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레터 Sep 11. 2024

연재 소설 20화-천국의 메뉴판 탕후루 캔디 아이스

미스테리 연재 소설 - 청소년 마약 던지기


가까이 보니, 영진이 옆에 있는 꽁지머리를 한 녀석은 3학년 길성배였다. 에어팟을 도난당한 날, 비를 맞고 걸어가는 영진이 옆에 있던 꽁지머리가 성배였구나. 그날, 여기 대기실에서 동호를 쥐어팬 것도 성배였으리라. 수차례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 진짜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른다는 성배는 단단한 체격, 왼쪽 뺨에서 턱선까지 선명한 지렁이 같은 흉터 때문에 ‘서일고 언터쳐블’로 통하는 인물이다. 선생님들도 성배와 엮이는 것을 꺼렸다.


영진이도 만만한 놈이 아닌데 거기에 +성배라니! 젠장~ 1+1이 아니라 1+10의 압박감이 엄습했다. 뭐 들켜봐야 쥐어터지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지금 내가 노출되면 동호를 데려다 족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영진이가 경계태세를 강화하면 작은 단서 하나도 찾기 힘들어진다. 마른 침을 삼키며 최대한 침착모드로 전환하려 애썼다. 빠르게 방안을 살펴보니 포스터가 붙은 벽면 구석에 간이 탈의실이 보인다. 저기로 숨을까? 생각하는 동안 발소리가 뚝 끊겼다. 곧이어 영진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 봐라, 아주 약에 푹 쩔었네. 상선까지 덜미 잡히기 전에 커트해야 돼.“     


영진이와 성배가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살짝 문을 더 열고 밖을 살폈다. ‘헉.’소리가 새어 나올 뻔했다. 멀리 실내 체육관 입구에서부터 마치 사족보행을 하는 것처럼, 양팔을 앞으로 길게 늘어뜨린채 다가오는 검은 형체. 무대 바로 아래 서 있는 영진이는 농구공을 살살 튀기고, 성배는 팔짱을 낀 채로 버티고 있다. 검은 형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검은 긴 팔 후드티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구부정하게 앞으로 쏠린 상체, 주먹을 쥔 오른팔이 뒤쪽으로 기이하게 꺾여있다. 느릿한 걸음에 이따금 고개를 부르르 떠는 것이 공포물에 나오는 괴물 같아 소름이 끼쳤다.      


성배 얼굴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흉터가 움찔거리더니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섬 집 아이>였다. 원래 박자보다 훨씬 느리지만 축축한 입김을 담은,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휘파람 소리. 맞다. 영진이와 처음 마주친 그날도 실내체육관 안에서 흘러나오는 저 끈적한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후드티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영진이가 기습적으로 농구공을 날렸다. ‘퍽!’ 그 자리에 널브러지는 후드티의 머리를 성배가 거칠게 들어 올렸다.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 스마트폰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무지막지한 성배의 주먹이 후드티의 얼굴을 가격했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후드티의 명치를 다시 한번 퍽 소리 나게 걷어차는 성배. 영진이가 가까이 다가가니, 성배가 후드티의 모자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줌을 당겨 확인해보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두 주일 전쯤, 복도에서 갑자기 쓰러져 한바탕 난리가 났던 3학년 5반 정태경. 술을 먹고 등교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진한 다크서클로 눈가가 움푹 팬 정태경을 보며 경멸스런 말투로 영진이가 말했다.     


”팔뚝 까, 병신아.“     


정태경은 순순히 후드티의 긴 팔을 걷어 올렸다.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분에 시퍼런 멍 자국이 퍼져 있었다.     


”팔에 고속도로 봐라. 대환장 약쟁이 나셨구만. 탕후루나 달게 말아 드실 것이지, 사탕에 아이스까지 야무지게 인터셉트해 쳐드시고, 협박으로 고객 돈 뜯어내고 아주 바쁘시던데? 어디서 공사를 쳐! 돌은 새끼, 너 진짜 죽어볼래? “

”미미안해..죽을거 같아 그랬어.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녀. 망치로 온몸을 후들겨 패는 것처럼 아파서... 살 수가 없어. 블랙리스트 떴는지 병원 처방도 못 받아 패치도 구할 수 없고...어쩔 수가 없었어.“

”지랄을 한다. 니 대갈빡은 우동사리냐?! 폰 내놔.“     



정태경이 핸드폰을 건네자 성배는 폰을 열어 한동안 무언가 검색하는가 싶더니, 유심칩을 빼내고는 있는 힘껏 바닥에 내던졌다. ‘빠지직.’ 액정이 깨져 나뒹구는 핸드폰을 성배는 무자비한 발길질로 완전히 박살 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정태경에게 영진이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딜을 할 거야. 누가 봐도 니 쌍판, 가망 없는 약쟁이야. 그동안 중간에서 해 처먹은 거 까줄 테니 당장 휴학해. 그리고 이제부터 우린 모르는 사이야. 혹시라도 주둥이 함부로 놀렸다간, 알지? 그날로 황천길인 거. 꺼져!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     


공포에 질린 정태경이 순순히 퇴장했다. 영진이가 산산 조각난 정태경의 휴대폰을 더플백에 넣은 후, 자기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면서 성배에게 물었다.     


”써니, 오고 있대?“

”미꾸라지 같은 년. 좀 전에 문자 왔어. 미안하다고. 하긴 돈 나올 구멍이 없어. 애미 집 나가고 애비도 알콜중독이라.“
 “C 발 땡전 한 푼 없는 년이 남의 돈으로 도박은 왜 쳐하구 지랄이야. 박제해 버려! 그리구 건이랑 동호 새끼, 두 빌런은 어쩔 거야? 건이네는 좀 살지 않아? 부모한테 통보한다고 압박해 봐.”

“뭘 믿고 그러는지 배 째라 모드야. 도박 빚은 원래 안갚아두 된다나.ㅋㅋ”

“지랄을 하네. 현직 판사도 지 아들 도박한 거 알고는 혼비백산 입막음하느라 정신없는 판국에. 건이 새끼 아버지한테 연락해. 동호는 어떻게 조지지?”

“요새 오토바이로 배달인지 뭔지 한다고 깝치고 다니던데. 태경이 대신 드로퍼 어때?”

“콜, 가진 게 없으면 몸빵이지.”     


캭~ 성배가 바닥에 가래침을 뱉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작정한 듯 육두문자를 쏟아냈다.     


“야, 이 썅 개C발년아~ 남의 돈 태워 도박하니 째지게 좋았지? 내가 무슨 자선사업하는 줄 아나본데, 재미를 봤으면 몸땡이라도 팔아 갚아야 할 거 아냐! ㅈ같은 화냥년. 공개처형 개망신당하기 전에 해결해! 딱 일주일 준다.”      


써니라는 아이에게 전화한 걸까? 녀석들은 약속이 틀어져 김이 빠졌는지, 곧 실내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꿈을 꾸거나 범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본 건 아니었을까? 제멋대로 뒤틀린 시공간에 혼자 던져진 것처럼 아득히 정신이 혼미해졌다. 별일 없는지 묻는 지훈이의 문자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준비해간 초소형 카메라를 대기실 거울, 깨어진 틈새에 설치해두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여섯 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어두침침한 실내체육관과는 달리, 쏟아지는 햇살의 세례를 받고 있는 교정은 눈이 부셨다. 무엇이 진짜 학교의 모습일까? 너무나 다른 두 공간의 극명한 차이가 기이하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어제처럼 가까운 1학년 시절의 기억들이 한 장 한 장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북태그 동아리 친구들과 학교 산책로의 벚꽃 아래서 시낭송회를 했던 봄날, 벚꽃보다 더 환하게 빛나던 선정이의 미소. 코로나 19 대유행 속에서도 방과 후면 마스크 낀 전사가 되어 운동장을 누비던 축구 매니아 녀석들. 그 속엔 죽어라 공격수 포지션만을 고집하던 동호도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새 다가온 지훈이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당황했지? 내가 신관 가는 사이에 녀석들이 건물로 들어간 모양이야.”

“지금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야...어디 조용한데 가서 이야기하자.”     


지훈이의 오토바이를 타고 도담천 굴다리 앞까지 내달렸다. ‘졸졸’ 흐르는 도담천의 물소리를 마주하며 벤치에 앉았다. 갈증이 났었는지 편의점에서 가져온 콜라를 두 캔이나 벌컥벌컥 마시는 동안, 지훈이는 내가 촬영한 동영상을 돌려봤다.     


영진 완전 쓰레기! 정태경 술 처먹고 학교복도에서 쓰러졌다 해서 정신 나간 놈인 줄 알았더니.. 지훈아, 얘네들 하는 얘기, 마약이지?”

“이 더위에 긴 팔 후드티. 주사 자국 때문에도 그랬겠지만, 탕후루가 펜타닐 은어야. 래퍼하고 싶다구 그 세계 기웃거리던 선배 하나가 펜타닐 중독이었어. 헬게이트가 열린다더라. 사람들은 마약 하면 기분이 뿅 가게 좋아서 끊지 못하는 줄 아는데, 약 기운 떨어지면 온몸이 끓는 물에 튀겨지는 것 같고 망치로 정신없이 두들겨 맞는 것 같다구. 미치게 추웠다가 더웠다가 금단현상 때문에 죽을 거 같으니까 살고 싶어 찾아 헤매는 거래, 마약을.”

“하...도박 총판에 마약유통까지... 범죄집단이 학교에 입성해 무법천지로 활개 치는 게, 말이 돼?”

“원래 도박총판이랑 마약유통은 한 몸이야. 도박 빚 해결 못 해 코너까지 몰린 애들 데려다 마약 던지기 알바로 쓴다더라.”

“그러니까 정태경이 사고 쳐서 이제 동호에게 마약 배달시키겠단 뜻이지?”

“동호, 징징거리긴 해도 정신 차리고 요새 배달 열심인데... 마약 던지기가 고액 알바라 솔깃할 거야. 잘못 걸리면 빼박 마약사범인데...”


영진, 길성배. 완전 악마 새끼들이네.”

“더 걱정되는 건, 써니? 누군지 알겠어, 은호야?”

“모르겠어. 서일고 아닐까? 체육관으로 불러내려 한 거 보면.”

“박제한다? 느낌 쎄하지 않아?”

“설마??”


순간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지훈이가 염려하는 건 성 착취 동영상. 정말 놈들은 그렇게까지 악랄할까?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놈들의 질주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 마약 은어

-탕후루 : 펜타닐

-캔디: 엑스터시

-아이스: 필로폰

-고속도로: 마약을 투약해 생긴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