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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Apr 12. 2024

4월에도 내리는 눈

여우눈 내리는 날

분명 아침인데 어둑 컴컴하다.

해님이 늦잠을 자나?

늘 하던 대로 침구를 정리하고 세수를 마친 후 밖을 내다보니 역시나 눈이 내리고 있다.

벌써부터 봄이 점령하고 있어야 하는 계절 4월에... 그것도 함박눈이...

밤새 내렸는지 어느새 지붕을 하얗게 덮은 채로 소리 없이 내린다.




4월에 내리는 눈 

마치 영화나 드라마 제목에서나 볼 수 있듯이 로맨틱한 사랑이야기가 툭!~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안다.


제목이 건네주는 영감(靈感) 어린 장면을 위해 감독님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배경 속으로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주인공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싶을 것이다.


한겨울에 촬영을 하지 않는 한 인공눈까지 뿌려가며 최대한 낭만 가득한 풍경으로 만들어 낼 테지......


그런데 어쩌나!

드라마 속 그림과 비슷할 수는 있지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곳은 시나리오에 나오는 가상이 아닌 실존(實存)의 세계다.


어찌 4월뿐인가 5월에도 심지어 6월에도 시도 때도 없이 오락가락을 반복하니 별로 놀랍지도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우중충한 바깥세상의 우울을 가슴에 품은 채로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았는지 때를 망각한 채 내리는 눈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처연(悽然) 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눈을 기다려주던 이들의 설레는 마음이 아직도 유효할 것이라 믿고 싶은 걸까?

혹시라도 수선화처럼 자아도취에 빠져 집착 어린 자기애를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길어서 지겨웠던 겨울잔해를 깨끗이 치워내고 봄맞이에 열을 올리는 이들은 겨우내 얼어있던 꽃밭을 일구느라 한창인 데 아직까지 아쉬움 가득 품고 떠나지 못하는 그 마음은 무엇인가?


지금쯤이면 한국에선 춘삼월(春三月) 호시절(好時節)이 왔음을 알리느라 여기저기 노란 개나리와 분홍색 진달래가 곱디고운 분단장(粉丹粧) 마치고 마침내 만개(滿開)하면 너도 나도 꽃구경 간다고 도시락 싸들고 수많은 인파 속을 뚫고 다닐 텐데... 


가는 겨울과 오는 봄

이 여러 차례 팽팽한 밀당을 하고 나서야 겨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이곳은 그동안도 수차례 변덕을 부려대더니

 

어제까지는 봄이었다가 오늘은 또다시 겨울이다.


이랬다 저랬다 심술이 보통이 아닌 계절에 어느새 길들여지는 건 설혹 사람뿐은 아닌듯하다. 


따뜻한 봄기운이 돌면 이제는 봄이 오나 하면서 두꺼우니 무겁게만 느껴지는 옷을 벗어던지고 우리 모두 얇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갑자기 눈이 내리고 추워지면 화들짝 놀라 얼른 솜털옷 다시 주워 입고 행여 밖에서 불어대는 찬바람 안으로 들어올까 문을 꽁꽁 걸어 잠글 것도 같은데 계절 인지(認知) 속도가 조금 느린(?)듯한 과는 달리 꽃들은 때를 감지하는 능력이 특화되었나 보다.


우리 집보다 한걸음 빠른 앞집 사과나무에 어느새 파아란 꽃봉오리가 살짝 올라왔.


봄인 줄 알고 꽃망울을 피우다 갑자기 내린 눈에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건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순환에 어느덧 적응이 되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견뎌내면서 이쁜 꽃을 피우곤 한다.


해마다 요맘때가 되면 절로 소환되는 기억이 있다.

우리 가족이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도 4월이었다. 


그때도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낯선 곳에서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4월에 눈이 내리는 생경(生硬)한 풍경을 보면서 실제로 날씨가 추워서 인지 아니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막막함으로 먹먹해져서 인지 으슬으슬 마음에 체감되는 낮은 온도 탓에 몹시 추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 많은 것이 익숙해진 이곳에서의 삶은 지금도 여전히 춥다.


길고 긴 겨울이 지루해질 즈음 생동감 넘치는 봄이 오면 겨우내 억눌려 있던 몸과 마음이 산으로 들로 이끌리고 다시금 새로운 삶을 펼쳐보려고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뭔가 내게도 기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늘 기다리지만 막상 봄이 되면 살을 파고드는 추위가 몸을 시리게 만들고 마음을 스산하게 만든다.


옛 생각에 빠져 홀로 머릿속에서 유영(游泳)을 하며 헤매는 사이 내리는 눈 사이로 태양이 환하게 얼굴을 내민다.

여우눈인가?


보통 눈이 오는 날은 삭신이 쑤시는 고통에 찌든 얼굴로 잔뜩 찌부러져 있기 일쑤인데... 


가끔씩 해가 화창하게 빛나는 날에 뜬금없이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걸 여우비가 내린다고들  말을 한다.


하루종일 눈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아침과 다르게 갑자기 해가 반짝하고 구름사이를 밀치고 나왔는데도 눈발이 계속 날리는 걸 보니 오늘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 혹은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인가?


역시 비보다는 눈이 낫지? 여우비 대신 여우눈이다.


못내 안타까운 서운함으로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놓긴 했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음을 자각했는지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워주긴 하려는 모양이다.


영하 50도의 위력으로 칼바람까지 불며 까칠하게 굴던 기온도 한풀 꺾인 탓에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더 이상 무섭게 굴지 않는다.


오후가 되면서 내리쬐는 햇살덕에 온도가 조금 올라가니 지붕에 쌓였던 눈이 쫓겨나는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듯 땅을 향해 뚝뚝 녹아내린다.

아직은 이것이 겨울의 끝을 알리는 신호는 아닐 것이다.


가다가 또다시 뒤 돌아보며 힐끗거릴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반복되는 밀당놀이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다 보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갈 테지...

저마다 흘러가는 나름의 법칙으로...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듯이 봄은 또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테니까....


이곳에선 개나리도 진달래도 볼 수가 없지만 다른 이름을 가진 꽃들이 존재의 시간 동안 세상의 많은 변수들과 부딪혀 싸우면서 생(生)의 이유를 찾아가며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듯 자신들의 삶을 또 살아내고 있다.


머지않아 끝날 것 같지 않은 추운 겨울과 따뜻함 봄의 줄다리기...  

그 둘의 밀고 당기는 게임 놀이가 완전히 끝나면 오롯한 봄이 자리매김하러 찾아와 주겠지.


뒷마당 데크 위에 쌓여있던 눈더미 위로 비치는 해님덕에 눈이 부신다.


4월에도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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