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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가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잘 만든 드라마는 이렇게나 이롭습니다.

작고 미천한 주제에 크나큰 팬심을 품고 적는 글이니 요리전쟁 글처럼 스스로를 낮추어 소인이라 칭하겠습니다.

소인, 본디 드라마에 열광하는 편이 아니나 마냥 아니라고 하기엔 그간 봐왔던 드라마가 너무 많습니다.(아.. 모순덩어리 인생이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자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안팎으로 바쁜 탓에 어느 시점이든 시청하는 드라마는 딱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낭랑 44세, 섯다로 치면 사땡에 접어든 중년..  그리 젊지도 그리 늙지도 않은 이 나이에 접어들기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봐왔으나 지금 방영 중인 <선재 업고 튀어>는 소인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기에 이 드라마가 갱년기 중년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을 해보겠습니다.


조용히 생각에 머물러야 마땅한 것을 굳이 브런치에 끄적이는 패기를 실천하는 까닭은... 소인처럼 음지에서 조용히 팬심을 보내는 수많은 중년여성들을 대변하고자...


1. 업무처리능력의 비약적인 발전

  직장과 가정을 함께 돌봐야 하는 직장맘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정신이 없습니다. 사춘기 자녀, 연로하신 부모님, 직장에선 허리역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처리하는 몸뚱이는 어느덧 갱년기에 접어들었기에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높은 이율의 복리마냥 무섭게 쌓이는 피로도에 쉬이 휘청이기 일쑤입니다. 직장에서 이미 다 고갈된 에너지로 가사일을 하다 보면 능률은 가파른 경사로를 오르는 20년 넘은 중고차마냥 급격히 떨어지는데.. 할 일은 줄지 않았으나 팬심은 무럭무럭 자라나니 퇴근 후 본방, 재방, 메이킹, 비하인드, 쇼츠까지 섭렵하기 위해 부스터 단 듯 빨라지는 업무처리속도...

'아.. 이건 마치 내 몸에 분비되지 않던 새로운 호르몬이 분비되는 느낌이구나. 설마 성장호르몬?'


2. 심폐지구력의 향상

  매 회마다 솔과 선재가 뿜어대는 청량미와 순수함, 지고지순함에 소인의 심장은 전에 없던 반응을 보였습니다. (종종 머리를 스쳤던 '설마 나 부정맥?')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쉬는 것조차 예전과 달라져서 어느 장면에서는 숨 쉬는 것도 잊게 되거나 숨을 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까지 받곤 했지요. 몸뚱이는 너무도 편하게 소파에 널브러져 있지만 마치 전신운동을 하고 있는 같은 숨 가쁜 현상..

그리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전신운동을 한 듯 나날이 심폐지구력이 향상되는 느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회차를 거듭하며 소인의 심폐지구력은 분명 향상되었습니다!  


3. 처음 맛보는 정신적 여유

  웃을 일이 있어야 웃었던 소인이! 일할 때는 미간을 찌푸려야 집중이 더 잘되었던 소인이! 머릿속 한구석에 솔이와 선재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표정이 밝아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어지간한 일에는 짜증조차 나지 않으며 하루종일 즐거운 마음을 유지합니다. 파블로프의 개는 종을 쳐야 침을 흘리는데 '종'이라는 자극이 없음에도 입가엔 미소가, 표정엔 온화함이 묻어나니 소인에게 드라마는 어떤 자극이 되었기에 이리되어 버린 걸까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젊은이의 삶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구르기 바쁜 쳇바퀴 인생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전되는 정신적 여유'를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


4. 내 안의 집요함

  소인의 성격이 집요한 것일까요? 스마트 세상이 무서운 것일까요? 시작은 <선재 업고 튀어>였지만 어느새 김혜윤배우의 <어사와 조이> 메이킹 영상과 변우석배우의 <20세기 소녀> 영화리뷰 영상을 보고 있는 소인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뿐입니까? 재방에 삼방을 거듭하며 감독님의 연출에 충격받고, 작가님의 극본에 감동받아 이제는 배우를 거쳐 감독님 인스타를 팔로우하는 중년여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작가님 인스타는 찾기 어려운 걸까요? 소인의 역량부족인지.. 작가님의 글을 눈에 담고 싶어 예스24에서 작가님 성함을 검색하는 저란 여자....


5. 미래지향적 사고로의 전환

  얼마 전 소인의 아들이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던 날, 고등학생 선재의 수수한 패션을 떠올리며 흰 반팔티에 흰 린넨셔츠, 청바지를 준비했습니다. 허나 소인의 아들은 선재가 아니었기에 눈처럼 흰 셔츠를 못마땅해했고 소인은 입맛만 다시며 그 셔츠를 옷걸이에 다시 걸어두었습니다. 목이 짧고 어깨가 두꺼운 남편을 대상으로 선재의 옷차림을 기대할 수는 없는 터... 남편과 아들에게서 선재미를 기대할 수 없으니 소인, 손주에게서 선재미를 기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ㅎㅎ(손주가 딸이라면 솔이처럼 딸기우유색 가디건, 바나나우유색 스웨터, 메로나 같은 민트색 원피스를 입혀 주기로...)


6. 약간의 후회.. 그리고 새로운 발견

   드라마를 보던 초기에는 약간의 후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남자 많은 종합대학에 가지 않고 성비가 7:3인 교대에 왔을까? 아니다. 차라리 남자들만 많은 공대를 갔다면 선재 같은 남자가 한 명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후회가 무슨 소용이랍니까? 소인은 솔이가 아닌 것을요. 김혜윤 배우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다른 드라마 메이킹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상대배우로 하여금 저절로 몰입하게 하는 최고의 연기력, 화면에 담기지 않는 수많은 스텝들에게 전해지던 밝고 싱그러운 에너지.. 특히 도깨비에서 고령의 할머니를 연기했던 그녀의 모습은 정말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고,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저런 표정과 말투가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했습니다. 선재로 시작했으나 솔이를 연기한 김혜윤 배우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7. 후회와 더불어 반성

  항상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소인인데..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경험한 것 이상으로 표현하는 김혜윤 배우를 보고서 소인은 아이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반성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대체로 자신만만한 소인 또한 아이들 지도가 힘에 부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혼을 내기도 힘들고 벌을 주기도 힘든 요즘 환경에서 오로지 '입'으로만 수십의 아이들을 지도하자니 가끔 현타가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런 소인에게 '입'다음의 주요 무기가 '눈'인데,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에게는 '내 이 두 눈으로 일곱 빛깔 무지개 광선을 쏘아주겠다!'는 다짐으로 눈에 힘을 빡! 주고 지도하기도 합니다.(오해 마십시오. 소인의 눈은 10시 10분 또는 8시 20분 그 언저리라 힘을 준 들 사납지 않습니다.ㅠ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지칠 대로 지친 눈을 쉬게 해 준 드라마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였습니다. 선재나 솔의 모습도 그러하지만 영상미가 너무 아름답고 건전한 이성교제의 교과서다운 모습은 20년 넘은 꼰대교사가 보기에도 어려움이 없었지요.

  하지만 드라마에 빠지면서 김혜윤 배우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겼습니다. 배역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소인을 뒤돌아보게 했거든요. 그녀의 연기인생만큼 제 교직경력도 쌓였을진대.. 이제 별 효과 없는 레이저를 쏘는 대신 조금 더 밝고 깊은 시야로 아이들과 주변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 마지막.. 감사의 인사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로 인해 얻게 되는 소중한 기억은 소인의 가장 하찮은 기억부터 사라지게 함을 느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인에게는 그 시간이 주로 10대 말~ 20대 중반이었고 이 드라마를 통해 내게서는 사라진 그 시간을 대리경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혜윤 배우님을 염두에 두고 집필해 주신 작가님 감사하고, 섬세한 감정연기가 고스란히 실현되도록 디렉팅 해주신 감독님 감사하고, 중년 여성들 마음에 불 지른 선재역을 잘 소화해 주신 변우석 배우님 감사하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김혜윤 배우님! 존경합니다!


소인, 언젠가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선재가 되고, 솔이가 되고, 감독님이 되고, 작가님이 될 수도 있으니..

주접 그만 떨고 열심히 업을 닦겠습니다. 그럼 이만..ㅎㅎㅎ


결론.. 잘 만든 드라마는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이롭습니다. 공짜로 봐도 되나 싶을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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