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 기술 혁신과 최초의 질문에 관한 이해를 돕는 인문학서
공교롭게도 이 책은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의해 우리나라가 선진국 지위를 받게 된 시점에 맞춰 출판되었는데요. 기업과 국가의 전략, 세계적 기술 경쟁, 금융과 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기술혁신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술경영서이자 최초의 질문에 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을 돕는 인문학서로,
저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교 이정동 교수입니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해 온 기술혁신 원리를 연구를 토대로, 혁신적 기술은 실험실이 아닌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사회 관계망 속에서 탄생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요. 전작 ≪축적의 시간≫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도약을 위한 핵심은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한 고도의 경험지식 확보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축적 방법에 관한 대안 제시로, 우리나라 기술혁신에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1장 질문이 달라졌다, 2장 기술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3장 기술 탄생의 현장에서 찾은 혁신의 원리, 4장 질문하는 사람을 찾아서, 5장 세계의 기술 경쟁을 좌우하는 최초의 질문, 6장 최초의 질문을 던지는 국가.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나라 기술의 역사를 반추하며 역사를 살피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기술혁신의 보폭과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기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질문이라는 것과 지금은 질문하는 사람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요.
특히, 196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기초를 놓기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와 아이비리그의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직장을 포기하고 돌아온 25명의 해외학술연구자들과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들은 그날의 내용을 매일 밤 모여 비교하며 허름한 호텔방에서 밤새 기록 한 <이 대리 노트>이야기는 뭉클한 감동을 안겨줍니다.
1998년 미국에서 온라인DVD대여점으로 출발해서 2007년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시한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를 소비자의 탁자 위로 가져다줄 수 없을까라는 최초의 질문을 바탕으로 발전된 인터넷 기술을 더해 탄생한 'OTT(Over-the-Top)' 서비스 넥플릭스를 통해, 기술의 미래는 인간이 던지는 최초의 질문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데요.
2011년에는 "콘텐츠를 직접 제작해 보면 어떨까?"라는 세 번째 질문에 전 세계가 열광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로 화답했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 문화 콘텐츠를 세계에 알리며 한국 영화의 세계화를 도모하게 된 예시를 통해, 보다 나은 것, 보다 편리한 것이 무엇일까를 넘어 전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최초의 질문이 기술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역설을 펼칩니다.
최초의 질문을 한 대표적 인물로 휴대 전화기 기술에 차원이 다른 경계를 만든 애플(Apple)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예로 들 수 있는데요. 2007년 맥월드 엑스포 행사에서 혁명적인 아이폰 출시를 발표하며 한 기조연설에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고 첫 발자국을 남기는 '최초의 질문자'로서 스티브 잡스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이팟, 전화기, 그리고 무선 인터넷 이것들이 이제는 서로 분리된 장치들이 아닙니다! 오늘 애플은 전화기를 재발명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스타일러스 펜 대신 우리는 세계 최고의 포인팅 기계를 사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열 개씩 가지고 태어나는 바로 그 포인트 장치, 즉 손가락입니다... 이 기술은 이미 우리가 특허를 냈습니다."[pp.168~177, 스티브 잡스의 세상을 바꾼 명연설, 미르에듀, 2011]
최초의 질문자는 화이트 스페이스에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으로, 지금은 질문하는 사람, 평생 질문할 수 있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저자 이정동 교수는 2023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교과서를 내려놓자”라는 내용의 축사를 하는데요. “교과서는 마지막 발자국은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경계 너머 새로운 발자국”은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신입생 축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교과서를 내려놓읍시다. 교과서는 앞선 이들의 마지막 발자국은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경계 너머 하얀 눈밭에 찍힌 새로운 발자국은 침묵합니다. 이제는 문제를 잘 풀고, 시키는 일을 잘 하는 사람, 타인의 세계관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욕을 먹더라도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독창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천만 조국의 미래가 아니라 80억 호모사피엔스와 지구의 미래를 고민하는, 그런 철학적 눈높이에 서야합니다.”
더불어 경제 선진국을 넘어 우리나라가 기술혁신을 통한 기술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초의 질문에 대한 자기검열이 적은 사회적 구조의 필요성을 피력하는데요. 국가가 나서 연구 개발 사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민간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과 과정에서 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밝힙니다.
저자의 주장처럼 최초의 질문으로 기술혁신을 시도하는 인재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사회적 구조는 기술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전제 조건이 아닐까 하는데요. 최초의 질문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끝으로 서평을 마무리합니다.
“성인이 된 시각에서 자기 생각만이 유일한 정답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무조건 틀렸다고 귀를 틀어막는 독선의 목소리가 온 곳에서 쟁쟁거리지 않습니까? 자신만의 철학과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진실의 일부를 담은 또 다른 주장일 수 있다는 겸양과 존경, 배려와 공감을 전제로 합니다.”[2023년 서울대학교 입학식 축사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