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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Aug 21. 2024

연재소설 17화-도박총판의 황금어장, 학교

미스테리 연재소설 -학교에 파고든 인터넷 도박 총판


‘탁탁.’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작은 빗방울들이 도서관 통창을 조용히 두드리며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위치추적 앱이 가리키는 장소는 학교 안,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구관이었다. 6층 도서관에는 자습 중인 학생은 두 명뿐. 특별 활동실과 동아리실, 과학실 같은 공간이 모여 있는 구관은 방과 후라 텅 비어있었다. 한층 한층 훑어보다, 구관 지하에 있는 실내체육관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신관에 실내체육관을 새로 만든 후, 학교 기물창고로 이용하면서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다. ‘투두둑.’ 조금 전보다 강해진 빗소리 때문에 명확하진 않지만, 체육관 안에서 탁탁 튀기는 공소리, 낮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풀려 있는 디지털 도어락, 실내체육관의 방화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끼이익, 문을 밀고 들어서자 꿉꿉한 곰팡내가 확 느껴졌다. 지하의 어두운 실내. 농구 골대 아래, 출렁이는 그물망을 막 빠져나온 공을 재빠르게 받아든 검은 실루엣 하나가 몸을 돌려 내가 서 있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의 통로 어디에선가 흘러나온 광선처럼, 푸른색 같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한 오묘한 빛이 실내체육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센터서클과 자유투 라인이 부분부분 지워진 농구코트,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의자, 이동식 칠판 같은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지된 시간의 경계를 밟고 서 있는 것처럼, 꼼짝없는 나를 향해 검은 실루엣이 농구공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깔끔하게 다운펌한 헤어스타일 때문에 못 알아볼 뻔했지만, 결코 반갑지 않은 얼굴. 흰자위가 유난히 커서 희번덕하게 느껴지는 눈동자와 옆으로 길게 찢어진 뱀 눈, 강영진이었다. 절친인 한도영과 함께 절도, 학폭 사건으로 중3 때 화양구를 떠나 강전을 갔던 녀석은 지난해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1학년으로 서일고에 컴백했다. 고1 때 퇴학 당한 후, 잠적한 한도영은 지훈이와 같은 보육원 출신이다. 학년이 달라 도통 마주칠 일이 없던 녀석을 에어팟을 분실한 이 시점, 인적 없는 실내체육관 안에서 만나게 되다니...젠장!     


“야, 차은호. 오랜만이야. 우리 조무래기 시절 PC방에서 한솥밥 먹던 사인데 말야. 아니 이제 은호 선배라 해야 하나? 내가 일 년 꿇었으니 말야. ㅎㅎ.”     


웃고 있지만, 갑작스런 나의 등장이 녀석은  꽤나 불편한 기색이다. 어정쩡하게 문에 기대 있는 나를 녀석이 은근히 밖으로 밀어내려 할 때, 실내 체육관 무대 위 오른쪽 방문 아래의 틈새에서 광선 같은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시선이 고정되자 녀석은 좀 더 힘 있게 문밖으로 나를 완전히 밀어냈다. ‘삐리릭.’ 방화문의 도어락이 자동으로 닫혔다.     


“여기.. 출입제한 구역 아냐?”

“농구하러 가끔 와. 알잖아, 신관은 농구 동아리 애들이 365일 꽉 잡고 있는 거. 넌 무슨 일?”

“찾는 게 좀 있어서.”     


스마트폰 위치추적 앱을 열어 <소리로 찾기> 버튼을 눌렀다. ‘삐리리릭~삐리리릭.’ 영진이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검은 더플백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녀석의 입매가 비틀어지더니 나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빌어 짜증을 억누르는 표정이었다.      


“내가 찾는 물건이 아마도. 니 가방 속에 있는 거 같지?”

“그러게, 별로 웃기지도 않는 시트콤이네.”     


영진이는 들고 있던 농구공을 내려놓더니 더플백 안에서 에어팟을 꺼내 순순히 건네주었다. 에어팟 도난범으로 딱 걸렸는데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라니, 몇 년 전보다 뻔뻔함이 수십 배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야~차은호, 해커가 됐다더니 제법인데. 멋있어. 근데 오해는 하지마. 이런 쫌스런 물건 손댈 짬밥이 아니라서.”

“그건 경찰이 가려내면 되겠지. 알잖아? 에어팟 도난사건 때문에 학교가 시끌시끌한 거.”

“워워~ 친구끼리 오해하면 섭하지. 생각해 봐. 난 오늘 니네 반 근처도 간 일이 없거든. 범인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는거 너두 알잖아? 니네 반 이동호, 걔가 빌려 간 돈이 장난 아니라. 오늘 막아야 하는 이자가 있는데 이걸루 퉁치자 하더라구. 현금만 받는 게 원칙인데 딱해서 사정을 좀 봐줬더니 이렇게 빅엿을 먹일 줄 몰랐네.”

“동호가 왜? 너한테 돈을 빌리지?”

“글쎄. 그건 녀석에게 물어보지. 학교처럼 미스터리하고 다이나믹한 곳이 또 있겠어? 멀쩡하던 전교 1등도 자유 낙하해 죽어 나가는 곳이 학굔데 뭔 일인 듯 안 일어나겠어? 도대체가 지루할 틈이 없는 학교가 난 좋더라구.”     


내 등을 가볍게 툭툭 치더니 영진이는 농구공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반소매 티셔츠 차림인 녀석의 왼팔에 새겨진 박쥐인지 요괴인지, 네 개의 날개가 펼쳐진 기이한 동물 문신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져 소름 끼쳤다.

문제집을 펼쳐둔 6층 도서관 창가 자리로 돌아와 내려다보니 소나기가 퍼붓는 운동장을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영진이와 꽁지머리 남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갑툭튀처럼 등장한 강영진, 그리고 에어팟을 훔쳐 간 이동호. 도대체 내 인생에 ‘동호’란 무엇일까? ‘트롤 평행이론’도 아니고, 손동호에 이어 나에게 린치를 가한 또 다른 동호. 생각해 보니 요새 동호 녀석 표정이 썩어있긴 했다. 일단 동호에게 자초지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생소한 번호로 초대 메시지가 도착했다.     


-‘총 맞은 것처럼’님의 초대/ 온에어 무인 코인 노래방 13번 룸/ 당일 7시 30분까지 이용 가능 -  

    

총 맞은 것처럼? 동호 녀석의 스마트폰 벨소리 아니었나? 짐을 챙겨 화양구 세이브 몰 거리 뒤쪽 블록에 위치한 <온에어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비닐우산으로는 하늘에서 들어붓는 빗줄기를 피할 길이 없었다. 제대로 꼬여버린 하루, 비라도 시원하게 퍼붓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온에어 코인 노래방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에서 ㄴ자로 꺾인 실내 복도의 맨 끝인 13번 방. 유리문 너머로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색색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LED 레이저 조명, 요란한 댄스곡의 반주 음과 함께 모니터에서 흐르고 있는 자막. 왜 아무도 없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모니터 맞은편, 길쭉한 의자 위로 쓰러져 있는 검은 물체에 흠칫 놀랐다.     


“동호?”     


헉! 장대비를 그대로 맞았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체를 일으키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동호의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퉁퉁 부어오른 오른쪽 눈두덩이에 검붉은 피딱지가 엉겨 있고 터진 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흐른다.      


“왜 이래? 어디서 쥐어 터진 거야? 병원 가자.”     


동호의 왼팔을 들어 나의 어깨에 걸치고 일어서려 하자 동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꼼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코인 노래방 입구의 무인 자판기에서 생수와 물휴지를 사다 피범벅인 동호의 얼굴을 조심스레 닦았다.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동호가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미안. 급해서 니 물건에 손댔어.”

“됐고. 이 꼴이 다 뭐야? 두들겨 맞은 거지?”

“......”

“영진이 맞지? 조폭이 따로 없네. 그냥 냅두면 안 돼. 경찰에 신고하고 학교에도 알려야 해.”

“제발..그러지 마. 그러면 나 죽어. 그놈 우리 학교 총판이야.”     


비에 흠뻑 젖은 동호의 머리카락에서 눈물 같은 빗방울들이 연신 피범벅인 얼굴로 흘러내렸다. 애원하듯 나를 바라보는 동호의 동공 깊은 곳에 감출 수 없는 공포감이 서려 있다.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던 동호, 장난스럽고 가벼운 아이였지만, 사고를 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만한 대담함은 전혀 없는 순진한 녀석이었다. 그런 동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학교 에어팟 도난, 다 니가 한 거야?”

“아냐, 나 말고도 몇 놈 더 있어. 중고나라나 당근 같은 곳에 꼬리 잡히지 않고 제값 받아 팔아먹기 좋은 게 에어팟이야. 찾는 사람도 많고, 잃어버린 사람도 끈질기게 찾지 않거든.”

“직접 안 팔고 영진이 놈한테 갖다 주는 거야?”

“그 새끼 윗대가리가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한대. 물건 가져다주면 지들이 초기화해서 팔아먹는다더라구.”

“도대체 빚을 얼마나 졌길래 이 난리야? 부모님 아셔?”

“부모님 이혼해서 엄마랑 살아. 식당일 하며 고생고생한 엄마한텐 말할 수 없어..은호야, 나 정말 미쳤나 봐. 도박 빚이 1억이 넘어..”

“미친~ 도박은 절대 딸 수가 없는 구조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냐!”

“아는데..잃은 돈 생각나 억울해서 멈출 수가 없었어. 그동안 잃은 돈 복구하면 다 털고 다시는 손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에 돈 빌리고, 잃고 나면 꼭지 돌아 또 돈 빌리는 무한반복. 탈출구 없는 지옥 속이야”

“정신 차려, 이동호, 이거 혼자 해결 못 해. 부모님도 학교도 알아야 끊던지, 병원에 입원을 하던지 결론이 나지.”

“안돼..그 돈 안 갚으면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나를 패 죽이는 건 상관없는데 여동생을...은호야, 그놈들은 악마야!”     


공포스런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동호가 진저리 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턱까지 덜덜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호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괜찮아..괜찮아..방법을 찾아보자..”     


눈물범벅인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동호가 나를 바라보았다.     


“니 물건 훔친 거..도박 빚 때문에 눈이 뒤집힌 것도 맞지만 니가 알게 되면 혹시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은호야, 너무 무서워.”     


동호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앨범을 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헉! 숨이 막혔다. 그 속에는 선정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기괴한 사진들이 판박이처럼 들어 있었다! 나의 두 눈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악마의 사진에 고정되었다. 아침부터 환시처럼 따라다니던 검은 날개가 동호의 스마트폰을 뚫고 나와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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