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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Jun 06. 2024

잠 못 이루는 밤에 녹음기를 켠다

범인 소탕 작전

잠 못 이루는 밤에 녹음기를 켠다.


콘도나 아파트가 있는 번화가 보다 주택가는 그야말로 집들만 들어서 있기 때문에 한갓지고 오직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 들고 나는 것이 허락된 것처럼 그 동네 주민 말고는 드나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 훨씬 조용하다.


대부분 목조주택이라 위층에서 살살 걷기만 해도 발걸음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우리 식구만 사는 집이라 층간 소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큰 도로와도 떨어져 있어 지나다니는 차는 오로지 주민들 차량뿐이니 이런저런 잡소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을 전 국민이 실천을 하듯 아침 7시 반 혹은 8시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저들에겐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 또한 하루 루틴이 되어 저녁이 되면 더더욱 조용해진다.


옆집에 방해가 되는 일은 법적으로도 금지가 되어있어서 인가? 

시민정신이 투철한 우리 동네 주민들은 모두 그 규칙을 잘 따르는 듯싶다.


이런 좋은 점들도 많지만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도 있는 법이다.


공동 주택처럼 때마다 관리해 주는 업체가 따로 없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봄이 되면 잔디를 깎고 겨울이면 눈도 치워야 하고 오래될수록 문제가 되는 것들을 수시로 보수하면서 손봐주어야 하는 번거롭고 불편한 점들 또한 많다.


그럼에도 주택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당연 조용해서.


내가 이토록 시끄러운 것에 예민하고 조용한 것에만 집착하는 이유는 모두 잠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유별스러울 정도로 예민하다 보니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는 조그만 소리에도 자주 깨고 한번 깨면 다시 쉽게 잠이 들지도 못한다.

자리를 옮겨도, 시간이 조금만 달라져도, 조금의 어떤 변화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잠이 나의 하루를 지배해 버리니 충분히 자지 못하면 그다음 날은 생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머리가 멍~하고 맑지 않아 말하려는 단어조차도 금방 떠오르지가 않으니 버버벅 거리기도 하고 바보가 된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불쾌한 기분이 싫어 될 수 있으면 잠을 잘 자야 되는데 자야 한다는 강박이 또 다른 불면을 이끌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마음처럼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등만 닿으면 잘 수 있는 남편 같은 사람들이 늘 부럽곤 하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던 어느 날 

언제든 잠을 깨도 보통은 쥐 죽은 듯한 고요와 정적만 흐르는데 그날은 뭔가 이상했다.


새벽에 뒤척이다가 우연히 귓가를 자극하는 야릇한 기계음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오래전에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그때는 낮이었지 지금처럼 새벽은 아니었다.


일정 패턴을 유지하면서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를 계속 울린다.

마치 잠을 안 재우기 위해 일부러 틀어놓고 고문하는 듯한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어떤 날은 한숨도 못 자고 꼴딱 밤을 새울 정도로 그 소리는 심하게 나를 괴롭힌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규칙적인 템포를 유지하면서 내 귀에 맴도는 것이 이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간에도 들리는 듯한 강박이 생겨 "내일 새벽에도 또 울리면 어쩌지? 그 시간대가 되기 전까지는 빨리 자 둬야 하는데... 이제 몇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하면서 오히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도대체 어떤 집에서 이웃에 대한 예의도 없이 새벽마다 저런 소리를 내고 있는지...

이런 기막힌 일을 벌이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곤장 백대라도 쳐서 벌하고 싶었다.


이상한 것은 남편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 약이 바짝 오른 내가 아무리 열을 올리면서 말해도 마치 내가 거짓말 장이인양 믿지 못하는 눈치다.


미치고 하늘을 뚫을 만큼의 높이까지 팔짝 뛸 노릇이다.

난 정말 억울하다고요!


그러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녹음은 생각도 못했다.


누가 이런 개념 없는 짓을 벌이는지에 대한 궁금증 생겨 그것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불뚝 불뚝 솟아오르니 더더욱 잠과는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때조차도 핸드폰을 들고 가 침대 맡에 두어야 맘이 놓이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잠잘 때나랑 상관없는 메시지가 울리거나 하면 역시 잠을 못 자니 어떤 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거리로, 될 수 있으면 방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자곤 한다.


핸드폰이 침실로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나만의 규칙 아닌 규칙을 스스로 어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고 새벽에 어떻게든 자야 하는데 녹음기를 찾아서 켜느라 부스럭거리면 더 잠을 깨게 될 일련의 일들이 두려워 정작 녹음하려는 시도는 하지도 않을 거면서 나를 믿지 않는 억울한 상황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녹음을

해야 하나? 생각만 해 본다.


한 열흘 정도를 그렇게 지나다 보니 규칙이고 나발이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몸도 안 좋아지고 정신도 몽롱해지면서 일하는 게 느려지고 상태가 최악으로 가는 듯이 느껴지니 불안해지기까지 해진다.


이웃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다.


이제부터 범인 소탕작전 선포다.


하루빨리 범인을 잡아 시청에 신고를 해서 라도 바로잡아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들자 먼저 인터넷으로 시청 사이트에 들어가 Noise Complaint Law에 관한 정보를 찾아본다.


정확히 새벽마다 들리는 소리가 무엇인 지를 몰라 해당 사항에서 찾지는 못했지만 어떻든 소리 때문에 이웃에 방해가 될 경우 어떤 집에서 언제 무슨 소리를 내는지, 신고하는 사람의 주소나 전화번호 등 정확히 적어야 하고 그 외에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모으라고도 쓰여있다.


증빙 자료가 필요하다는 거지?

어떻게 찾지?


혹시 이민자인 나는 잘 모르지만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캐나다인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번뜩 떠오른다.

쇠뿔도 단김에...

알고 지내는 캐나다인인 그녀와 만나서 이 소리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자 "녹음했니?"부터 물어본다.

"안 했는데..."

"그럼 자동차 소리? 아니면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는 소리?" 등 자기가 상상하는 소음을 하나씩 예로 들어가며 확인을 한다.


그런 소리는 아닌 것 같고 기계음처럼 들린다고 하면서 입으로 휘파람 불듯 소리를 흉내 내 본다.

그녀는 열심히 핸드폰을 뒤지더니 자기 손녀 재울 때 며느리가 틀어놓았던 기구를 보여준다.

물소리도 나고 뭐 여러 가지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집 주변으로 앞뒤옆 다 살펴봐도 아기 있는 집은 그 집뿐이었다.

다들 20년 정도를 우리처럼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집만 작년에 이사를 왔고 어린 아들과 갓난쟁이 아이가 뒷마당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기를 재우려고 저런 소리 낸다면 도리어 아기가 깰 텐데 하면서도 그 집이 범인이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왜냐면 어느 날 그 소리를 따라 어스름한 새벽에 나름 수사를 한답시고 어느 집인지 알아보려고 창문을 열어 보았는데 문이 닫혀있을 때와는 달리 쩌렁쩌렁 내 귀를 찢는 것 같은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그 소리가 무슨 신호음을 보내는 것 같아 무섭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문을 닫았는데 문 닫고도 내 방 창문에 들릴 정도면 가까이에 있다는 뜻이고 그건 바로 옆집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이때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핸드폰아! 너 어디 있는 거니?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이라 인적조차 없어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한번 꽂히고 나니 옆집 뒷마당에 펼쳐놓은 의자나 꽃밭 모든 것이 다 범인의 도구처럼 보인다.


그녀는 시청에서 말하는 것이랑 똑같이 "되도록이면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증거자료를 모아야 한다"고도 말한다.


"정확한 소리를 알려면 녹음이 가장 좋은 방법이야"

"일단 소리가 나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어느 집에서 소리가 나는지 확인해 보고 녹음부터 해"라고 알려준다.


남편에게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하니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자기를 깨우라고 그러면 자기가 나가서 어느 집인지 확인해 보겠다고 웬일로 적극적이다.


증거확보를 하려면 룰을 깨고 어쩔 없이 침실로 핸드폰을 들고 가야 한다.

소리를 최대한 줄여 무음으로 만들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한 다음 역시 침대와는 떨어져 있도록 하기 위해서 욕실에 두고 잠을 청해 본다.


이런 번잡스러운 일들이 도리어 잠을 깨우는 것은 당연할 일이다.

잠복근무라도 하려는 건가?

간식거리도 없이 또다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새벽이 되고 그 시간이 되자 예외 없이 소리가 울린다.

남편을 깨우니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가려 한다.


아! 녹음기!~

녹음하려고 이 난리인데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다.

사실은 내가 녹음하려고 침실로 핸드폰을 들인 것인데 남편이 나가본다니 창문을 통해서 듣는 것보다 밖에서 듣는 것이 더 확실할 것 같아 남편 손에 핸드폰을 들려 보내면서 녹음하라고 말한다.


나갔다 온 남편은 옆집이 아니라고 한다.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걸 보니 저 건너 어느 집인 것 같다나?


뭐래?

내가 창문을 열었을 때 바로 옆에서 들렸다니까...

그래도 옆집은 아니란다.

또 안 믿는다.


아직까지도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다.


괴상한 소리를 내는 그 기구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 설치해 놓았을까? 


며칠씩 나를 불면의 고통에서 헤매게 한자 반드시 벌을 받게 하겠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신고할 준비를 한다.

녹음은 했으니 이제 기구만 찾으면 돼...


며칠뒤 여전히 잠을 못 잔 채 그녀와 다시 만나 증거확보를 했으니 자신 있게 녹음한 것을 들려준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듯 "오! 이소리!~"

드디어 범인이 밝혀지나요? 


"이건 새야"

"새라고?"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의외의 반응이다.

"아니 무슨 새가 새벽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리듬으로 기계음처럼 그렇게 우는데?" 했더니


그녀는 말한다.

요즘이 새들의 짝짓기 시즌이라고...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헐!~

거기다 농담을 덧붙인다.


아마 그 새가 네가 맘에 들었나 보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찾아와 "창문을 열어다오~" 노래하듯 너의 방 창가에 와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면서 구애를 외친 걸 보니...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렇다면 더욱 난감한 일이다.

"정말 새였다면 신고도 할 수가 없는 거네... 자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까.

그럼 이렇게 잠 못 자면서 어떻게 살아?" 했더니 

"그들이 짝을 찾으면 더 이상 울지 않아

이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시즌만 끝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때까지 새소리를 즐겨...

내가 다음에 이 새가 무슨 새인지 알아다 줄게."


이젠 신고도 소용없고 그놈의 짝짓기가 하루빨리 끝나기만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만 해도 설마!~~ 어떻게 새가 그런 소리를 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도 잠을 못 자다 보니 몸을 혹사라도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녀와 헤어진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비몽 사몽, 몸은 천근만근인 채로 한참을 걷고 있는데 궁금해하는 내게 알려주겠다는 듯 익숙한 그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 집에선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새들이 여러 가지 소리로 지저귀면서 날아가는데 딱 한 가지 내 귀가 반응하는 소리가 그중에 있었다.

헉! 정말 새소리였네.

이 많은 새들 중에 도대체 누구니?


범인은 바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새였다.


근데 왜 여기는 낮에 와서 울면서 우리 집은 새벽에 그 난리 법석을 피운 건대? 

꼭 그래야만 했니?


몇 날 며칠 나를 불면의 밤을 보내게 하고 새벽에 창문을 열어 다들 아직은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에 염탐하듯이 주변을 살피게 하고 남편은 자다가 무슨 죄인가? 밖으로 나가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를 탐문 수색하게 만든 이 가 옆집도 기계도 아닌 조그마한 새였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범인을 잡았으니 이제 수사는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수사종결을 선언하고 나니 마음속이긴 했지만 그동안 괜한 의심을 했던 옆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자극적이고 규칙적인 소리로 신경쇠약에 걸릴 만큼 한동안 소동을 피우더니 그녀 말대로 이제 제 짝을 찾았는지 새벽에 외쳐 대던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창가에서 짹짹짹 새들이 노래를 불러대긴 하지만 사랑을 구걸하기 위해서 목청껏 소리 높여서가 아니라 이제는 인연을 만났으니 그와 그리고 그녀와 서로 사랑을 속삭여 대는 소리인듯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이루어 낸 사랑의 결실로 귀여운 아기새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 나오겠지?

내가 저들 때문에 불면의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는 사실도 알리가 없겠지?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짝을 찾아 신호음을 보내는 시간에 다른 이들처럼 깨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면 모르고 지났을 일인데...


바람소리에도 깨는 예민함 때문에 홀로 스트레스와 잠 못 자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범인 색출(索出)에 검거(檢擧)까지 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새벽에 녹음기를 켜고 쌩쑈를 벌이듯 설쳐댄 웃을 수 없는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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