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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Nov 25. 2023

애사심은 비롯되어

3. 일을 위하여

요즘 같은 시대에 애사심은 다소 조심스러운 단어이다.

애사심을 가진다는 것을 유난으로 느끼는 구성원도 보았고, 크게는 강요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동료도 있었다.

애사심을 가질 수 없게 만들면서, 애사심을 가지라니! 쯧! 이런 말하는 사람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일반 회사생활 경력이 전부였던 20대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기업의 영업부서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지만, 당시에 나는 사무직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하였고, 면접을 볼 때서야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3차 임원 면접까지 엉겁결에 최종합격을 하고 나서도 계속 고민이 되었지만, 나름 탄탄한 기업이라 한 번 다녀보고 결정하자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서 입사했다.

규모가 꽤 큰 회사라 그런지, 입사 100일쯤 되는 전 부서 신입들을 모아서 방향성을 잡아주고 애사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미팅에 여러 차례 불려 다녀야 했다.


엔지니어부터 서비스직까지 다양한 부서의 신입들이 모여있는 공간에서 쭉 그들을 둘러보면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심드렁한 자세로 앉아있다가 흥미로운 주제가 나왔을 때만 약간의 참여를 했고, 다 큰 성인들을 대상으로 무슨 학교놀이냐는 태도라서 진행을 맡은 강사님들께 속으로 내심 눈치가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인사팀 팀장님이 회사 연혁을 소개하는 시간에 들은 짧은 이야기가 오래도록 생각이 난다.

그는 기대 없는 눈빛으로, 하지만 힘을 실은 목소리로 회장님을 소개했다.

회장님은 누구보다 대우받고 계시지만, 아직도 회사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면

비치된 핸드 타월을 몇 장 뽑아 세면대 주변에 튄 물기를 말끔히 닦고 나오신다고 했다.

분명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같이 들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방식대로 나에게 필요한 태도로 재해석해서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화장실을 이용하러 들어올 누군가에게 회사에 대한 좋은 감정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일하는 공간에 대한 애정을 습관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런 행동을 습관화하셨다고 들은 것 같다.  


하지만 애사심을 오로지 회사에게서 찾으려고 들면 늘 반대의 감정과 직면한다. 회사란 분명 사랑스러운 집단이 아니다.

내 업무가 아닌 일을 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들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연차일수록 그런 상황은 잦다. 그 업무가 정말 내 일이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위의 회장님이 운영하는 회사 대청소 날에는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구둣발로 다 같이 밀대질을 해야 했다.

막내기수 두 명은 항상 통창 닦기 업무를 맡기 때문에 기다란 막대가 달린 유리닦이로 한 명이 거품을 문지르면, 옆에서 다른 한 명이 물통을 들고 쫓아다니며 서글픈 듀오가 되어 얼룩 안남기는 유리청소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건물 청소 담당자가 분명 존재하는데, 심지어는 화장실 휴지통을 비워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세면대를 닦는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대청소를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지만 성질이 난 직원들은 회장의 재산과 이기심에서 시작되어 노동부, 신고, 퇴사 등 다양한 우스갯소리가 노동요처럼 오가는 현장이었다.

그런 코너 속 코너 삶의 체험 현장이 시작되면 나와 몇몇 동료들은 그저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특히 나처럼 근속이 짧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농담으로도 궁시렁거리지 않아야 한다 생각해서 그저 가볍게 웃는 표정으로 1인분은 해내려 뛰어다녔다.

말 그대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비치도록 일단 넵. 대답하고 바닥을 반지르르하게 닦은 뒤, 다시 내 주 업무를 하러 가는 것이다.

영양가 높지 않은 일에 에너지를 쓰고 나면 슬쩍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 모든 행동과 공간은 일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려 했다.


이곳을 청소하는 것 -> 내 일과 내 실적을 위해 깨끗한 공간이 필요하다. 분명 내 업무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곳을 청소하는 것 -> 회사를 청소하는 것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깨끗한 것은 좋은 것이다.

이곳을 청소할 때 묵묵히 하는 것 -> 귀찮고 싫은 일조차 성실히 완료하는 습관에 하나의 스택을 더한다.

이곳을 청소할 때 묵묵히 하는 것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묵묵히 해내는 나를 누군가는 인식한다.

애사심을 가지는 것 -> 적어도 내가 지금 일하는 이곳에서 뿌듯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지속가능한 사회생활을 위한 카드를 하나 더 가진 사람이다. 굳이 회사를 매우 싫어하는 것은 내 발목에 모래주머니만 달아놓은 꼴일 뿐이다.

 


직원일 때와 관리직일 때의 시각은 또 달라졌다. 회사를 옮기고 전 회사보다 조직 규모는 작지만 매출도 인사도 전반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역할이 되었을 때 느낀 것이 있다.

팀장의 눈으로 팀원들을 보고 있자면 신입일수록 마냥 하기 싫어하진 않는데, 일에 디테일이 떨어지는 사람이 보인다.

말해주면 또 곧잘 하지만 말하지 않은 사소한 부분에서는 성의 없는 마무리가 늘 반복되는 상황말이다.

나도 mz이지만 직급 관계에서 그들을 보면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

아무리 가르쳐 줘도 그 속에서 불만거리만 찾아내고 눈에 훤히 보이는 엉성한 결과를 내밀며 되려 조직을 흉보기 바빠 보였다.


나는 그저 내가 성의 있게 비품을 비치하는 모습을. 성의 있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넌지시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업무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궁극적으로 내가 성장하는 데에 어떻게 양분이 되는지 가볍게 말해주었다. 이곳은 가정도 학교도 아니라서 다 큰 어른을 쫓아다니며 떠먹여 줄 수 없고, 그렇게 해서 나아지는 것은 결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랬을 때 조금씩 변화를 보이는 사람과 여전히 제자리인 사람에게는 그다음으로 내가 맡길 업무의 질이 달라졌다.


나는 늘 출근을 하자마자 청소를 해야 했다.  상담석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볼펜과 종이들을 개수 맞춰 정리하고, 먼지를 닦고 구석구석을 뒤져 쓰레기를 버렸다. 아무리 어지르지 말라고 해도 누군가는 늘 어질렀기 때문에 단순히 귀찮다고 빼먹을 수 없는 업무의 첫 단계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단순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오전 데스크 선생님은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가 손을 보태어 주변을 보듬었다.

그 움짐임에서 애쓰려는 진심이 보여서 그녀에게 간단한 시간표 제작을 맡겨 보았다. 프로그램과 기존 틀을 알려주며 간단한 색상수정만 부탁하였고, 옆자리의 정직원이 출근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사탕껍질을 까서 아무렇게나 데스크 위에 구겨 올려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며칠 시간이 흐르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 오전 선생님과 기분 좋게 아침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가만히 나의 업무 준비 시간을 기다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 전달 사항부터 요청했다.

나의 퇴근 이후부터 출근 전까지 벌어진 일들 중, 직원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나 내가 알아야 하는 일을 보고받는 시간은 늘 나에게 업무가 떠밀려 오는 과정일 뿐이지만 그게 내 일이기에 불만을 하진 않았다.


그녀는 평소와 같이 사소한 일들을 말하다가 확인을 부탁한다며 모니터를 봐달라고 했다.

주말 동안 두어 가지의 시간표 시안을 만들어 보았다며 어떤 요소를 어떻게 구성하였는지 열심히도 설명하였다. 찬찬히 들어보니 참 좋은 의견이라 생각이 되어서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진행해 보자고 말했다.

흰 구름이 몽글몽글 그려져 있는 귀여운 시간표는 분명 보는 이들을 위한 고심이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이 자꾸 오작동되길래 본사와 몇 차례 통화를 해서 임시대처법을 알아냈다며 담당 직원들에게 전달해 두면 좋을 것 같다고 내게 조심스레 말하였다.

그녀는 그래봐야 하루에 세네 시간 데스크에서 간단한 안내만 하면 되는 아르바이트생이었고, 그런 업무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일단 내게 전달할 생각만 할 뿐 직접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가끔 결제를 잘못 받거나 중요한 파일을 삭제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의 빛 좋은 애사심을 알기에 더 잘하고 싶은 용기를 뺏기보다는 문제를 잘 해결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동료가 되기로 했다.

그녀의 본업은 성악이었다. 긴 시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잠깐이라도 용돈벌이를 해보려고 입사했던 그녀는 넉넉한 집안의 자녀라 회사 형태의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독창회 준비로 점점 더 바빠지자 어쩔 수 없이 몇 개월 뒤에 퇴사를 해야 했지만, 그녀를 보며 애사심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녀가 가진 애사심은 대단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채우는 태도가 필요로 하는 나에게 드러나 서로의 애사심을 크게 만들어주었던 경험이었다.


누군가에게 애사심은 없어도 그만일 뿐인 구시대적인 마인드이겠지만, 분명 가진다면 한계를 넘는데 도움이 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사랑할 수 없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일에 '나를 위한' 성의를 더하는 정도로 시작해 보길 추천한다.

그것은 맨 발로 걸어가야 하는 초반에는 다소 소모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얼마 뒤 일은 손에 익었지만 무언가 조금 더 깨고 나아가야 할 때가 오면 그 사소했던 노력들이 바퀴가 되어주어서 뭐라도 타고 달릴 수 있는 경력직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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