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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Aug 14. 2024

연재 소설 16화-우울증 갤러리 자살사건과 미로의 시작

미스테리 연재 소설 - 가출팸 투신 여학생 라이브 방송

선정이도 밤마다 이런 악몽에 시달렸을까? 손지우가 다녀간 후,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컴컴한 밤. 번개가 내리치면 ’끼이익~.‘ 마찰음과 함께 순간 모습이 드러나는,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나무 관. 그리고 밤하늘을 다 덮을 듯, 크고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절벽 사이를 유유히 비행하는 악마의 싸늘한 미소. 밤이면 기괴한 사진들이 무질서하게 펄럭이며 떠다니다 나의 불안한 꿈속으로 한 장 한 장 스며들었다. 가위눌림 같은 잠에서 벗어나면 노트북을 열고 손동호의 기기들을 해킹했을 때 복사해둔 폴더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선정이의 스마트폰 속에 있었던 기괴한 사진들도 저장되어 있다. 벽면에 머리를 붙인 여자들이 공중에 붕 떠 있는 흑백 사진,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악마의 사진, 절벽에 나무관이 주르륵 매달려 있는 현관장 사진...이 사진들의 공통점은 메타데이터가 깨끗하게 지워져 출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너, 해커라면서? 손지우의 한마디가 고장 난 녹음기처럼 끝없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되었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선정이 스마트폰이 해킹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누가? 왜? 이런 끔찍한 사진들을 선정이에게 보낸 것일까?


운영체제나 네트워크 시스템의 보안 취약점을 공격하는 ’제로데이 공격‘은 패치가 나오기 전까지는, 적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이다. 공격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치명적이고 가공할 피해를 남긴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생각했던 선정이의 죽음은 더 깊은 비밀 속으로 침잠해 버렸다. 인터넷 여론을 통해 선정이를 압박한, 얼굴 없는 가해자라고 생각했던 손동호. 그를 이 사건에서 지우고 나니 남은 것은 달랑 몇 장의 기괴한 사진들과 선정이가 나에게 남긴 메시지뿐. 나는 이 사건의 패치를 아직 찾지 못했다. 무방비 상태의 현실을 집어삼킬 무언가가 서서히 사방을 조여오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노트북을 닫아두는 것 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고3의 시간은 6월 마지막 주를 지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 등굣길, 아빠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편의점 앞, 파라솔 테이블에 태블릿을 올려두고 뉴스를 보며 식사 중이던 아빠는 맞은편에 억지로 나를 앉히더니, 후다닥 지훈이가 전날 만들어 왔다는 전복 삼계죽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왔다.   

  

“지훈이 이 녀석은 진짜 예쁜 짓만 골라 한다니까. 날 더워져 아버님 기력 떨어진다면서 지난 밤에 전복 삼계죽을 두고 간 거야. 너두 공부하느라 힘드니까 꼭 한 숟갈 챙겨 먹이라더라. 요즘 세상에 이런 진국이 어딨냐? 벌 받을 거야, 복덩이 버리고 간 애미인지, 애비인지는.”

“또, 또 그러신다. 지훈이 누구보다 잘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그럼, 지훈이도 내 아들인데 뭐가 걱정이야. 진짜 쉐프 돼서 레스토랑 차리면 투자도 하고 매니저는 내가 해야지. ㅋㅋ 보안전문가 아들에 일류 레스토랑 쉐프 아들까지, 말년 복이 아주 제대로 터지겠네.”

“김칫국 너무 드링킹 하시면 실망도 큽니다, 누가 매니저 시켜 준대요? ㅎㅎ.”      


전복에 녹두까지 넣은 삼계죽의 조합이 꽤 어울리지만, 입맛이 없어 대충 먹는 시늉 좀 하다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뉴스 속 충격적인 자막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강남 빌딩서 10대 여학생 극단 선택, SNS 생중계> 뉴스는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옥상을 비추면서 기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 서울 강남의 한 빌딩입니다. 26일, 어제 오후 5시 반쯤 10대 여학생 A양이 이 빌딩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A양은 이 과정을 SNS 라이브 방송을 통해 생중계했습니다. 당시 30여 명의 시청자가 투신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한 시청자의 제보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지만, A양의 투신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A양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 ’우울증 갤러리‘ 내 모임인 <연주동팸>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합뉴스 TV, 김화식입니다.”     


’쿵‘ 마음이 내려 앉았다. 찰나의 시간이 아가리를 벌려 삼켜버린, 또 하나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환시였을까? 카메라가 빌딩 옥상의 난간을 비출 때 순간적으로 캄캄해진 하늘 위로 빠르게 날아오르는 무언가를 보았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아빠도 꽤나 놀란 듯, 숟가락을 내려놓고 태블릿에 두 눈이 고정되어 있다.      


“정말 끔찍한 세상이네. 김화식 기자, 우리 회사 보도국에서 10년 전에 연합뉴스로 이직한 후밴데 요새 뉴스들 정말 상상 이상이라 힘들겠어. 라이브로 자살 방송을 하다니.... 요새 청소년들은 알 수가 없네. 근데 연주동팸이 뭐냐?”

“가출한 청소년들의 모임, 가출 패밀리를 줄여서 가출팸이라 해요. 몇 년 전부터 가출팸 사건 사고가 많은데 연주동팸은 우울증 커뮤니티 중 꽤 유명한가 봐요.”

“선정이라 했나? 너희 학교 사건도 그렇고 요새 아이들 마음이 참 힘든 모양이야. 은호 너두 힘든 게 있으면 말을 해야지~혼자 끙끙거리면 안 되는...”

“식사 마저 하세요. 학교 늦겠어요. 다녀오겠습니다.”     


편의점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이런 순간, 아빠와 나는 서로의 거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가족, 둘 중 하나가 잘못되는 날엔 엄마를 보내고 겨우 지탱해오던 세상이 다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공포. 조금 전, 슬쩍 나의 표정을 살피는 아빠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아빠의 눈빛, 뉴스에서 보았던 빌딩 하늘의 검은 물체가 겹쳐지며 화양구의 익숙한 아침 풍경은 슬로우 화면처럼 의식의 외곽선으로 물러났다. 갑자기 화양구의 빌딩 사이로 검은 날개를 펼치며 무언가 시야를 덮칠 듯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빵~~!!‘

긴 여운을 남기는 클랙슨 소리가 나를 현실로 소환했다. 보행자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뀐 것도 몰랐다. 세이브 몰 앞 횡단보도에 급하게 멈춰선 버스, 자전거는 버스 옆구리를 길게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광고 배너에 거의 닿을 듯 멈춰 서 있었다. 광고판엔 색색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과 에메랄드로 치장한 거대한 성, 그리고 성 위로 펼쳐진 검은 날개와 황금빛 초대장을 쥐고 있는 날렵한 손이 보인다.     



-상상할 수 없는 몰입의 세계! 전 세계를 사로잡을 완벽한 게임 체인저. <WWW.PANDEMONIUM.NET> 7월 1일 베타버전 오픈! 사전 예약자 선착순 입장 가능!-     



“야, 미쳤어? 신호 안 보여? 죽더라도 남한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뒈지고 싶어?“     


두 달 전 테스팅을 맡았던 넥스트 게임사의 신작, <판데모니움> 광고판과 정통으로 부딪혀 진짜 지옥 구경을 할 뻔했다. 기사 아저씨가 오른쪽 맨 앞 좌석 창문을 열고 거리에 화를 쏟아놓지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는 이미지와 현실이 뒤섞여 혼란한 상태가 온종일 계속되었다.      

종례시간, 조끼쌤이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성적표를 배부하고 퇴장하자, 혼돈의 카오스를 경험한 학생들의 깊은 탄식과 셀프 디스가 터져 나왔다.     


“와~~3모 보다 등급 개막장이네. C발, 하면 된다고 누가 헛소리했냐? 하면 그냥 안되는거네.”

“공부는 너 혼자만 하겠니? 9모 때 수생 들어와 봐라, 현역 등급 개박살 곡소리 나는 건 그때부터야.”

“좆같이 수능에서 킬러 문항 빼면 등급 더 골로 갈 텐데. 빡대가리들 입시판을 왜 그냥 냅두지를 않냐고!!”  

   

대입 전형 4년 예고제는 개나 줘버린 듯, 2주 전 수능을 겨우 5개월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뜬금없이 수능 수학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라고 발표하자 학원가도 수험생도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해왔던 기출 분석과 킬러 문항 공략을 완벽한 헛손질로 만드는 어이없는 정책. 수능 수학에서 킬러를 빼고 등급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수능 수학은 준킬러 맛집이 될 확률이 높고, 비율이 늘어난 준킬러 문항을 푸느라 현재보다 더한 시간 압박을 받게 될 게 뻔하다.


수학 1등급을 목표로 극악 킬러 문항 하나는 그냥 버리는 작전을 쓰려 했는데, 뭣 같은 정책으로 판이 뒤집혔다. 뒤숭숭한 마음을 애써 접어두고 모의고사 성적표를 대충 배낭에 넣은 후 도서관으로 향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음악을 듣기 위해 배낭 옆 주머니 지퍼를 열어 손을 넣는 순간, 하루 종일 지속된 혼란함의 화룡점정인가? 젠장, 에어팟 케이스가 사라지고 없는 것을 발견했다.      


등교 후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간 일이 없으니 교실에서 도난당한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교내 에어팟 도난 사고가 계속 발생했는데도 오리무중인 이유는 교실에는 학생 인권 문제로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현장이 발각되지 않는 한, 범인을 잡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에어팟은 고3 올라가는 겨울 방학, 학원비 아낀다고 인강을 주로 듣는 나를 위해 지훈이가 응원의 의미로 큰맘 먹고 선물해준 것이다. 안 그래도 점점 더워지는 여름 날씨, 짜증이 제대로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 <코드게이트 해킹 대회> 참가 상품이었던 스티커형 위치추적기를 에어팟 케이스 안쪽에 붙여둔 것이다. 에어팟 자체 위치추적 기능을 사용할 수 있지만, 거리가 멀어지면 오작동이 많고 에어팟 전문털이범이라면 훔친 즉시 기기를 초기화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맘으로 부착한 것이다. ’내 돈 내산‘이 아니라 더 소중한 에어팟을 찾기 위해 뜻밖의 술래잡기를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에 연동된 위치추적 앱을 열었다. 그러나 단순히 도난범을 찾으면 끝날 것이라 생각한 술래잡기가 사실은 미로에 갇히는 한걸음이었고, 그 미로 끝에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 선정이란 사실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판데모니움: 1667년 간행된 존밀턴의 대서사시, 『실낙원』에 나오는 지옥의 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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