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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Sep 18. 2024

연재소설 21화 - 블랙화면 속 휘파람 소리

미스테리 연재 소설 - 성착취 동영상 촬영

- 사전 예약자는 신이다.!

- 판데모니움, 레알 갓갓!  

- 라스베가스 왜 가니? 현실 그 잡채인 초호화 카지노에 뻑 갔다!

- 제발!! 판데모니움 아디 빌려줄 분?은 엔젤!!     


졸업하면 그냥 넥스트 게임사에 취업할까? 이틀 전 넥스트 게임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님이 제안할 것이 있다며 금요일 저녁 미팅을 요청해 왔다. 잠시 후 밤 8시, 보내준 링크로 접속해 화상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말고사 치러진 7월 첫 주 SNS는 온통 베타버전을 오픈한 판데모니움 게임 후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현실보다 더 생생한 ‘리얼 카지노 세상’이라는 찬양 속에 너도나도 게임을 경험하기 위해 아이디를 빌릴 정도로 난리가 났다. 가을에 정식 버전을 오픈하면 넥스트 게임사는 드디어 국내 게임업계 만년 2위를 탈출할 수 있을 듯싶었다.     


지난해 버그바운티 대회 수상으로 획득한 넥스트 게임사 특별채용 어드벤티지. 연봉도 복지도 꽤 괜찮은 데다 판데모니움 게임을 통해 더 날아오를 듯한 넥스트 게임사 취업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지만 3학년 겨울방학의 다짐과는 다르게 끝내 1점도 올리지 못하고 1.9, 그대로 마감한 내신. <K대 사이버 보안학과> 합격증을 엄마의 납골당에 선물해드리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지난 한 주간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구관 실내체육관 대기실에 설치해둔 초소형 카메라 화면을 모니터링 하느라 좌불안석, 화요일에는 실내체육관에 가짜AP로 허니팟을 설치해 두었다.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내내 별다른 액션이 없는듯한 영진이 조직, 나를 뺀 모두가 평범하고 지극히 안전해 보였다. 지루할 정도로 뻔한 학교의 일상 속에 시한폭탄 같은 사건이 숨겨져 있다고 떠들어 대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믿지 않은 것이 당연해 보였다. 나만 모른 척한다면, 이토록 평범한 학교의 일상은 감쪽같이 지켜지지 않을까?     


프로젝트 매니저가 보내온 <Pantheon Conference Room> 링크를 클릭하니 가상공간 회의실로 연결됐다. 높고 둥그런 돔원형 천장 아래 화려하게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수정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투명한 둥근 테이블, 황금 무늬로 테두리를 마감한 빨간색 의자들, 귀족적이고 아름다운 배경의 가상회의실이었다. 항상 곰돌이 푸우처럼 푸근한 인상의 프로젝트 매니저님의 얼굴이 화면에 떠 있고 닉네임 MASTER는 블랙 슈트 차림의 남성 아바타로 접속해 있었다.      


“은호 씨 오랜만이야. 오늘 회의 중요한 분이랑 미팅이야. 깜짝 놀랄걸!”

“반갑습니다. 다니엘 정입니다. 지브롤터에 있는 게임회사 <판테온 플레이어>의 부사장이자 게임개발자예요.

“안녕하세요. 차은호입니다. 와~메타버스 기반 화상회의실이 흥미롭네요.”

“코로나 19 때 은호 님처럼 세계 곳곳에 있는 전문가들과 협업하려고 만든 사이버 회의실입니다. 게임개발자다운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회사 이름에 맞게 로마의 판테온처럼 웅장하면서 신비감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했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가상공간 세팅을 정말 실감 나게 잘하시네요. 혹시 지난번 판데모니움 VIP들에게 오픈했을 때 바카라 게임장에서 골드 머니 쓸어 담던 MASTER님? 아닌가요? ”

“ㅎㅎ 원래 게임 개발보다 플레이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다니엘 정, 넘사 게임개발자님이야. 우리 회사도 러브콜을 여러 차례 보냈는데 ㅎㅎㅎ.  지난번에 얘기했지? 판데모니움은 국내외 서비스 동시 오픈이라고. 국내 판은 우리 넥스트 게임사가 판권을 사들였고 세계시장 공략은 <판테온 플레이어>에서 동시에 진행하거든. 영국과 지브롤터에서 국내처럼 7월 1일 베타버전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오픈해보니 일부 유저들 접속에 보안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다고 하네.”

“참신하고 젊은 보안전문가를 넥스트 게임사에 부탁했더니 은호님을 추천하더군요. 한국버전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셨다고요. 유럽 버전도 한번 점검해 주실 수 있을까요? 페이는 업계 최고 대우로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얼떨떨하네요.”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공간 제약 없이 성공적으로 협업해 왔어요. 넥스트 게임사가 중간에 있으니 서로 믿을만하고 제안서는 은호님 이메일로 보내드리죠. 읽어 보시고 결정하세요. 찾아보시면 알겠지만 <판테온 플레이어>는 유럽 쪽에서 꽤 유명한 게임회사입니다. 은호 님에게도 스팩이 될거예요.”

“은호 씨는 우리 회사 버그바운티 대회 수상자예요. 혹시 실력이 탐나도 인터셉트, 안됩니다.ㅎㅎ.”

“실력 있는 인재라면 적극 스카우트

해야죠, ㅎㅎ. 은호님, 보너스로 골드머니도 두둑이 챙겨드리죠. 골드머니가 로또가 될 수도 있습니다.”

“로또요? 한국에선 소셜 카지노 게임, 게임 머니 현금화는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요?”

“가능성이 무한한 한국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죠. 뒤로는 불법이 판을 치는...지브롤터를 비롯해 영국, 호주,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겜블링 라이센스를 발급받은 온라인 카지노가 합법입니다. 국가에 엄청난 세금을 안겨주는 효자 산업이죠. 게임업계에 관심 있다면 다음 기회에 더 이야기 나누도록 하고 첫 만남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미팅이 잡혀 있어서 나머지는 매니저님께 부탁드리고 먼저 퇴장할게요.”     


다니엘 정이 먼저 로그아웃했다. 자신만만하면서 품위 있고 부드러운 말투, 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느낌이 들었다. 내가 궁금해할 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프로젝트 매니저님이 다니엘 정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계 부모님을 둔 미국인, 업계에서 최근 핫한 게임개발자인데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해 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신변노출을 거의 하지 않아 자신도 한번 밖에 얼굴을 못 봤다는 것이 프로젝트 매니저님의 설명이었다. 게임을 구상하는 창의력이 탁월하고 게이머들이 열광할만한 요소를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 배울 점이 많다면서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지브롤터를 검색해 보았다. 이베리아반도 끝에 위치한 스페인 안의 영국 땅,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말했다고 한다. 판테온 플레이어의 홈페이지를 검색했다<www.pantheonprayer.com>. 게임회사라 player인줄 알았는데 특이한 이름이다. 홈페이지에는 모든 신을 위한 만신전 판테온처럼 세상 모든 게임을 만나는 전당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세상 끝에 있는 게임의 전당, 게임업계로의 진출하면 골치 아픈 현실에서 벗어나 이렇게 신비하고 매력적인 곳들로 이동하며 일할 수 있을까? 책상 위에 놓인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원래 내 꿈은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보안전문가인데 엄마가 옆에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까?     


‘케빈 미트닉이라고 CIA, NASA까지 뚫어버린 미국 전설의 해커가 있는데 은호 너 어릴 때랑 진짜 똑같아. 여섯 살 때 혼자 체스 게임에 빠지더니 완전 게임에 통달해서 어느 날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고 체스판을 쓰레기통에 버렸대. 그리고는 컴퓨터에 빠져들었다는데 너두 어릴 때 심심하면 혼자 체스 뒀잖아. 기왕이면 게이머 말고 해커 어때? 케빈 미트닉도 미국 최고 보안전문가가 됐거든, 멋지지 않니?’

내가 게임에 푹 빠져있던 중학교 시절, 장난처럼 찔러보듯 엄마가 했던 말. 그때는 실현 가능성 제로라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엄마의 한마디가 그립다.           



‘은호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해. 두려움 없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분명하게 느껴지는 엄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이 떠졌다. 기말고사가 끝난 피로감이 몰려와 깜박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나 보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습관적으로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모니터 중인 실내체육관 대기실 화면을 열었다.

젠장...언제부터였는지 화면이 블랙이다. 카메라 작동 중에 오류가 생긴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현장에 가서 손봐야 하지 않을까, 지훈이에게 연락해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검은 영상 속에서 끈적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쁘고 축축한 <섬 집 아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휘파람 소리 사이로 가늘게, 끊어질 것처럼 간간이 들려오는 숨소리. 미세한 흐느낌. 컴컴한 어둠에 갇힌 연약한 생명체가 떨고 있다, 울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검은 화면이 절망의 웅덩이처럼 모든 것을 삼키고 있다.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항상 11시까지 열려 있는 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날, 야자를 하는 학생이 많지 않아 학교가 텅 비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필이면 오늘 저녁 화상회의가 있었던 것도 운명의 장난 같았다. 후다닥 노트북을 챙겨 자전거를 타고 미친 듯이 학교를 향해 달렸다. 학교 정문이 보이는 도로로 막 접어들었을 때, 날렵한 모양의 노란 스포츠카가 정문 건너편에서 미끄러지듯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헉헉대며 도착한 구관 지하의 실내체육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문이 닫혀 있다. 한 발 늦은걸까? 디지털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조용히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앞이 분간되지 않은 완전한 어둠속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 끈적한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허니팟 - 가짜 AP로 만들어낸 네트워크 서비스 혹은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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