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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문득 달
Sep 20. 2024
Happy 이혼기념일
별다르게 빛나는 나를 기념하는 날
이혼기념일이 생겼다.
이혼이 기념할 일이냐고, 그런 날은 잊으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다.
기념할 일이며, 잊지 않을 날이다.
결혼기념일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
전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보다 더
빛나는 날이다.
비로소 '나'를 바로 보고 바로 서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1년 전 오늘.
(발행일과 차이가 있는 9월의 어느 날)
나와 전남편은 이제 진짜 서류상으로도 '남/남'이 되었다.
이혼 서류를 제출한 지 4개월 만이었다.
이혼 서류를 제출하고,
아무 의미 없는 일회성 상담을 받
았
고,
확정기일에 판사 앞에서 양육비와 면접교섭에 대한 확인을 받
았
고,
판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혼을 선언했다.
내 앞으로 그리고 뒤로 줄줄이 몇 쌍의 (구) 커플이 이혼을 선고받았다.
이혼판결문을 들고 근처 구청으로 가서 바로 이혼 신고를 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전남편은 상간녀가 있었고, 나는 마음이 없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전남편
과
커피 한 잔을 함께 했다.
카페 안은 사람이 많아 시끄러웠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아직은 더운 거리로 나왔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얘기했다.
나 사실은 다 알고 있었노라고.
2번 상간녀랑 만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노라고.
전남편은
어떻게 알았냐 물었다.
나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얘기했다.
얼마나 연습한 말이었는지 모른다.
그 사실을 알기 전에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고
,
주말부부로
라도
지내고 싶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외도를 하고,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당신에게 실망했
고, 그래서 이혼하는 거라 했다.
나는.
그리고.
2번 상간녀와 만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다.
동글이에게 상처만 주지 말라고 했다.
혹여나,
나중에,
2번 상간녀와 마음이 깊어져 결혼을 하게 되면,
그땐 동글이에게 당신이 받은 상처와 같은 상처 따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만약 동글이가 그런 상처를 받게 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경고도 했다.
전남편은 여전히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궁금해했고,
부정한 방법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며,
상간녀 소송 따위의 에너지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 붙들어 매라고,
전남편을 한껏 비웃으며 얘기했다.
나는,
정말이지,
상간녀 소송 따위의 몇 푼 안 되는 소송에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
나는.
전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 가족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옆에 있어주었기에 고마웠다고 했다.
눈이 미친 듯이 쏟아지던 아빠의 수술날,
서울-광주 왕복 12시간 넘게 목숨 걸고 운전해 준 그날.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우리 가족 모두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힘든 고비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전남편은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전남편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난다며 울었다.
동글이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
리던,
아빠가 미안하다며 동글이를 안고 울었던,
셋이 부둥켜안고 울고는
2번 상간녀와 대부도를 갔던
,
그날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나는 알 것 같았는데, 전남편은 몰랐다.
첫 번째 외도 이후
,
전남편은 줄곧 이혼을 생각했을 것이다.
원활한 두 번째 외도를 위해,
전남편은
위장이혼처럼 서류만 정리하고 함께 살자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었고,
나는 이혼하지 않을 거라 버텼고,
1번 상간녀에게 새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
렇게
두 번째 외도
가 지나갔다
.
집안 상황으로부터의 도피처로 택한
세 번째 외도를 하며 엉겁결에 이혼을 얘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2번 상간녀는 징징대 질렸고, 나는 다 받아주니,
은근슬쩍 들어오면 내가 못 이기는 척 받아줄 줄 알았나 보다.
이혼을 얘기하고
나서도 전남편은 나의 몸과 마음을 원했고, 나는 그런 전남편에게 질렸다.
내가 매달리지 않고, 냉정하게 이혼을 결정했다는 사실에 "진짜구나."싶었나 보다.
막상 진짜 이혼을 하고 보니, 현타가 왔나 보다.
오랜 기간 서로를 알고 지냈고,
한
번의 헤어짐 이후 더욱 단단해진 만남이라 여기고 결혼을 선택했으며,
10년의 결혼생활을 이어왔다.
아이를 낳아 키우며 미운 정 고운 정든
'가족'이었다.
10년 동안 사위였으니, 목숨 걸고 그날의 운전을 감행했던 것이었다.
나와의 세월보다는
그간의 내 부모와의 정이 전남편을 울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날의 고생을 '우리 가족이 모두 고마워하고 있어.'라는 말로 보상받아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배설적 글쓰기를 힐난하며 전남편은,
친정엄마가 사위 걱정에 추어탕 싸주고 그런 얘기는 쓰고,
왜 자신이 친정아빠를 위해 그날 목숨 걸고 운전한 얘기는 안 쓰냐고 했었다.
그래서 그 부분 고마워하고 있다고 얘기했더니,
그냥 고마워하고 있으면 다냐고 했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자신은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그냥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했었는데,
그래서 조금은 서러웠는데,
이혼신고가 꽝꽝꽝! 되던 날, 전 와이프가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해주어,
그 보상이 더 극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로 전남편은 울었고,
나는 동글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야 했다.
"나 먼저 갈게. 여기서 더 울다 가든지, 차에 가서 울든지. 다 울고 정신 차려서 운전
조심해서
가."
우는 전남편을 뒤로하고,
내 앞에 펼쳐진 아직 더운 눈부신 여름 햇살을 가르며 내 갈 길 갔다.
며칠 후 주말,
전남편은 시부모님께 이혼 소식을 알렸고,
나 역시 친정엄마와 동글이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다.
혼돈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근길,
전남편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께서 많이 우셨다고, 자신이 나약한 건지 이기적인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의 결정이 잘한 건지 모르겠다고.
그날 오후, 다시 전남편과 통화를 했다.
전남편은 동글이가 받을 손가락질이 두려워, 우리의 결정을 재고해 보자 했지만,
그 제안에 외도에 대한 사과나 앞으로의 다짐 따위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나는 사과와 다짐을 요구했지만,
전남편은 그런 게 말로 꼭 필요하냐고,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게 되지 않겠냐고,
또 두루뭉술 은근슬쩍 권법을 사용했다.
또 통할 줄 알았나 보다.
나는 철벽을 쳤다.
외도에 대한 이야기, 즉 , 우리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채,
아이를 위해 다시 시작하는 건, 싫다고 했다.
내가 동글이 손가락질받지 않게 잘 키우겠다고 했다.
누군가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그런 것에 주눅 들지 않게 잘 키우겠다고 했다.
전남편은 만약 동글이가 그런 일에 상처를 받는다면, 나를 원망하게 될 거라는 말을 했다.
끝나지 않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나는
전화를 끊기를 원했고,
전남편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게 생각의 기회를 주는 척, 책임을 전가하는 권법을 시행했다.
그래도 동글이를 위해 재고해 보았다.
역시나 아니었다.
나는 부부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
하다
고 믿는다.
부부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는 알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전남편과 행복할 수가 없다.
나는 장문의 카톡을 보내 내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했고,
전남편에게 기가 막힌 답이 왔다.
이제 이혼을 결정한 건
나
라고.
자신이
기회를 주었는데,
내
가 거절한 거라고.
나
의 결정에 후회가 없길 바란다고.
미안했다고.
나도
동글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책임전가.
를 완벽하게 보여주며 빠져나갈 구멍을 열심히 파 놓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나는 이혼기념일 1주년에,
나를 위한 작은 파티를 하고 싶었다.
자그마한 케이크를 사서 와인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피곤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하고 잠이나 잤다.
별다를 것 없는 이혼기념일 1주년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비로소 '나'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이 그냥 '나'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별다를 것 없는 이혼기념일을 맞이하겠지만,
나는 별다르게 빛나는 '나'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나'는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이다.
그 빛은 내가 '나'일 때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1년 전 오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그리하여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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