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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터닝 포인트

낮은 곳으로

by 샨잉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때가 있다. 지금을 놓치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때.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시점, 4학년 1학기가 끝났을 때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중국 시안으로 단기선교를 떠나기로.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던 나에게 휴학이란 영어권 나라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지 중국에 가서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과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중국에 다녀온 선배가 나의 리더가 됐고 친한 친구는 2학년을 마치고 중국에 갔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내가 중국 단기선교사가 되었다.

중국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환경적으로 열악하고 후원을 받아 사느라 생활이 팍팍했다. 부엌이 베란다에 있는 집에 살아서, 날씨가 추워지면 요리하기가 힘들었다. 집 옥상에서는 중국인부부가 비둘기들을 키워 비둘기가 항상 시끄럽게 울어댔다. 심지어 집에서 쥐가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은 잘 씻지 않았고 거리도 더러웠다. 모임에 가려면 냄새나는 만원 버스를 타고 오래 이동해야 했고, 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많아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며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서의 종교 활동은 법적으로 금지되었기에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식당에서는 눈을 뜨고 기도했고, 종교적인 언어를 다른 말로 바꾸어 썼다. 주일에는 가정집에 모여서 몰래 예배했다.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없고 자유롭게 기도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 눈물짓던 날도 많았다.

나의 형편과 상관없이 중국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었다. 중국을 사랑할 수 없어 괴로웠던 시간이 지나니 차츰 중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선교하는 삶이 고생스럽고 힘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사는데 행복한 것이 아이러니였다. 이런 삶도 있구나. 좁은 한국이 전부인 줄 알고 살다가 중국에 가니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님이 보였다.


한국에서 온 단기 팀을 인솔해 소수민족이 사는 시닝에 갔을 때다. 처음 가 본 낯선 곳에서 무작정 차를 빌렸다. 낡고 작은 차가 구불구불한 길을 덜덜거리며 올라갔다. 가는 길 양 옆으로 드넓은 유채꽃 밭이 펼쳐져 있었고 푸른 초원에는 한가롭게 양들이 돌아다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그림 같은 풍경이 끝나고 높은 곳에 올라가니 순식간에 눈앞에 바다인지 호수인지 모를 푸른 청해호가 펼쳐졌다. 몸에 전율이 흘렀다. 중국에 가지 않았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겨울에 난방을 최소한으로 해서 머리를 잘 안 감았던 언니를 놀려댔던 일, 동굴 같은 비밀의 장소에 모여 마음껏 찬양하고 예배했던 기억, 그곳에서 먹었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양꼬치, 놀게 없어서 단기 선교사들과 종종 함께 했던 보드게임, 중국인 친구들이 먹을 치킨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일, 일주일에 한 번 선교사님 댁에서 먹었던 맛있는 한국 음식. 당시에 겪은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지나고 나니 다 아름다운 추억이다. 중국에서의 일 년 반의 시간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중국에 간 이후로 내 인생은 점점 낮은 곳으로 가고 있다. 평생 선교를 하며 살고자 선교단체 간사가 되었고 목사를 만나 사모가 되었다. 중국에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며 살고 있을까. 중국에 갔던 나 자신을 후회하며 흔들릴 때도 있다. 왜 중국에 가서 내 삶은 계속 아래로 내려갈까. 점점 망하는 길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


중국에 가기 전,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심란했다. 가족인 아빠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데 알지도 못하는 중국 사람을 전도하러 멀리 가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괴로운 마음에 밤새 뒤척였다. 중국에 가자마자 첫 주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홀로 뒤척였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하나님이 가족의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 가족의 문제를 놓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혼자 괴로워했던 것인데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인생의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작은 것을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더 큰 선물을 주신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다 그 끝에 마주한 드넓고 푸른 청해호처럼, 내 인생의 마지막도 그러할 것을 믿는다.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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