 당신도 알잖아요.”

“아빠한테는 계속 먹는다고 속이고 모아뒀다며? 고맙게도 니가 통째로 가져 왔잖니.”

“어떤 성분인지 필요하다면서? 당신이 이런 밑 작업하는 싸이코인지 몰랐으니까. 장기 복용한 적 없는 약에 내가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비열하게 마약 음료 사건이랑 엮어서 인터넷 여론 조작질할걸 어떻게 알겠어?”

“얘야, 니 아빠가 의사라는 직위를 이용해서 마음대로 그 약을 너에게 준 게 바로 불법이란다. 식약처에서 알게 되면 행정처분 대상이야. 의료용 마약류를 마음대로 딸에게 준다? 지역 사회에 알려지면 행정처분이 아니더라도 니네 아버지 병원은 그대로 끝일걸? 집중력 높이는 약을 몰래 유통하면 수입이 꽤 짭짤한데 니네 아빠 어땠을 거 같아? 내가 좀 알아본 게 있거든. ㅎㅎ”

“상담 온 환자 이야길 허락 없이 유포하는 미친 정신과 의사는, 멀쩡할 거 같아?”

“기억에도 없는 해괴한 사진들이 니 스마트폰에 가득하다면서? 약 복용과 상관없이 넌 정상이 아냐. 니 이름을 적시한 적이 없는데도 블로그 글을 지우라고 집착하는 피해망상 환자지. 선정이 니 얘기가 아니라니까. 혹시 니 얘기가 한 방울 첨가되었다 해도, 환자의 다양한 상담사례를 섞어 글을 쓰기 때문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음성 파일은 여기서 끊겨 있었다. 구렁이 같은 손동호의 화법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맞서는 선정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도서관에서 나와 마지막 만난 날도 선정이는 평소처럼 신중하고 침착했다. 그런 아이의 죽음에 약물중독, 다중인격, 해리성 정체성 장애 같은 해괴한 프레임을 뒤집어씌우려 했던 손동호는 싸이코 그 자체다. 하지만 더 절망감을 느끼게 한 것은 선정이 가족의 대응이었다. 의사 집안의 자부심, 가정의학과를 운영하면서 그동안 지역 사회에 쌓아온 신뢰를 ‘의료용 마약류 불법 처방 리스크’와 맞바꾸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선정이 죽음과 관련해 더는 관심을 두지 말라던 선민 선배의 일관된 답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갈닥터가 시나리오도 잘 쓰네. 너한테 빙의 어쩌구 개소리했다며? 근데 선정이 부모도 답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본인 잘못 덮으려고 자식을 방치하다니. 어쩌면 나보다 선정이가 더 외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 태생이 독고다이인건 어쩔 수 없지만, 분명 가족이 있는데 철저하게 고립된 느낌..끔찍하다.”

“자기 딸이 마녀사냥당하는 걸 알면서도 그냥 시간이 지나 인터넷 게시판이 잠잠해지길 바란 거 같아.”

“우리가 선정이를 위해 공갈닥터 확실하게 손봐주자! 다른 파일 열어봐.”      


손동호가 골든티켓에게 보낸 수학 N제 파일은 작년 5월부터 날짜순으로 6개가 저장되어 있었다. 최근 파일을 열어 확인해보니 답안지 제출 5분 전까지도 나를 힘들게 했던 중간고사 미적분 파트 고난도 문제 20번 문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수학 기출문제를 다운로드해 대조한 결과, 22학년도 2-1학기 기말고사부터 숫자만 살짝 바꿔치기했을 뿐 유형을 그대로 베껴 출제한 고난도 문제 총 6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 0.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잔인한 고등학교 내신에서 출제를 둘러싼 뒷거래라니.


“부정출제, 자료 첨부해 경찰에 신고할까?”

“에휴, 은호 넌 가끔 너무 해맑아. 공갈닥터놈 해킹한 건 어쩔건데? 선정이 녹음 파일이 제일 파급력 있을 거 같지 않아?”

“선정이는 자길 지워달라고 부탁했어. 녹음 파일이 알려지면 선정이 목소리가 사이버 세상에서 끝없이 복제 될 거야. 그리고 선정이 아버지 병원에도 타격이 생길 테니 그건 안될 거 같구. 일단 우리가 가진 패를 보여주고 손동호가 자진해서 책 출간 정리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

“아냐. 우리 패를 까는 건 니가 위험할 수도 있어. 어디서 유출되었는지 혼선을 줘야 해. 그리고 선정이 건과 별개로 시험문제 부정출제는 처벌받아야 해. 골든티켓도 색출해야지. 학교가 내신 전쟁터 병맛이지만 그래도 기를 쓰고 버티는 애들이 있는데 그 승부가 공정하지 않고 조작된 거라면? 대가를 치러야지. 뿌린 대로 거두리라! 그냥 똑같이 당하게 하면 됨!”   

  

지훈이 말이 맞다. 시험문제 부정출제도 밝히고, 선정이가 손동호에게 원했던 게시글 삭제와 사과 둘 다 받아낼 것이다. 결판을 내기 위해 손동호에게 텔레그램 비밀채팅을 보냈다.     

  


노 네 임- 당신과 골든티켓 거래 폭로 예정임.

공감닥터- 신상부터 밝히고 채팅을 하던가. 지금 뭐하자는거야?

노 네 임- 당신 딸 손지우가 풀던 수학 N제가 서일고 시험에 출제된 이유를 모두 궁금해 할텐데.

공감닥터- 흔해 빠진 일타강사 N제, 개나 소나 구할 수 있는 걸 뭘 폭로해?

노 네 임-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지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뭐가 터질지 기대해 봐..

공감닥터-  닥치고 꺼져. 우리 지우 건드리면 누구든 가만 안 둘 거야.

노 네 임- 당신은 눈에 뵈는게 손지우 밖에 없는 게 문제야. 딱 두 가지만 전달할게.

          1. 출간 예정인 책 출판 중지한다..

          2. 그동안 동의 없이 환자들 상담 내용을 공개한 것 블로그에 사과한다.

공감닥터- 너 천하장사지? 아님 차은호? 왜 소설 쓰지? 골든티켓인지 뭔지 난 몰라. 탈탈 털어도 뒷거래 같은 거 하나 안 나올걸.

노 네 임- 내가 누구인지는 경찰 조사 받으며 차차 알아보시길. 두 가지 지키지 않으면 내일모레 추가폭로가 있을 거야. 악성 댓글, 사이버 모욕죄에 관한 바나나 우유의 실체.

공감닥터- 바나나 우유? 그게 뭔데? 지금 장난해?

노 네 임- 공모한 거 아니었어? 바나나 우유에 대해선 손지우한테 물어봐. 자업자득! 이번 기회에 찐한 팩폭 교훈을 얻길 바래. THE END!     



텔레그램 비밀채팅을 종료하고 메시지를 삭제했다. 이제 신속하고 파급력 있는 폭탄을 투여할 차례다. 서일고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서일고 시험문제 부정출제!>란 제목으로 이번 중간고사 20번 문제와 대치동 일타강사의 현장 N제 비교 샷, 그리고 골든티켓과 공감닥터의 텔레그램 비밀채팅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게 유령 아이디로 게시글을 작성했다. VPN(가상 사설망)을 사용한 데다 IP를 해외로 설정해 웬만해선 추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침 교내대회가 쏟아지는 5월, 공지사항 열람을 위해 학생들의 학교 홈페이지 접속이 평소보다 많은 때이다. 딱 1시간이면 학생 단체카톡방과 SNS, 지역 커뮤니티가 뒤집힐 거라 예상했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IT 강국답게 서일고 학생들은 빛의 속도로 게시글을 복사해 퍼 날랐다. 나는 20분도 안 되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렸던 원본 게시글을 조용히 삭제했다.      



-소름. 이번 중간고사 문제랑 존똑이네.

-뭐야? 손지우가 왜 여기서 나와?

-손지우 밀어주기네. 부정출제, 내신조작 실화냐!!

-대박 사건, 시험 문제가 유출된 게 아니라 대치동 일타강사 문제를 베끼다니 미친 거 아님??

-근데 골든티켓 누구냐??     


이제 자발적 네티즌 수사대의 눈부신 활약을 기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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