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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레터 Sep 25. 2024

연재소설 22화 - 텔레그램 비밀방 숨은 동영상 찾기

미스테리 연재소설 -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


대기실 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텅 비어있는 내부, 그렇지만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공간. 형광등 아래 매달린 막대 모양 LED 조명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깨진 거울 앞 테이블에 떨어져 있는 검은 마스크. ‘주르륵.’ 남은 물을 토해 내는 중인 바닥의 찌그러진 생수통. 그 옆에 서일고 교복에 다는 하얀 명찰이 누군가를 기다리듯 놓여있다.


’날 좀 봐줘, 절망의 통로 같은 밀실에 갇힌 나를...‘  

벽면의 깨진 거울 속, 공포와 비탄에 빠진 눈동자가 나를 보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생수에 흥건하게 젖은 명찰을 가만히 손바닥 위에 올렸다. <지선희>. 깊은 한숨과 절망, 흐느낌을 한껏 머금었던 공간이 축축한 기억을 몸서리치듯 한꺼번에 밀어낸다. 거부할 틈 없이 전이된 고통에 가슴이 저려온다. 검은 화면 속에서 들려오던 흐느낌과 박제해버리라는 영진이의 싸늘한 목소리가 겹쳐졌다.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이 치밀어 올랐다. ‘쿵쿵쿵‘ 나도 모르게 지저분한 포스터들로 가득한 대기실 벽면을 주먹으로 미친 듯이 내리쳤다.

젠장, 악마가 놈들을 비호라도 하는 것일까? 리셋 버튼을 눌러보니 카메라는 거짓말처럼 정상 작동되었다. 노트북으로 살펴본 가짜 네트워크, 허니팟에는 어떤 기기의 접속도 없었다.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모든 계획.     



그렇지만 녀석들을 멈추게 하기 위해선 블랙홀 너머로 사라진 시간의 진실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허탈하게 다락방으로 돌아온 검은 밤. 꾸역꾸역 노트북에 카메라 화면을 연결해 수십 번 녹화된 영상을 리플레이 했다. 대기실 카메라 영상은 한결같이 깨진 거울의 맞은편, 오래전 학교 행사 포스터들로 요란한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밤 9시 55분, 암전되듯 갑자기 검은 화면으로 바뀌어버린 영상. 휘파람 소리와 가느다란 흐느낌으로 저장된 그 시간. 선희라는 이름의 아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1999년 연극동아리 <스포트라이트> 정기 공연/ 2012 서일고 별빛 축제/ 2015년 서일고 미니 월드컵-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 빛바랜 포스터 속의 문자들을 해독할 수 없는 암호처럼 읽고 또 읽었다. 기억을 머금고 있는 공간의 침묵과 끈질기게 대치한 긴긴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전교생 데이터에서 지선희란 아이의 신상부터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눈을 붙이려는 순간, 섬광처럼 검정색 사인펜으로 쓰인 작은 글씨가 포스터가 붙어있는 벽면에서 튀어나오며 머릿속에 정렬되었다. 어젯밤 9시 55분까지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던 영상과 카메라를 리셋한 후 영상을 비교해 보았다. 그 속에는 숨은그림찾기처럼 달라진 것이 있었다!       


<2012 서일고 별빛 축제> 포스터 아래, 무심히 지나치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글씨, <mt1004.net>. 지선희라는 아이가 남겨둔 흔적이 분명하다. 인터넷 주소로 입장했다. 번쩍이는 메인화면에 <업계 최고 베팅!>,<실시간 입금!>,<고객센터 텔레그램> 같은 큼지막한 폰트의 색색 현란한 글씨들이 눈에 띄었다. 세팅하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듯한 조잡한 불법 도박 사이트였다. 메인화면 위에 떠 있는 <핫! 생방송 보디 프로필!-고객님들께만 무료공개 > 배너를 나도 모르게 클릭했다. 그 순간, 가려져 있던 시간의 덮개가 열렸다.     


배너의 링크를 타니 수백 명이 가입된 텔레그램 방으로 입장 되었다. 말로만 듣던 불법 동영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비밀의 방. 익명성에 기댄 추악한 본성이 여과 없이 노출되는 곳, 도를 넘어선 음담패설과 막말 조롱 대잔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신상 노예 등장! 싱싱함 ㅈㄴ 살 떨린다.

-다 벗고 마스크 무엇? 무료 방이라 오빠가 한 번만 용서할게.

-노예년들 걸핏하면 얼굴부터 가리는 게 국룰. ㅋㅋㅋ

-데뷔작이 A급. JK S라인 죽이네!

-은은한 섬 집 아이 BG가 찰떡이네. 니 애미 굴 따러 간 사이 아가 홀딱 벗었니?ㅋㅋㅋ     


채팅방을 빠져나가려 하는 순간 ’섬 집 아이‘라는 글자에 두 눈이 고정되었다. 학교 안 숨겨진 밀실과 추악한 사이버 공간은 허탈하도록 빠르게 연결되어 있구나...떨리는 손으로 채팅방에 떠 있는 동영상을 플레이했다. 교복 치마 차림에 상반신을 완전 탈의한 여학생이 검은 마스크를 끼고 카메라 정면을 보고 있다. 사방이 어두운 데다 긴 머리로 광대까지 다 덮어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는 없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와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공허한 눈빛을 마주하자 뭐라 표현하기 힘든 통증이 느껴졌다. 동영상 안에서는 먹잇감을 궁지에 몰아넣고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축축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당장 화면 속으로 손을 뻗어 숨어 있는 녀석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화면을 멈춰도 귓가에 소름끼치게 달라붙는 그것, 분명 악마의 음성이었다.   


       

불법 도박 사이트와 텔레그램 채팅방 화면을 저장해 증거를 남겨두고, 학교 도서관으로 갈 준비를 하던 오전 7시 40분, 놀랍게도 그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지선희입니다. 오늘 저녁 7시, 별님 마을 10단지 상가 무인카페 달 토끼.-

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아는 듯한 통보식 문자. 어떻게 나에게 연락을 해온 것일까? 뒤죽박죽, 저녁 시간까지 긴장감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약속 시각에 맞춰 무인카페에 도착했다. 원래도 공실이 많던 임대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 구석인 데다 카페라 부르기도 어색하게 테이블 4개와 자동 음료 추출 기계만 달랑 세팅된 작은 공간엔 아무도 없었다. 겨우 160cm가 될듯한 작은 키. 검은 티셔츠에 검은 반바지, 마스크를 끼고 검은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선희는 약속 시각보다 5분 늦게 나타났다. 뛰어왔는지 땀범벅인 아이를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을 뽑아 테이블 위에 올리자 선희가 말했다.     


“근처 물류센터에서 새벽부터 알바하고 오느라 좀 늦었어요. 오늘 빠지면 주휴 수당을 못받거든요.  죄송합니다.”     


마스크를 벗어놓고 가만히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아이. 동영상에서 봤던 그 안타까운 눈빛은 사라지고 당당하고 총기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지난밤 그 끔찍한 일을 겪고도 새벽에 아르바이트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저 은호 선배 알아요. 1학년 때 잠시 북태그 동아리 기웃거리다 나왔거든요. 지금 알고 싶은 건 한가지예요. 카메라, 설치 왜 했어요?”
 “어..그게...이해할 수 없겠지만, 널 찍으려 한 게 아니라... 우연히 실내체육관에서.. 아, 진짜 뭣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변명처럼 말을 더듬고,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진이 패거리와 얽히게 된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구나 어쩔 수 없이 이 아이의 동영상을 확인하게 된 사실은 또 뭐라 말해야 할까?     

“지난주 화요일 오후에 구관 실내 체육관에 갔었죠? 그때 저, 거기 있었어요. 사실 어젯밤에 선배가 체육관 대기실에 왔을 때도 탈의실 안에 있었어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다. 대기실 안쪽의 작은 탈의실에서 이 아이가 날 보고 있었다니...선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왜 연락을 해온 것일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전개에 마음은 허둥댔다.


“제가 좀 힘들게 살아 직진형이예요. 불편해도 그냥 들어주세요. 작년 가을 아빠가 막노동하다 어깨를 다쳐 병원 입원했을 때 같은 반 친구가 병간호하다 답답하면 해보라면서 게임 링크를 하나 보내줬어요. 용돈 벌이 충분하다고. 알바를 어쩔 수 없이 중단한 상태라 수입이 끊겨 갑갑했는데 그게 시작이었죠. 스마트폰에서 흔히 보던 달팽이 게임이랑 똑같아 경계심이 없었어요. 어쩌다 보니 약간 따서 아빠 병원비 보태고 이후론 뭐..많이 잃었어요. 피 같은 돈 잃을 때마다 그 친구 통장에 돈이 꽂히는 다단계인 걸 바보처럼 몰랐죠. 없는 형편에 날려버린 70만 원, 충격이 세더라고요. 학교에 돈을 빌려주는 총판이 있는걸 그때 알았어요. 귀신같이 알고 접근해 원금 찾으라며 시원하게 대출을 쏴주더라구요. 딱 100만 원 빌린 게 끝이에요. 도박하다 임대아파트 보증금까지 날려 먹겠단 생각이 들어 한 달도 안 되어 도박사이트는 얼씬도 안 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빚이 400이 됐어요.”

“싸패 놈들...어쩌다보니 놈들이 학교에서 별 미친 짓 하는 걸 알게 돼서……. 주변에 협박당하는 친구가 있거든. 그래서 증거 수집 좀 하려고 카메라 설치한 거야.”

“평일에도 알바 정신없이 뛰면서 이자 갚아왔는데 점점 금액이 커지니까 몸캠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에 100만 원씩 까주겠다고. 학교에서 교복 컨셉으로 찍으면 유료 방 조회 수 터진다고 성배 새끼 지랄을 하는데... 돌아버릴 것 같아 동영상 찍으러 오라는 체육관에 가봤다가 화요일 날 선배를 본 거예요. 처음엔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헷갈렸어요. 몸캠 요구하는 놈들에, 몰카 설치해둔 선배까지... 어젯밤에 카메라는 제가 껐어요. 어차피 박제될 거지만, 실시간으로 선배에게 영상이 전송된다 생각하니 정말 쪽팔려 죽고 싶더라구요.”

“영진이 패거리가 협박하는 학생이 있는 건 알았는데 누군지는 정말 몰랐어.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돕고 싶었어. 진짜야”

“선배가 해커대회 나가 상 많이 받은 거 알아요. 상처 많은 친구인데 너무 잘 컸다고 예전 사서쌤이 칭찬 많이 했어요. 선배가 뭔가 옳은 일을 하려고 한 거라면 현장에 와서 제가 흘려둔 이름표를 가져갈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텔레그램으로 통하는 도박사이트 주소도 남겨 뒀구요.”     


대기실에 카메라를 설치해둔 것이 무용지물이라 생각했는데 이 아이는 나에게 계속 구조 사인을 보내고 있었구나. 내 진심을 오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제 동영상 가지고 널 계속 협박할텐데.”

“어제 거기서 이 머리핀을 봤어요. 언젠지 모르지만...누군가 같은 일을 당했구나...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몰랐던게 미안했어요.”     


대기실에 처음 갔던 날, 바닥에서 나도 보았던 나비 모양 머리핀. 선희는 가방에서 머리핀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어느새 선희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어제 동영상 찍기 전에 이 약을 줬어요. 그거 먹으면 하나두 안 창피하다고.”

“그거.. 혹시... 먹은 거야?? 아니지??”

“몰래 가방에 넣어뒀어요. 지난번에 성배 새끼가 전화로 쌍욕을 퍼붓다가 약에 취했는지 그러더라구요. 처음부터 제대로 된 보호자 없는 너 같은 년이 타겟이라고. 몸캠 찍고 그다음은 약 먹이고 성매매. 보호자가 없으니 마약에 쩔어 죽어도 뒤탈이 없다고..전국에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행방불명된 여자애들, 그렇게 성매매 노예로 살다 죽은 애들이 숱하다고...”     


작고 연약해 보이는 이 아이는 놈들에게 골수까지 빨아 먹히고 있었구나. 언제 어디서나 열려 있는 지옥의 문, 한 번의 헛발질이면 이렇게 헤어나올 수 없는 불구덩이에 던져지는데 아무 일 없는 듯 멀쩡해 보이는 세상이 거짓말 같았다.     


“한참을 생각해 봤어요. 이러다 못 견디면 죽는 거구나...아빠랑 둘이 사는데 어깨 수술한 이후로 일을 못 하니까 아빠는 매일 술만 마셔요. 내가 벌어야 해요. 이대로 내가 죽으면 아마 아빠도 죽을 텐데... 그래서 살아야 돼요. 난 숨지 않을 거예요. 선배, 나 좀 도와주세요. 난 그 언니처럼 죽을 수 없어요.”

“그 언니라니? 무슨 말이지...??”

“주선정 그 언니요. 지난겨울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그 언니 몸캠 봤어요.”     


도서관에서 만났던 마지막 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선정이가 했던 한마디 말이 거대한 해일처럼 나를 덮쳐왔다.


<‘삶은 감옥이야. 박제된 감옥...’>



*JK – 여고생을 뜻하는 일본어 ’조시코세‘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주로 JK비지니스 혹은 AV 업계에서 일하는 여고생을 의미하는 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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