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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Oct 04. 2024

스타벅스에도 불륜은 있다.

애증의 스타벅스

나는 스타벅스를 사랑한다.

이게 웬 뜬금없는 고백이냐.


스타벅스를 좋아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된장녀 보듯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된장녀는 아니지만 진실로 스타벅스를 좋아한다.

스타벅스의 이념 철학이나 커피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좋다거나,

스타벅스 MD가 좋아서 그것들을 사 모은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첫째,  스타벅스의 아아를 좋아한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원두를 조금 태운 듯한 맛이 나는데, 그 딱 때리는 원두의 쓰고 꼬소한 맛이 좋다.

한 모금 빨대로 쭉 들이키는 순간 '아! 이것이 카페인이지!' 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산미가 있는 원두는 내 취향이 아니다. 다크 로스팅 취향이다.

나는 커피에 대해 잘 모르고, 스타벅스 아메리카노가 어느 원두를 쓰는지, 얼마나 로스팅을 하는지는 더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쓰고 꼬소한 그 맛은 로스팅을 많이 한 이라는 것 안다.

원산지나 품종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카오 자체가 커피나무의 열매이기 때문에 산미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커피 본연의 맛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로스팅을 짧게 하면 산미가 느껴지고, 스팅을 많이 할수록 내가 좋아하는 다크한 꼬소한 맛이 나는 것이다.

참, 그런데 로스팅을 짧게 할수록 즉 산미가 많을수록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의 파괴가 적기 때문에 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산미 없는 다크 로스팅이 좋다. 스벅의 아아처럼.


둘째, 스타벅스의 '아무도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유독 스타벅스에는 카공족이 많은 듯하다.

카공족을 두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은 가운데, 조금은 예외로 비껴두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스타벅스 매장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

물론 뉴스에 나올 법한 행동들은 정말 문제가 되니 나오는 것이고, 사실 내가 다니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그런 민폐 행동을 보지는 못했다.

노트북을 켜고 나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도, 이어폰을 끼고 인강을 듣는 사람들도, 책을 보는 사람들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사람들도, 연인끼리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사람들도 모두 자기들 할 일에 바쁘다.

그래서 혼자 책을 읽거나 이렇게 글을 쓸 때는 집 근처 스타벅스 매장을 종종 찾곤 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창가 자리의 높다란 좌석을 선호하는데, 책을 보거나 글을 쓰다 종종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보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다.

한 시간 뒤에 아이를 픽업 가야 하고, 장을 봐야 하는 주제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스타벅스의 로고가 참 예쁘다.

'스타벅스'라는 이름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의 등장인물인 스타벅(피쿼드 호의 커피를 사랑한 일등 항해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내 취향은 아니라 못 읽었던 '모비 딕'을 이 글을 쓰기 위해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로고의 주인공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인어로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여 죽게 하는 인어이다.

스타벅스는 세이렌처럼 사람들을 커피에 홀리겠다는 것 같은데,

로고 속에서 '세이렌'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로고에 홀려 나도 모르게 스타벅스로 발걸음이 옮겨가는 것 보면,

나는,

제대로 홀렸다.

역시 나는 '스토리텔링'에 약한 사람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과 노래로 사람을 홀리는 인어 '세이렌'이라니.

이 매혹적인 유혹에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로고 속 세이렌의 초록초록한 모습은 싱그러운 잔디가 연상되어 그 유혹에 홀딱 빠져도 그다지 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오히려 편안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나는 스타벅스를 증오한다.

사랑한다고 했다가 증오한다고 했다가 이게 웬 또라이란 말인가.


나는 커피를 좋아한.

(초코와 커피와 책과 음악의 시간)

전남편은 나보다 더 커피를 좋아했고, 1번 상간녀도 커피를 좋아했다.

그리고 둘은 스타벅스를 좋아했다.


첫 번째 외도 후 발견된 전남편과 1번 상간녀가 주고받은 여러 물건들(겨우 두 달이었던 불륜-그들은 연애라고 부르겠지만- 기간 중 주고받은 물건들이 커플링 포함 많고도 많더라.) 중 스타벅스 다이어리와 스타벅스 보온병이 있었다.

그것들을 트렁크에 고이고이 모셔두고 다니다 걸렸다. 트렁크를 열었는데 내가 준 에코백 한가득 1번 상간녀와 주고받은 선물들이 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그전에도 나와 전남편이 좋아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다이어리이기 때문, 전남편이 좋아하는 이유는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두 달 남짓의 그들의 불륜 기간은 스타벅스 다이어리 시즌과 겹쳤고, 트렁크에서 발견된 다이어리에는 해가 넘어가면 돌아올 1번 상간녀의 생일과, 쭉~~ 넘겨 그들의 1주년 기념일이 적혀 있었다.


텀블러에 있어서 나는 기능 좋은 거 하나면 된다는 입장이었고, 그것이 스타벅스든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전남편은 결혼 전에 사놨던 스타벅스 텀블러가 많았는데, 예쁜 게 나오면 또 사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전남편은 여기 멀쩡한 텀블러들이 있는데 왜 또 사냐며 내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 엄마도 아니고, 얼마나 싫었을까.)

1번 상간녀가 일본 여행 기념으로 사 왔던 스타벅스 보온병은 일본 지역 한정 보온병이었다.

그 좋아하는 스타벅스 보온병을 쓰지도 못하고 트렁크에 모셔두고 다녔다니.

심지어 박스 안에, 더스트백 안에, 고이고이 포장된 채로.

얼마나 쓰고 싶었을까.


다이어리든 텀블러든 모두 내다 버리고 싶었고,

내 기억 속에서 몽땅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 내다 버리지도, 몽땅 지우지도 못했다.

이후 상간녀 소송과, 소송 취하가 있었고, 전남편과 나는 상처들을 꿰매며 잘(?) 지냈다.

그러다 전남편의 두 번째 외도가 시작되었다.

1번 상간녀를 다시 만난 것이다.


다시 만난 그들은 여전히 스타벅스도 좋아했고, 다른 카페들도 좋아했다.

그들의 두 번째 외도 기간 동안, 그들은 1번 상간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벅스보다 맛있는 커피 찾기'라는 명목 하에 분위기 좋은 핫플 카페들을 두루두루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의 두 번째 외도 기간 동안,

전남편의 차에는 스타벅스 냅킨이 가득했고, 스타벅스 요거트 병이 나뒹굴었고,

스타벅스 단백질 셰이크 등이 있었다.

스타벅스 별도 모으지 않으면서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생겼다고 들고 왔으며,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노트북 가방을 둘이 커플로 하기도 했으며,

옷장 깊숙한 곳에 스타벅스 싱잉 랜턴을 신문지로 꽁꽁 싸서 넣어놓기도 했다.

나한테 들킬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그들의 추억이 담긴 스타벅스.


이러니,

내가 스타벅스를 어찌 증오하지 않을 수 있냐는 말이다.



전남편과 이혼했다.

나는 여전히 스타벅스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한다.


애증의 스타벅스.


오늘도 이 애증의 스타벅스에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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