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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Sep 04. 2024

연재소설 19화 - 실내 체육관의 비밀

미스테리 연재소설 -청소년 도박 총판 범죄

<VIP님에게 골든 티켓이 도착했습니다!>

노트북을 켜자 메일 알림이 떴다. 뭐지? 메일에는 판데모니움 베타버전 오픈에 도움을 준 VIP들을 먼저 초대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VIP들에게만 특별히 20만 골드 머니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황금 열쇠가 그려진 티켓을 클릭하자 <모두가 꿈꿔온 진정한 유토피아. WELCOME, PANDEMONIUM!> 메시지와 함께 판데모니움 베타버전에 접속되었다. 보안테스팅을 맡아 익숙한 오프닝 화면. 색색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에 우뚝 선 거대한 에메랄드 성으로 입장하자 메타버스 기술로 구현한, 현실보다 더 화려한 카지노장이 펼쳐진다. <알리바바>라는 닉네임을 설정하고 현실에서는 부담스러운 흰색 정장에 중절모로 아바타를 꾸민 후 각각의 매력이 넘치는 게임장을 둘러본다. 슬롯머신, 빙고, 포커, 바카라뿐 아니라 메타버스로 세계 각국에 존재하는 실제 카지노장을 구현해 구경도 하고 게임을 현장에 있는 것처럼 즐길 수 있다.     


 

판데모니움의 베타버전 오픈일은 7월 1일인 내일모레. 그래서인지 게임 유저들이 거의 없어 카지노 객장은 한산했다. 그중 바카라 게임장으로 들어서자 몇 명 유저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반짝이는 보라색 널따란 테이블 너머로 금발의 여성 딜러가 뱅커와 플레이어의 카드를 나누고 있고, 딜러와 마주 앉은 한 남성 유저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깨에 닿을듯한 곱슬머리, 검은색 긴 망토가 우아한 주름선 그대로 의자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바닥에 끌리고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무도회장에나 볼 수 있는 검은색 반가면으로 두 눈을 가리고 검은색 긴 장갑을 낀 유저, 닉네임 <MASTER>가 팔짱을 끼고 카드를 나누는 딜러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옆에 앉은 한 쌍의 남녀 유저, 뒤쪽에 서 있는 3명의 신사복 유저가, 모두 흥미롭게 이 게임을 관전 중이다.


뱅커와 플레이어 중 카드 2장의 합이 9에 더 가까운 쪽이 이기게 되는 단순한 게임 바카라. 근소한 차이로 뱅커가 이길 확률이 높은 이 게임에 MASTER는 연속 3회 플레이어, 1회 타이에 베팅해 게임칩을 쓸어 담았다.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는 딜러와 MASTER의 긴장감, 탄력 있는 카드의 질감까지도 살려낸 3D 게임의 생생함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게임을 끝낸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서자 골드머니가 정산되어 화면에 표기되었다. MASTER의 골드머니는 벌써 1억. 뭐지? VIP들에게 부여하는 골드머니는 똑같이 20만이었을 텐데, 그새 등장한 이 구역 타짜인가? 놀랍긴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합법적인 소셜 카지노 게임 판데모니움은 사이버 머니로 즐길 수 있을 뿐, 현금 환전 기능은 없다. MASTER는 기다란 망토를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에 끌며 유유히 사라졌다.          



게임을 한판 해볼까 생각하다 그냥 로그아웃했다. 보안테스팅을 맡아 궁금하긴 하지만, 한가하게 게임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어제 점심시간, 고민 끝에 교무실로 담임 조끼쌤을 찾아가 동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눈길은 스마트폰 주식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무슨 종목인지, 빨간색 불기둥이 무섭게 치솟고 있는 주식 차트. 뚫어지게 스마트폰 창을 들여다보는 그의 두 눈은 니코틴에 푹 담갔다 빼낸 것처럼, 누렇게 빛바랜 세월의 허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잠시 후, 헛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를 바라보는 조끼쌤의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어제 싹 다 정리했더니 아주 엿을 먹이는구만...야, 학교가 무슨 심부름센턴 줄 알아? 민증까지 나온 녀석이 지 스마트폰 들고 다니면서 도박하는 걸 뭘 어찌하라는 거야? 기왕 하려면 따던가, 멍청한 놈. 지 인생 지가 꼬아대는 걸 어떻게 뜯어말리냐고! 그리고 차은호, 여름방학 끝나면 금방 수시 원서 써야 하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남의 일에 질척거려? 오지랖 떨지말구 니 앞가림이나 잘해! 고3은 각자도생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훈계인지, 화풀이인지, 자조인지 알 수 없는, 속사포처럼 쏟아낸 말들이 의미 없이 흩어졌다. 전자 담배 골초인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진동하는 썩은 약초 냄새. 오른쪽 머리를 딱따구리가 쪼아대듯 참을 수 없는 편두통이 몰려와 그대로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동호는 한 반에 평균 3명, 많게는 5~6명까지 도박에 빠져있다고 했다. 피라미드처럼 퍼져 있는 교내 도박총판 모집원들은 도박 사이트에 친구들을 가입시킬 때마다 통장에 돈이 꽂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업 중인데 학교의 대응은? ... 답이 없다....  

    



그러나 정말 나를 불안하고 미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어두운 무의식의 장막을 뚫고 날아오른 검은 날개, 유튜브에서 연주동팸 여학생 A의 자살 보도를 다양한 방송 채널 버전으로 며칠째 모니터링했다. 악마의 검은 날개가 화면을 지나간 것은 찰나였다. 카메라가 스치듯 자살한 여학생 A의 스마트폰을 보여줄 때, 그 속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 하늘을 다 가릴 듯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가는 악마의 모습. 화면을 정지하고 수십 번 확인했다. 선정이의 스마트폰에도, 동호의 동생 다슬이의 폰에도 똑같이 전송된 기괴한 사진. 범인은 3번째 희생자를 예고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 더 많은 희생자가 있을까? 아무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피해 학생들의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요 며칠 지훈이와 방과 후 배달 알바를 뛰고 있는 동호는 건당 4000~5000원짜리 배달비를 받아 어느 세월에 영진이에게 돈을 갚느냐며 똥줄이 타 어쩔 줄 몰라하고, 3-1학기 기말고사는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할까도 생각했지만, 지훈이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망상증 환자의 헛소리로 묻히게 될 확률이 100%라고 확신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희생자가 생긴다면? 일단 놈들을 옭아맬 어떤 단서라도 찾아야 한다.       

   

7월 1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행동을 개시했다. 광선 같은 푸른빛이 새어 나오던 구관 지하의 실내 체육관, 최대한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내부를 살펴보기에 주말 오후 시간이 적당해 보였다. 나 혼자 사람 없는 학교에 가는 것이 위험하다며 한사코 따라나선 지훈이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까지 이동했다. 본격적인 여름의 개막을 알리듯, 33도까지 치솟은 한낮 더위로 인해 학교는 후끈한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구관 건물 지하 1층, 디지털 도어락으로 굳게 닫혀 있는 실내체육관의 방화문 앞에 섰다. 영진이 패거리는 비번을 어떻게 알고 여기를 들락거리는 걸까? 문 앞에 진지한 궁서체로 떡하니 붙어 있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경고문이 시트콤 같았다. 그러니까 이 구역을 접수한 관계자 영진이 총판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뜻일까? 지훈이가 디지털 도어락 뚜껑을 올렸다 내렸다, 요리조리 살피며 말했다.     

”야, 이거 여는 거 진짜 가능해? 알리바바도 아니고.“

”형님 알리바바 맞거든. 다 방법이 있지. 잘 봐!“     


디지털 도어락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집에서 무선 RF 신호 감지기를 챙겨 왔다. 이것으로 무선 신호를 잡아낸 뒤 복사해 다시 도어락에 신호를 전송해 문을 여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어제 방과 후 도서관에 갔다가 사서쌤 자리 연필꽂이에 항상 들어 있는 디지털 도어락 카드키가 생각나 챙겨두었다. 북태그 동아리 활동으로 매주 도서관 봉사를 2년 넘게 해 왔기 때문에 도서관 내 물품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훤하다. 사서쌤이나 동아리 멤버들은 도서관 도어락 비번을 모두 알기 때문에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카드키. 살펴보니 교내 설치된 디지털 도어락 모델이 모두 같아 마스터키처럼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카드키를 디지털 도어락에 가져가니 삐리릭~소리와 함께 너무 쉽게 문이 열렸다. 다시 문을 닫고 도서관 도어락의 비번, 서일고의 설립연도인 1996을 눌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쉽게 문이 열렸다. 주먹구구식 보안이 생각보다 더 허술했다.   

  

”뭐야 해커가 비번 따는 거 구경 좀 할까 했더니 알리바바 필요 없네. 개나 소나 다 열겠다.“

”교내 도어락 비번이 공통인 건 황당하긴 하다.“     

끼이익~ 문을 열고 내부를 살폈다. 쾌쾌한 냄새, 여기저기 나뒹구는 망가진 책상과 의자.. 그렇지만 이곳에서 영진이를 처음 만난 날, 체육관 실내를 감싸는 듯했던 푸른빛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지훈아, 넌 맞은편 신관 3층 정도에서 창문으로 이 건물 입구 좀 살펴줘. 혹시 건물 안으로 누가 들어오면 연락해.“

”알겠어. 근데 별거 없어 보이는데? 얼른 살펴보고 나와. 귀신 나올 것처럼 으스스하다. 악의 무리는 본능적으로 어둡고 침침한 곳을 찾는구만.“     


혼자 남겨진 실내 체육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생기는 바닥의 마찰음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기물들을 깨우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체육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무대 위로 올라섰다. 무대 위 맨 오른쪽 끝, 객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감춰져 있는 작은 방. 하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이나 연극을 무대에 올릴 때 사용하는 대기실이었다. 내부는 마치 놀이동산 요술의 집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왼쪽 벽면 긴 테이블 위에 부착된 대형 거울이 부분 부분 깨어져 맞은편 벽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학교 행사 포스터들을 찌그러지고 왜곡된 모습으로 비치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도 화가 난 것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누가 언제 버리고 간 것인지, 검은 스타킹이 둘둘 말린 채 버려져 있다. 천장 형광등 아래로 대충 매달아 둔 기다란 막대 모양의 LED 조명. 스위치를 누르니 그곳에서 연보라색 광선 같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이 방, 뭔가 음습하고 불안정하다.

조명 아래 떨어져 있는 찌그러진 나비 모양 집게 핀을 집으려 할 때 끼익~ 실내체육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에게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얼른 조명을 끄고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어깨에 멘 검은 더플백, 한 손에 농구공을 든 영진이와 건장한 체격의 남학생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제발 무대 쪽으로는 오지 마라! 그러나 농구공을 주거니 받거니 통통 튀기며 녀석들은 무대 쪽을 향해 오고 있다. 마침내 성큼성큼 계단을 밟고 무대 위로 올라서는 두 녀석. 점점 더 대기실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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