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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Sep 27. 2024

댕댕아, 그알?(그날들의 진실을 알고 있니?)

완벽한 진실에 대하여.

가끔 그날들의 완벽한 진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내 앞에 펼쳐진 빼박 증거 외에,

나를 속여 온 수많은 날들 속에 숨겨진,

내가 갖고 있는 정황 증거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또 다른 빼박 증거들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제와,

그런 것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런 건 내가 오해했던 거구나.

아 그런 건 진짜 나를 속인 거였구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이었는지.

해서, 명확하게 선을 그어 정리를 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집 댕댕이를 바라본다.


댕댕아,

너는,

다 알고 있지 않니?

왜,

말을 못 하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르던 동글이를 위해, 4년 전,

롱다리 댕댕이를 데려왔다.

처음 봤을 때부터 롱다리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사슴을 닮아 예쁘다 생각했다.


생명체를 키운다는 건, 동글이 외에 처음이었다.

안는 것조차 어색했던 댕댕이가 이제 내 옆에 엉덩이를 착 붙이고 잔다.

댕댕이는 동글이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동생이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집을 댕댕이는 혼자 잠을 자며 지켰을 터였다.


나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업인 반면,

전남편의 전 회사는 외근이 잦아 출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했고,

평일 외도를 즐기기에는 그만한 직장도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정황 증거들 속에 의심만 키워가던 두 번째 외도였다.

빼박 증거를 잡았을 땐, 이미 내 마음이 전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빼박 증거는, 그날 그날, 당일의 증거일 뿐,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

언제가 끝이었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댕댕이는 집에 있으며,

전남편이 1번 상간녀와 했을 통화를 들었을 것이고,

전남편이 1번 상간녀를 만나러 나가는 설레는 외출을 봤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전남편의 빼박 증거를 들고,

부들부들 떨며 주저앉아 우는 내 옆에

댕댕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와 다소곳이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끝날 때까지,

내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켜주었다.

(평소에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 내 옆을 후다닥 달아나며, 제 살 길만 모색하여, 주인을 지켜줄 수는 없는 강아지구나! 했던 댕댕이가 말이다.)


전남편과 함께 지낼 때,

댕댕이를 보며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었다.

"강아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글쎄, 밥 먹고 싶다, 지루하다, 주인은 언제 오지? 뭐 이런 생각?"

"궁금하다.. 강아지들은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강아지들은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가끔 일요일 아침에 하는 '동물농장'을 보는데,

자신을 버리고 간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들 이야기가 나오면,

나와 동글이는 댕댕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린다.

자주 산책해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우리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더 잘해 줄게! 다짐하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누군지는 알고,

주인의 감정을 살피고,

주인의 감정에 자신만의 데이터에 따라 대응함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내 곁을 지켜 준 것을 보면 확실하다.


전남편은 강아지를 좋아했고 전시어머니는 강아지를 싫어했다.

어릴 때 강아지를 몇 마리 키우다 시골에 데려다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댕댕이를 데려오고 1년쯤 뒤에, 1번 상간녀도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고,

그 집 강아지 미용을 맡기는 곳과, 우리 집 댕댕이 미용을 맡기는 곳 이름을 헷갈려하여

내게 잘못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2번 상간녀 역시 강아지를 여러 마리 키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집 댕댕이는 소파에도 못 올라오게 했으면서,

그 집 강아지는 소파 위에 올라와 다리 사이에 끼고 있기도 하고, 안고 사진도 찍더라.

이 사진을 보고 묘한 기분을 느꼈는데,

마치, 우리 집 자식과 그 집 자식을 차별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라니,  별일이다.)




댕댕이라고,

그날들의 진실을 모두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

드러나지 않은 다른 진실을 궁금해할 것이다.


결국,

모든 진실을 완벽히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이 세계가 하나의 완벽하게 짜인 '가상 세계'라서 이 세계의 데이터가 어딘가에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되 저장되어 있다면 몰라도.


중단된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는 '세상에 완벽한 거짓은 없다. 완전한 진실만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세상에는 완벽한 거짓도, 완전한 진실도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실'이라는 게 결국 Fact인데,

그 Fact는 기술하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왜곡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댕댕아, 너는 그날들의 진실을 알고 있니?"라는,

그날들의 진실을 궁금해하는 나의 의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된다.


무의미한 것들을 궁금해했다니,

아, 이제 궁금해하는 것도 그만둬야겠다.

(다짐하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다.)


과거에서 얻을 것이 있다면 모를까.

과거는 과거일 뿐.

나는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며 살아가야 하기에.


(+) 반드시 진실 규명이 필요한 일들도 있습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은, 반드시 확실하게 밝혀 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공익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들이 그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진실 규명이 필요하고, 반성이 필요하고, 대응책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잊지 않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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