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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as Jun 23. 2023

나는 어느 '시대정신'의 사람일까

남편은 18세기 정신

견고한 결혼에 대한 풍습이 바뀔까? 계약에 의한 만남이 아니라 사랑에 의한 결합이 시작된 때가 18세기말 이후 19세기였다고 들었다. 어느 날 남편과 드라이브 중 남편에게 물었다.


"남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결혼해?"

"대부분의 남자들이 합법적인 섹스를 할 수 있어서 결혼할걸."

"엥? 웃기는 말이네. 그건 자기 생각이지 무슨 대부분의 남자야."

"헛, 남자들이 원래 그래. 내 생각이 일반적인 거라고. 아 저 여자 멋지네, 넌 BMW안타냐?"

"뭐가 멋져? 참나, 자기 남편거 타고 왔나 보지."

"뭐? 넌 그런 생각한다는 게 수준이 낮다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자기가 샀지."

"뭐? 자기가 어떻게 알아? 딱 보니 오십대고만, 자기가 샀는지 남편이 사줬는지 물어보고 그런 소리해."


여하튼 깊은 얘기를 하려고 들면 대화는 개판이 된다. 하지만 그의 결혼관을 15년 만에 처음 들었으니 수완이 좋다. 그는 자기 얘기를 철저히 숨긴다. 그래서 알고 싶은 마음에 대화를 하려고 들면 튕겨내는 기법으로 엉뚱한 얘기로 빠지든가. 자기와 생각이 다른 걸 발견하는 순간 바보로 만들고 수준을 격하시키는 대화로 전락한다. 결혼 초에 쇼크와 분노가 왔다 갔다 했지만 어느새 무던해지고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말은 언어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라고 한다. 그들의 의도는 상대를 전복시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진정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지는 모른다. 그는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말도 했듯이 다른 사람과 동화되는 것을 매우 싫어하다 보니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상태를 순간 고백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여하튼 중세시대에 관한 책을 보다 그 사람이 중세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헉! 놀라웠다.


어떻게 개인을 찾아가는가 1500-1800, 개인의 발견, 리하르트 반 뒬멘, 현실문화연구.

대학원에 들어가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인생의 발달기에 가장 중요한 시기를 유아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손상된 자아를 확립하고 재형성하고, 유아기의 트라우마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그 실마리를 니체 연구를 통해 밝히고 싶어 입학했습니다."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절박하다는 건데..." 그 후에 비슷한 나이의 선생님께서 요즘은 자아라는 게 없지 않나? 라며 반응을 해서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가 처음 대학을 입학할 땐 플라톤의 이데아세계에 심취해 후기 철학에 대해 각인된 정신이 없었다. 현대로 넘어올수록 자아란 것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었으며, 심지어 새로 형성할 수 있다고 해서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러다가 아. 나르시시스트의 부모와 자라다 보니 완전히 동일시되어 나는 누굴까를 너무도 오랫동안 찾아 헤매면서 고정된 자아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한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여하튼 언제 나 스스로 흡족한 나에 도달할지 모르겠다. 학교는 주부생활을 하고서는 다닐 수 없어 학부 때처럼 수업 이외에 얻어낸 것이 없었다. 다시 고독한 시간만이 나를 쌓는 길이란 걸 실감하지만 여전히 느림보다. 속도는 나질 않는다. 4년을 다니며 모아놓은 책들을 이제서야 한 권씩 보다가 남편의 언어표현과 똑같은 특징을 너무도 잘 표현한 책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잘 포장된 포장지처럼 내가 다니지 못하는 회사를 다니고, 필요한 때 잘 합격하여 지금 내 앞에서 나를 잘도 무시하는 재미로 나름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여전히 나는 억울하지만, 논문들을 보다가 기록해 뒀던 책인데, 나는 내 자아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자아에 관한 서류들만 찾아보게 됐다. 교수님은 고루하시다며 다른 영역으로 보라고 했지만. 그것이 시기 적절한 때에 반드시 필요한 리더의 지도라 하는 것이지만. 난 교수님의 조언을 새겨들으려 수없이 애를 썼음에도, 교수님의 조언이 나의 정신과 무의식까지설득하못했다.

내가 발견한 책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으르면서지금의 관점으로는 억압된 사회 같지만 그 집단에서도 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작동했다는 것을 계보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이다.


남편의 언어와 너무도 똑닮은 18세기말의 정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혼인과 사랑의 관계에서 개인적 발전의 초기 단계

당시 결혼은 개인적 혹은 사적인 행동이 아닌 공적이고 사회적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 유일한 합법적 양성 간의 결합은 초기의 권력관계노동조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본질적인 네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결혼은 합법적인 성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공간이다. (호의나 사랑과 반드시 결부된 결합이 아니다.)

둘째, 성은 오로지 후세를 생산한다는데 가치가 있었다.

셋째, 반드시 감정상의 호의가 아니라 서로 신뢰와 의무를 전제로 삶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넷째, 파트너가 죽어야 종료되는 합의였다.

이때의 결혼은 삶의 공동체와 노동과정, 재산 그리고 가정의 근간을 뒤흔들지 않은 범위 내에서만 개인의 생각과 소망을 인정하는 제도였다. 이 책은 이후 19세기 초기까지에 걸쳐 결혼관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고 한다. 사회의 변화와 삶의 방식이나 도덕관, 삶에서 기대하는 요구가 변모하며 일어난 결과였다고 전하고 있다. 223-4pp.


남편은 <데미안>의 알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다. 38년생 아부지의 어머니,  자신의 친할머니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그럼 나는 뭘까? 나는 아주 어려서 4살의 기억이 있다. 그때는 1980년 5월, 우리 집은 터미널 앞이었다. 총소리가 났다. 너무 크고 무서워서 기역자로 된 집 끝. 젤 끝방에 내 밑에 1살짜리 남동생과 이불을 쓰고 숨었다. 왜 그 장면만 강하게 기억에 남는지. "숨어, 빨리 무서워 어서 숨어." 우리 아빠는 제5 공화국만 보시면 늘 화를 냈다. 염병하네. 지랄 등의 욕설을 퍼부으며 보셨다. 하루 종일 욕을 독백으로 해댔다. 난 신군부가 해체되기를 바라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자란 세대다. 그때는 중학생이었다. 우리는 담임 선생님과 교실에서 방송용 티브이 앞에 모두 앉아 당선일 발표를 듣고 서로 환호하며 울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1살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학년으로는 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그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난 수능 2차 세대다. 본고사까지 봤다. 그 2년의 시간이 우리의 정신이 이토록 다를까. 그는 3대가 함께 산 구조이고 장소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골이다. 우리 아빠는 시골일이 싫어서 도망 나오듯이 도시로 나왔다고 했다. 남편은 신분과 계층의 정신이 너무도 싫은 집안의 아들로 자란 것 같다. 그래서 사회적 계층과 신분이 싫어서 그것을 비판해 줄 제3의 종교를 선택한 집안인가. 남편은 권력을 갖되 종교의 가르침으로 결혼하지 마라는 자신의 아부지의 뜻을  따랐지만, 사회가 바뀌면서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하나의 특권이 되는 시기를 거쳤다. 어느새 가족의 내부까지 카메라가 들이대는 것이 유행인 시기를 굉장히 길게 거쳐갔다. 그즈음 그는 독신에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1년 전에 바꿨다 했다. 그리고 때가 돼서 결혼한다는 말로 잘 포장 했다. 그리고 네가 부잣집 여자가 아니기에 이혼하자고 했다. 싫으면 애 둘을 낳으라고 했다. 애 둘을 안 낳을 거면 왜 결혼했냐고 했다. 그가 여자를 하나의 노동자, 아이를 낳는 도구로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도 더러웠다. 새로운 가치를 듣는 것만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권위를 이용해 교수님의 역량을 빌어보려 했다. 이미 내 존재를 그렇게 규정한 사람에게 내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는 그에게 통하질 않을 것이므로, 하지만 그는 놀란 망아지마냥 뒷걸음치며 도망갔다. 하지만 난 아우라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내 주변에 그런 분이 있다는 제3의 눈을 그에게 보이는 작업에서의 성공이다. 우리 아빠의 존재는 그에게 무(권력없음)였기 때문에, 그가 말했듯이 '서민'은 자기보다 낮기 때문에, 그에게 나이든 어른이란 존경의 대상이 아닌것으로 그는 전혀 공경이란 것은  줄도 모르는 못난 사람이기에.


하나의 집단이 추구하는 정체성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정체성을 볼 수 있어야 하나의 정체성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는 평생가야한다.


사회는 급속도로 발전하나 '우리의 정신''하나의 집안'에 머물러 있다. 난 너무도 신기하여 교수님께 달려가 말씀드렸다. 교수님 지금 21세기인데 왜 사람들이 정신이 멎어 있어요? 누구는 18세기, 누구는 조선시대, 누구는 19세기. 왜 그래요? "다 그렇지." 라고만 말씀하셨다. 그 단순한 대답이 싫었다. 스스로 공부하라는 것으로만 들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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