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 Jan 21. 2024

여행 캐리어에 담겨 날 따라온 우울

멜랑꼴리아형 우울 <잃어버린 감정을 찾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니 좋아했던 것.

해와 여행.

우울증을 진단받은 후 처음 해외에 나왔고,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감흥이 없다. 사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욕설이 머릿속을 맴돌고, 표정은 시종일관 정색. 잃어버린 과거의 나는 돌아올 생각을 않고, 그 자리를 시커먼 우울이 채웠다.



당연히 매분 매초 그러는 건 아니다. 분명히 좋은 순간들도 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스물두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평소와 비교하면 조금은 나은 날들이다. 주변의 새롭고 낯선 자극에 우울이 치고 들어올 틈새가 좁아졌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울컥울컥 치미는 우울에 숨이 턱 막힌다. 특히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계속 흘렀다. 눈물이라면 이제 지겨운데 말이다.

불안이 우세하면 비행기 추락사고가 두렵고, 우울이 우세하면 비행기가 추락하길 빌게 된다. 이번엔 후자였다.



낯설다. 원래의 나였다면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을 텐데. 너무너무 낯설다. 정말이지 지금의 나는 외관만 나다. 나머지는 다 변했다. 이건 내가 아니라고 처절하게 발악하지만 결국 무의미한 외침이었을까.



나의 우울의 다른 이름은 미안함이다. 비싼 돈 들여 외국까지 보내줬는데 즐기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내가 죽고 나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어린 나에 대한 미안함.



어떤 식으로든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