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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달 Sep 06. 2024

초코와 커피와 책과 음악의 시간

나만을 위한 위로가 필요한 시간

육각형 인간이 되기 위해 애를 쓰다가 '나'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었다.

(육각형 인간은 없다.)


그리하여 '나'를 되찾기로 했다.


나만을 위한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다.



학기 초 과목 소개와 더불어 나는 '나'를 소개한다.

교사로서의 나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진짜 '나'를 소개하기도 한다.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나'를 위로하는 것들이다.


인생에서 누구나 스트레스의 순간은 한번 이상 찾아오기 마련이고,

내가 가르치는 중2는

하기 싫은 공부에, 부모님 잔소리에, 정글같은 학교 생활에, 교우관계에...

안그래도 예민하고 감수성 터지는 사춘기 시절을 더 불타오르게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고민하고 버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는 방법.

다른 말로 나를 위로하는 방법.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건강한 방어기제이다.

무운 작가의 <마음 방울 채집> 중


오로지 나를 위한 마음, 내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다.


나는.


1. 초콜릿을 꺼내어 한 입 베어 문다.


초콜릿은 마법이다.

초콜릿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눈을 감는다.

초콜릿이 녹아 입 안에 달콤달콤함이 퍼지면, 마음에도 달콤함이 퍼진다.

한결 여유로워진다.

화도 조금은 누그러지고, 짜증도 가라앉고, 우울함도 걷힌다.

이 달달한 기분으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가 된다.


올해 초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초콜릿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세계에서 초콜릿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출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초콜릿 소비하는 나라,  수출 1위 그리고 수입 1위 국가는? 초콜릿 소비가 많을 수록 행복하다?|작성자 펜잡이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2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스위스, 그다음은 미국이었다!

스위스는 세계적인 낙농업국가로 신선한 우유가 나오니, 맛있는 초콜릿이 많아 그만큼 초콜릿 소비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스위스의 유명한 초콜릿들유통기한이 짧은데, 우유의 신선도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스위스에 가서 초콜릿을 먹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초콜릿이라 할지라도 맛이 다르다고 한다.

(언젠가는 가서 꼭 먹어봐야겠다!)


우리나라는 농식품부의 2017년 기준, 국민 1인당 초콜릿 소비량이 연간 670g으로 스위스의 11.8kg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양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2017년, 스위스는 2022년 기준이기는 하나, 그 양이 적은 건 사실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더!

23년 세계행복지수 출처:visualcapitalist.com  [출처] 세계에서 가장 많이 초콜릿 소비하는 나라,  수출 1위 그리고 수입 1위 국가는? 초콜릿 소비가 많을

2023년 나라별 행복지수인데,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와 미국 등 초콜릿 소비가 높은 나라가 행복지수도 높았다.

우리나라도 6.0으로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나는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초콜릿을 먹고 행복해져야겠다.


이 흥미로운 사실로,

동글이와 나는 초콜릿을 먹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잠깐, TMI로 취향을 밝히자면,

동글이는 초코만 있는 초콜릿을 좋아하고, 나는 크런치한 초콜릿을 좋아한다.


2. 커피를 내린다.


주로 아아, 아주 추운 겨울에는 뜨아도 좋다.

가끔 당과 카페인의 동시 충전이 필요할 땐 바닐라 라테, 마끼아또 도 좋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중독된 건 아니고, 그냥 하루 한 잔, 출근해서 마시는 아침의 루틴 정도인데,

마시지 않아도 하루를 보내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땐 찾는 편이다.


내가 커피를 마시게 된 건 전남편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스물셋.

인생의 쓴 맛을 몰랐던 그때.


강남의 투썸 플레이스에서 전남편을 처음 만났다.

전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나는 딸기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전남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궁금해서 한 모금 마셨고,

나는 써서 이런 걸 왜 마시냐며 인상을 찌푸렸고,

그런 내가 귀여웠는지 전남편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후 데이트마다 전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나는 어린이 같은 딸기 프라푸치노를 떼고 달디 단 캐러멜 마끼아또에 입문했다.

그런데 그 달디 단 캐러멜 마끼아또는 비쌌다.

게다가 너무 달아서 몇 모금 마시면 더 마실 수가 없었다.

학생이었던 우리는 돈이 없었고,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것이

지금 내가 아아를 좋아하게 된 시초였다


참, 별 것 아닌 역사네.

내 커피의 역사가.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커피를 찾는 이유는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있겠지만, 커피 원두의 향 때문이다.

커피콩을 갈면 더욱 좋겠지만, 주로 분쇄된 커피를 사는 편이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면,

커피가루에 보글보글 거품이 생기며, 커피 향이 솔솔 난다.

그때의 그 사랑스러운 기분은,

내가 마치 커피 cf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커피 향을 맡으면,

커다란 유리 통창 앞에 초록초록한 잔디가 펼쳐져 있고,

나는 살랑바람에 날리는 샤랄라 원피스를 입고,

한 손에 심플한 커피잔을 들고 서 있다.


크!


그러나 현실은,

교무실.

혹은 식기 가득한 우리 집 주방.

혹은 시끌벅적한 카페.


그래도 잠시나마, 그런 기분이 되면, 현실의 고민쯤은 잠깐 잊게 된다.

위로받는다.


3. 우아하게 책을 읽는다.


나의 독서는 주로 현실도피형 독서이다.

요즘은 마치 활자중독처럼 무엇이든 읽어제끼고 있다.


언젠가 이혼 선배인 M이 물었다.

"언니는 스트레스받으면 뭐 해?"

"음.. 나는.. 커피 마시면서 책 읽거나, 초콜릿 먹으면서 책 읽거나, 음악 들으면서 책 읽거나.. 그래."

"헐.. 언니, 너무 고상하고 우아한 거 아니야?

어쨌든 다 책으로 연결되네!

언니는 진짜 심수련(한참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재밌게 본 M이었다. 외모가 심수련이라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같아~

나는 게임하면서 욕 한 바가지 해야 풀리던데!"


스트레스받으면 책을 읽는 것이 고상하고 우아한 것일까?

(그 말을 들은 뒤로 더 고상하고 더 우아하게 책을 읽으려고 해 봤다는 건 안 비밀이다. ㅎㅎ)

책과 친하지 않다는 M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밤새 수학 문제를 푸신다는 수학쌤을 내가 신기하게 보았듯.


언제부터 위로가 필요할 때 책을 읽었을까?

아주 어릴 때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한참 뛰어놀아야 할 때 집에서 조용히 책만 읽고 있었던 나를 엄마는 걱정했다고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입시 위주의 공부로 인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하에 읽지 않았다.

솔직히 그때 읽어야 했던 책들(입시에 도움이 되는 고전 종류..)은 재미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다시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가,

본격적으로  현실도피형 독서를 시작했던 때는..

전남편의 첫 번째 외도 이후였다.

워킹맘으로 두 돌이 갓 지난 동글이와 함께 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만한 여가 생활은 많지 않았다.

일을 하다 잠깐 짬이 났을 때,  

동글이를 재우고 나서 회식, 친구 모임, 혹은 외도로 늦는 전남편을 기다리며 책을 읽었다.

주로 소설을 (주로 청소년 성장 소설-요즘 성장 소설은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다. 직업 특성상 필요하기도 해서 많이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독서 수준은 딱 그 수준에 멈춰있는 듯도 하다.) 읽으며 그 속에 폭 빠져서 현실 따위는 잊었다.


그렇게 현실도피형 소설 독서를 하다가, '나'를 알기 위한 독서가 필요해졌다.


전남편의 두 번째 외도를 알고, 나는 더 이상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졌다.

엄마가 행복한 육아가 하고 싶었다.

그 무렵 우연찮게 동네 언니에게서 좋은 육아 서적을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고, 그것을 토대로 '나'를 알아가는 육아 서적들을 읽었다.

육아 서적이라고 하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해 나와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읽은 책들은 아이를 위해 '내가' 어떻게 바로 서야 하는지를 더 강조하는 책들이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고,

어떤 연유로 인해 전남편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았고,

그것이 순서가 뒤바뀐, 주객이 전도된 선택이었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바로 서야 하는지도 알았다.

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나의 육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남편의 세 번째 외도가 있었고, 나는 이혼을 했다.

이혼을 결정하면서도 나는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전남편은 결정을 재촉했고, 나는 결정을 미뤘다.

나는 생각하는 속도도, 결정하는 속도도 느린 사람이다.

성급한 결정은 후회를 낳는다.

감정에 떠밀린 결정은 화를 부른다.

그래서 다시 현실도피형 독서를 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책을 읽는 동안은 다 잊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과목 특성상 '독서'라는 수업이 주어지는데,

이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

신기하게도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학생들도 모두 숨죽여 책에 폭 빠진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미친 듯이 책을 읽어 내려간 시간 동안,

요동치던 내 마음은 고요해졌고,

신기하게도 모든 결정들이 순서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혼란스럽지 않았다.

평온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틈틈이 읽어 내려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펼쳐 들었다.


4.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이건,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위로 방법일 듯하다.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

기타에 조예가 깊은 아빠를 닮기도 했고,

흥이 많은 엄마를 닮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음악을 전공한 전남편의 감수성과 코드가 맞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장르를 가리지도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와 함께 주황색 풍선을 흔들며 '신화창조!'를 외치기도 했고,

입시 스트레스로 미쳐가던 고3 때는 '이브', 'YB', '체리필터' 등 락밴드 음악을 들으며, 그 주황색 풍선을 함께 흔들던 친구와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열아홉에 인생이라니. 풉. 귀엽다.)

음악을 전공한 전남편을 만나서는 알지도 못하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아무래도 난 잘 모르겠다 했다.

음악을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임용을 준비하던 고시생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시경오빠의 '잘 자요'를 들으며 독서실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는데,

그 시경오빠의 라디오 '푸른 밤'에는 새벽 감성에 맞는 잔잔한 노래들이 많이 나왔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다이어리에 얼른 메모해 두곤 했는데,

그 갬성이 지금의 나의 취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즘 이용하는 건, 유튭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유튭에 '새벽 감성', '드라이브하기 좋은 노래', '아침에 듣기 좋은 노래' 등 검색하면 누군가가 짜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따라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그 누군가인 유튜버로 인해 오늘도 갬성 충전이다.

학교 독서 시간이나, 시험기간 직전의 자습 시간 등에 학생들 졸지 말라고 BGM를 깔아주는데 학생들이 자주 묻는다.

"오! 쌤! 이 노래 뭐예요? 쌤 선곡이 왜케 좋아요?"

"이거? 내 선곡 아니고, 이 분(전자칠판 화면을 가리키며) 선곡이야."

(유튜버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요즘은 아침에 날씨가 제법 선선해서

강아지 산책시키기에 정말 좋은데,

이어폰 꽂고 강아지와 함께 달리면,

오늘 하루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자기 전,

이어폰 귀에 꽂고 새벽 감성 노래들을 들으면서,

문득 창밖의 달을 바라보노라면,

이 밤이 온전히 내 것인 양 마음이 가득 찬다.


또 잠깐, TMI로 요즘 꽂힌 곡은

elon의 monster이다.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와 귀에 탁 꽂히는 멜로디에 몽글몽글 갬성을 파고드는 가사까지 삼박자가 찰떡궁합이다.



이 네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은, 그러니까, 내게는 거의 황홀경이다.

주된 활동은 독서일 것이고,

독서를 위한 준비로 커피가 올 것이고,

잠깐잠깐 달콤함의 요소로 초코와 음악이 들어갈 수 있다.



초코와 커피와 책과 음악의 시간.

지친 나를 위한, 나만을 위한 위로가 되는 시간을 가졌다.

좋아졌다.

돌봄도, 교육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앗,

큰일이다.


초코와 커피와 책과 음악의 시간을 알아버리면 진짜 '나'의 정체를 아는 이들이 많아질 텐데 말이다.


(+) 나는 꽃도, 예쁜 하늘도, 향기도, 요가도, 피아노도 좋아한다.

위로가 되는 것들은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언제 어디에서 위로가 필요할지 모르니, 적재적소에 꺼내어 사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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