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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Jul 31. 2024

연재 소설 14화 - 뜻밖의 지원사격

미스테리 연재 소설 - 고등학교 시험  시중 문제집 베끼기

시험문제 출제 부정에 대응하는 모습은 크게 두부류였다. 성적에 매우 민감한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은 이번 사건이 미치는 영향을 조목조목 파고들었다. 그 논리 전개를 따라가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명문대 입학을 좌절시키고,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얻어 인생 낙오자가 되게 하는 원인이 바로 중간고사 20번 부정출제 때문인것으로 귀결되었다. 말도 안 되는 과장 같지만, 인터넷 여론은 도미노 같은 것이다. 손가락 하나를 튕겨 쓰러트린 작은 도미노는 물리학적으로 자신보다 1.5배 큰 도미노를 쓰러트릴 수 있는 힘을 갖는다. 5cm 도미노로 시작해 1.5배씩 커지는 도미노를 차례차례 세워 실험하면 23번째에는 놀랍게도 에펠탑보다 큰 도미노도 쓰러트릴 수 있다. 키보드 위의 가벼운 손놀림, 단 몇 줄 문장이 도미노가 되어 사이버 세상을 휩쓸면 현실 세상의 골리앗도 쓰러트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갖게 된다. 그러니 중간고사 20번 문제 하나가 그들 인생에 도미노이펙트가 될 것이라 주장해도 무지성 논리는 아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서일고 학생들은 ‘골든티켓’이 대체 누굴까에 대해 더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이번 중간고사 수학 문제 출제 담당 선생님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4명으로 리스트를 압축했다. 수학 교과와 담임을 동시에 맡고 있는 우리 반 조끼쌤과 참을 수 없는 졸음 폭격으로 유명한 확통 담당 3학년 6반 무한졸도쌤. 그리고 3학년 일부 반에서 미적분을 가르는 여신 엄수연쌤, 기간제 수학교사로 작년부터 근무 중인 강의력 갑 이정석쌤. 학생들은 단톡방에 이 4명 중 누가 골든티켓인지 대해 댓글에 댓글 꼬리를 물며 추리를 하거나 투표 창을 띄우기도 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귀신 잡는 네티즌 수사대가 금방 골든티켓을 색출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화양구맘 카페에서는 학부모로 예상되는 닉네임들이 대거 등장해 성토대회가 열렸다. 손동호 원장과 손지우의 관계에 경악한 학부모들은 3개년 출제 문제에 대한 전수조사, 교육청 신고, 학교 측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으로 난상토론을 벌였다. 점차 격앙된 감정은 한 회원의 글이 결정타가 되어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하며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텔레그램 대화 내용 정말 소름 끼치지 않나요? 커튼콜 때 주인공이 드러나는 법이라니!! 2월에 하늘나라 간 학생 잘 죽었다는 얘기랑 뭐가 다르죠? 아무리 학교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똑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끔찍합니다. 그리고 손동호 원장 예전 블로그 게시글. <이카루스의 꺾여진 날개, 전교 1등 S양, 빨간 약의 비밀> 이거 대놓고 죽은 학생 저격한 거 맞죠? 링크 겁니다.     


‘자식 키우는 부모’라는 한마디에 대동단결, 리미트 값없이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 회원들의 물고, 뜯고, 씹는 댓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 빨간약 괴담으로 S양을 마녀사냥 하듯 여론몰이한 사람들과 이들은 전혀 다른 존재일까?     


-또라이 닥터. 빨간약 저격 글은 자기 딸 전교 1등 만들기 위한 자작극?

-싸이코 정신과 의사의 자살 교사& 방조 스릴러! 내일모레 전격 출간!!

-출간 앞두고 노이즈 마케팅 빅픽쳐? 출판사도 제발 저자 검증 좀 하고 책 장사하자.

-SNS 책팔이였군요. 공갈닥터님.     


사실 SNS 책팔이 공갈닥터는 지훈이가 쓴 댓글인데 이후 화양구맘 카페에서 손동호의 명칭은 공갈닥터로 깔끔하게 통일되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손동호의 블로그로 몰려가 원색적인 비난, 해명을 요구했다. 밤 10시쯤 손동호는 슬그머니 블로그와 인스타를 비공개 계정으로 전환했다. 재미있는 것은 닉네임 바나나우유도 그동안 인터넷에 자신이 쓴 글들을 자삭하고 활동 중이던 모든 카페에서 탈퇴했다는 것이다. 그런 행동이 더 수상하게 보인다는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화력 장난 아니라 약간 불쌍하다. 독한 말들, 심장에 정통으로 꽂히는 표창이거든.”

“하늘은 스스로 나대는 자에게 빡칠 뿐! 동정심은 접어 둬. 이제 서일고가 궁금하다! 내신 비리 토네이도가 어디로 튈지 팝콘각이네.”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 엄마와 나는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했던, 하얀 모래알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비취색 해변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선홍색 자몽 주스를 앞에 두고 환하게 웃는 엄마. 나를 보며 웃는 줄 알았는데, 먼 곳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백사장 끝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보인다. 엄마는 이리로 와서 앉으라고 손짓을 하지만,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원피스 자락만 펄럭일 뿐 미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 선정이였다. 희미하게 미소 짓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선명한 통증이 혈관을 타고 흐르듯 온 몸으로 전해져왔다. 모래바람을 뒤로하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뒷모습, 닿을 수 없는 차원의 경계 너머로 선정이는 또다시 안타깝게 사라져갔다.        


  

레트로만이 유일한 생존 비결인 것처럼, 세상의 빠른 ‘변화’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분명 현재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지향하는 ‘학교’라는 신기한 공간. 최근 골칫거리였던 교내 에어팟 도난사건에 대해 ‘학생 각자 조심하는 것이 우선이다’, ‘신중하게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모호한 공지를 내보내던 학교는 ‘내신평가 출제 부정’ 의혹이 제기되자, <정직, 성실, 존중>이란 학교 교훈 사수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본캐를 숨겨온 히어로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에어팟 도난사건은 쳐 기다리라더니 오늘은 아주 일심동체로 긴박하네. 내 에어팟은 누가 책임지는데! 틀딱들 진짜 개빡치네.~”

“뭐 하루이틀이냐, 내가 예언하나 할까? 대마불사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학교 불사’야! 대한민국 학생들 다 뒤져두 학교는 영원할걸. ㅋㅋㅋ.”     


다음 날, 3학년 전체 학급 오전 시간 자습이 공지되자 곳곳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교장, 교감, 교무 주임을 비롯한 모든 3학년 선생님들이 모여 사태 해결을 위한 회의에 돌입한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수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모종의 지침이라도 있는지 선생님들은 일제히 내신 부정출제 의혹에 대해서 함구했다. 학교를 감도는 무거운 공기, 분명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인 학생들의 생각과 바램은 철저히 배제된 채 그렇게 학교의 하루는 싱겁게 끝이 났다. 종례시간, 이제는 얼굴 전체를 뒤덮은 얼룩덜룩한 다크서클 때문에 짜증이 난 것인지, 의기소침한 것인지 도무지 파악이 힘든 조끼쌤은 모호한 멘트를 남겼다.     


“시끄러운 잡음 너희 수험생들에게 좋을 거 하나 없다. 말도 안 되는 음모론 껄떡대지 말고 각자도생, 루틴 지켜. 학교를 뒤흔든 자가 있으면 누구든 책임을 지겠지.”      


은근 그 눈빛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아 순간 뜨끔 했지만, 클린하게 관련자들이 이 사태를 책임지는 것, 그리고 수험생의 루틴을 되찾는 것, 모두 내가 간절히 원하는 바이다. 방과 후,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을 찾아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던 저녁 7시, 드디어 학교 공지가 올라왔다.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서일고 내신 부정출제와 관련해 학부모님께 근심을 안겨드린 것 매우 송구합니다. 최초 문제의 게시글이 작성된 학교 홈페이지를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근거 없는 음해성 게시물로 판명되었습니다. 본교의 내신평가는 해당 교과 선생님들이 3인 이상 참여해 출제 난이도와 오류를 중복 체크하고 있으며 유명 강사의 학원 문제와 유사 문제가 출제된 것은 최근 고난도 문제의 트렌드화 경향에 따른 우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부정출제는 교육자의 양심에 위배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본교는 집단 출제를 통해 불미스러운 사건을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신평가 문제 출제에 더욱 신중을 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나 학부모님의 의구심과 투명한 학사운영을 위해 본교는 홈페이지 악의적 게시글 작성자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더불어 더워지는 날씨, 학부모님 가정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면밀히 사건을 검토한 결과가 홈페이지 게시글 작성자를 찾아 책임을 묻는 것이라니! 기대했던 진실규명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교묘하게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학교 공지. 이 사태의 칼끝은 그럼 나를 향하게 되는 건가? 지훈이 말대로 난, 세상을 너무 해맑게 바라보는 애송이다.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허탈했다. 평정심을 잃고 미적분 문제를 더듬거리던 저녁 7시 30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두 번째 폭탄이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었다. 놀랍게도 IP 주소는 서일고등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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