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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urator Deok Jun 12. 2023

환상동물, 미술 속을 누비다

1. 미술문화 속 도깨비 스토리

어느날, 손님처럼 찾아온 귀면은 어느새 집주인이 되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된다. 기와에 새겨진 귀면문은 조선시대까지 계승되지만 이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주제는 사찰벽화와 단청 등 불교문화 속 장엄미술이다. 항상 바깥에서만 일했던 현장직 귀면이 조선시대부터는 화려한 색동옷을 차려입고 사찰 안팎을 자유로이 다니는 전문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제3화 : 조선시대 불교미술 속 귀면, 반가운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귀면문양이 새겨진 기와는 지속적으로 제작되지만 그 표현이 통일신라에 비해 더욱 화려하거나 발전하는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용 범위은 기와 이외에도 증가하는데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귀면장식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라와 고려미술에 표현되는 귀면문이 기와, 향로, 문고리 등 다소 한정적이었다면 조선시대의 경우 사찰건축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전개된다.

조선시대 불교미술에 표현된 귀면장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수미단(須彌壇)'이다. 불교 우주관의 중심에는 '수미산(須彌山, Mahāmeru)'이라는 신령스러운 산이 등장한다. '수메루(Sumeru)', '메루(Meru)'라고도 불리는 수미산은 그 높이가 팔만 유순(由旬, 1유순의 경우 현재 약 8㎞ 정도로 추정하고 있음)에 이른다고 하며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칭한다. 그 중 가장 가장 높은 꼭대기, 즉 정상에 해당하는 자리에는 부처님이 머무시는 '불국토(佛國土)'가 존재해 그 위에서 중생들을 두루 살펴보신다고 한다.

이와 같은 수미산을 형상화한 수미단은 불상을 봉안하는 '제단(祭壇)'을 뜻하며 그 시작은 본래 불상 '대좌(臺座)'였다. 그러나 시기가 흐름에 따라 법당 내부의 예배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대좌는 불상 봉안 이외에 공양물을 올리는 목적 등이 추가되고 규모도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재료 또한 석재 대신 가볍고 다루기 쉬운 목재를 사용하였고 긴 장방형의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이다. 현재 수미단은 '불단(佛壇)', '불탁(佛卓)', 탁자(卓子), '보탁(寶卓)'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그 목적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예배의 대상인 불상을 높이 모시고 받든다는 존경의 의미이다.

수미단의 귀면은 주로 하대 부분에서 확인된다. 이는 수미단이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수미산 그 자체를 표방하기에 산의 맨 밑부분을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불법 수호'(守護)'의 의미일 것이다. 청색, 황색, 적색 등 화려한 오방색으로 채색된 귀면의 모습은 통일신라 귀면을 계승하듯이 매섭고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큰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해학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는 조선후기 불교미술의 특성 중 하나로 사찰을 방문하는 신도들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웃음을 주게 하는 조선 불교계의 배려이자 포용력을 뜻한다.

이빨을 드러낸 채로 웃고 있는 귀면의 입을 보면 신령스러운 '서기(瑞氣)'를 내뿜거나 꽃이 달린 나뭇가지, 꽃봉오리 등을 물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여기서 꽃은 불교 교리에 등장하는 '육법공양(六法供養, 쌀·물·꽃·등·향·차·과일)' 중 하나로 부처님께 바치는 최고의 공양물 여섯 가지를 뜻한다. 이에 사찰에서 신도들이 수미단이나 불상에 예배를 드리면서 꽃을 바치는 행위를 '헌화공양(獻花供養)'이라고 하며, 수미단 하대에 새겨진 귀면 역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부처님께 헌화공양을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수미단의 귀면은 꽃 외에 다른 물체를 물고 있기도 하다. 약 1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산 '환성사(環城寺)' 대웅전 수미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동측면 하대에는 청색을 띈 귀면이 새겨져 있는데 고리가 3개 달린 '금강저(金剛杵)'를 물고 있다. 그렇다면 금강저를 물고 있는 귀면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는 우선, 금강저가 지닌 상징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즈라(Vajra)'라고 불리는 금강저는 본래 번개의 신 ‘제석천(帝釋天, Indra)’의 무기로 커다란 산을 파괴할 만큼 견고하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광물(鑛物)' 중 가장 단단하면서도 값비싼 '다이아몬드(Diamond)'를 '금강석(金剛石)'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도 바로 불교용어 중 하나인 금강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무튼, 제석천의 소유물이였던 금강저는 이후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갖게 되는데 이는 제석천이 부처님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바로 금강역사에게 맡겼으며 이에 따라 자신이 지니고 있던 금강저도 자연스레 인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를 보여주듯이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기록 중에는 “밀적금강(密跡金剛)이 부처님의 신력을 받아 금강저로 3업(業)을 깨끗이 닦지 못한 동자를 티끌같이 부수었다.”라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금강저는 '밀교(密敎)'라는 독특한 불교 종파의 유행으로 그 제작이 증가한다. 특히, 고려시대에 이르게 되면 실물 금강저 외에 장식문양으로도 등장한다. 이는 주로 경전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변상도(變相圖)' 주변 테두리선과 불탑에서 볼 수 있으며 불교미술은 아니지만 고려시대에만 제작되는 독특한 '고분미술(古墳美術)'인 ' 조립식 석관(組立式 石棺)'에 새겨진 '사신도(四神圖)' 외면을 감싸고 있는 사례도 보인다. 이는 금강저의 또 다른 성격으로 주변을 '결계(結戒)'하거나 봉인하는 수호의 성격을 지닌 의식구라는 것을 반영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예산 '수덕사(修德寺)' 대웅전에 봉안된 수미단의 금강저 문양 역시 주변을 결계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금강저를 문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 귀면은 기존 벽사수호의 의미를 지닌 귀면에게 금강저를 물게 하여 수미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미술에 표현된 귀면장식은 수미단뿐만이 아니라 법당 이곳저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는 대들보와 충량, 판대공, 화반, 뺄목, 공포, 도리, 창방, 평방 등 상부를 구성하는 건축 부재에 새겨진 단청벽화부터 하부에 위치한 창호와 궁창, 소맷돌 등 다양하다. 여기서, 하부에 표현된 귀면장식은 위에서 살펴본 수미단과 동일한 사례로 추정되며 상부에 위치한 귀면장식은 아마도 귀면와의 역할을 대신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단청과 벽화의 경우 기와에 비해 제작기법도 까다롭지 않을뿐더러 시간까지 단축할 수 있다. 기와를 제작하려면 재료인 흙을 조달해 정제한 후 빚고 자르고 굽는 등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 효과는 바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기와와 달리 형형색색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청과 벽화의 귀면장식은 귀면와보다 불전장엄의 효과를 몇 배 이상 누릴 수 있다. 이처럼 쉬운 제작기법과 화려한 장식에 이르기까지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사찰 속 귀면 장식은 현대에도 사용되는 중요한 불교미술 주제로 자리 잡게 된다.       

귀면와의 전통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점차 장식문양과 단청벽화로 바뀌게 되었고 이와 같은 현상은 왕실 미술에서 민간 장례 행렬에 쓰이는 ‘상여(喪輿)’의 ‘용수판(龍首板)’까지 조선미술 곳곳에 스며드는 현상을 낳게 된다. 이처럼, 우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귀면은 삿된 것은 과감히 물리치면서도 신도들에게는 포근한 미소로 안아주는 불교의 포용성과 원대한 자비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찰 속 도깨비는 한결 같다. 짖굳긴 하지만 미워할 수 없고, 슬플 때 항상 위로하는 친구 같은 존재로 말이다.착한 이에게 복을 주었고, 마음의 상처 한 부분을 미소로 치유해주는 반창고 같은 존재로 함께 했다. 이번 주말 사찰에 간다면 도깨비를 찾아보자, 어렵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변함없는 미소로 우리의 방문을 맞이하고 있으니깐 말이다.



※ 분량 실패와 사진 편집으로 인해 불교미술 속 야차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다음 글에서 마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그로(?)를 끄는 것이 절대 아님을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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