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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둥이 Nov 18. 2023

반드시 외면당해야 하는

2. 적을 위하여

외면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운이 썩 밝지는 않다. 피하고 도외시한다는 뜻의 이 단어는 자주 사람에게 외로움과 서글픔을 안겨준다.

내가 외면당했다고 느껴졌을 때, 그 대상에게 화가 나는 것을 서운함이라는 자책의 단어로 둔갑하여 표현하는 것이 어른스럽다고들 한다. 맞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기분이 좋을 수 없는 일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의도치 않게 외면당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주로 집에 있는 데스크톱을 이용해서 업무를 본다.

글도 쓰고 작은 돈벌이도 하면서 집안일까지 잘 해내려니 늘 시간이 빠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닐 때 안 했던 일들도 아니지만 대충 하는 것이 싫어서 할 거면 확실히 하자는 성미는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었고, 직장 생활할 때보다 더 타이트하게 일정을 짜도 늘 쫓기는 느낌을 받고 있는 요즘이다.

머리로는 일단 하자라고 외치지만 주어진 일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허둥대는 나는 대충 하기 싫어서 많은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살고 있는 건물에 일층 상가는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평수가 작은 편도 아니고 위치가 대로변도 아니니 그럴만하다 싶었지만 마음 좋으신 집주인분을 생각하면 이렇게 오래 비어있어도 되는 건가 싶기는 했다.

몇 주전에 외출을 다녀와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상가 앞에서 여러 명의 사람들이 공사 장비를 트럭에서 하나씩 꺼내고 있었다.

'건물주님! 축하합니다!' 속으로 외치며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현재까지 공사소음에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분노조절이 어려운 상태까지 이르렀다.

나는 분명 내 집안에 있는데, 누군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드릴을 박는 정도로 큰 소음이 반복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다.

하필 나만의 작은 서재 공간이 가장 소음이 심한 자리라서, 무언가를 뚫는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무조건 하던 것을 멈추고 귀를 막아야 한다. 음악을 틀어두어도 소용없다. 음악소리를 완벽하게 이겨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앞으로도 어떤 소음에 시달리며 살아야 할 것 같은 비참한 미래가 그려졌다. 노트북을 간단히 챙겨서 집 앞 카페로 매일같이 도망 나가면서 생각했다.

'안 그래도 혼자 아등바등해 보려는데, 도움은 안 바라도 방해는 너무 하잖아.'

소음이란 마음으로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할수록 더욱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이렇다 할 고정수입이 없는 백수가 되니 은근히 마음이 위축되어서 뭐든 더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나씩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많은 것이 버거워지며 무언가로부터 외면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만은 나를 다독여 주길 바랐지만, 지쳐서 발을 끌며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컴컴한 밤하늘 속 뜨문뜨문 반짝이는 별 같은 한 사람의 속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둘 외면하다 보면, 결국 세상 모든 만물이 어떤 대상에 의해 외면당하는 존재일 뿐이게 된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어떤 때는 목표지향적이라 쓸데없는 감정소비를 싫어하고, 또 어떤 때에는 두루두루 예민해서 스스로 앞길에 많은 장애물을 깔아대니..

무심한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도 지 성미를 못 이기고 몸은 누워서 머리로만 계속해서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요새 특수부대 출신의 예비역들이 각 부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 벌써 시즌3가 방영 중인데,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챙겨보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다.

각 부대의 슬로건을 보면 그 조직만의 색깔과 주요 목표를 알 수 있다. 군대라는 큰 틀 안의 특수부대들은 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정말 많이 다른 조직들이었다.

매 미션이 진행될 때마다 더 유리한 부대가 존재하며 불리하다 해도 타파해 낼 수 있는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수상미션은 주로 커다란 고무보트를 들어 옮겨 바다로 뛰어들어야 했고, 패들링의 능숙도가 관건이다.

해상부대에게는 너무나 유리하겠지만, 육군소속의 부대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꽤나 불리한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나갔고 아니 더 정확하게는 그냥 아주 열심히 할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절대적인 정답도 최상도 없이 각자의 영역 안에서의 최선만이 존재하는 거구나.

저 대단한 특수부대 사람들을 다 모아서 세워두었는데 절대강자 절대 위가 보이지 않고, 그저 각각 홀로 우뚝 선 훌륭한 모습이었다. 모두 다 다른 색인데 시시한 빛깔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불리한 미션은 그저 불리한 미션일 뿐. 그들은 자신의 강점을 드러낼 수 있는 미션에 도달하기 위하여 현재의 고비를 넘기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몇 백키로의 타이어를 굴리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처음 만지는 총기를 다뤄야 하는 고난은 계속해서 그들 앞에 던져졌지만, 한 참가자가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려운 거 할 때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냥 해야 합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저런 비슷한 말을 한 것을 보았을 때는 솔직히 완벽히 와닿지 않았다.

전형적인 전략가 유형인 나는 인상을 구기며 생각했다.

그래도 생각을 안 하면 샛길로 빠지는 실수를 할 수 도 있는데.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 말 은근히 위험하다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던 참가자는 계속해서 정말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매 회차마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이제는 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실패할게 두려워서 자꾸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스스로를 믿고 그냥 밀어붙여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당장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이 쌓여서 분명 거름이 되어줄 테니, 그렇게 끝을 본 경험을 탄탄히 쌓다 보면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포함한 노하우가 생긴다.


그리고 만약 정말 실패를 맞이하게 되더라도 되려 당당해지던 그들은 빛나는 얼굴로 말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후회가 없습니다."

전략도 좋고 생각도 좋고 다 좋은데, 무엇보다도 정말 숨이 끊어질 것처럼 최선을 다 해보았기 때문에 결과가 실패이더라도 분명 자신은 얻은 게 더 많다고 확신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오히려 그 중압감에 내가 짓눌렸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신념도 중요하지만, 주먹을 꽉 쥐고 끌고 나가는 신체적 의지가 반드시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오로지 외면당해야 할 것은 어지러운 때의 지독한 내 감정이었다. 그거 하나 지키자고 모든 것을 흐트러뜨리며 끌어안은 고요는 당당하지 못했다. 개운하지도 진정으로 편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니 나는 평소에 꽤나 내 감정에 오냐오냐한 편인 것 같다.

지칠 때는 틈틈이 쉬어가며 결론적으로도 대부분 잘 해낸다. 참 뿌듯해서 제 어깨가 으쓱할 때도 자주 있다.

아침마다 옷장에서 그날에 맞는 옷을 골라 입듯이 생각이나 기분도 그때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잘 해내고 있고, 지금은 너무 생각하지 않아야 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뒷일은 알아서들 하라지.'


갑자기 바람 빠진 웃음이 툭 새어 나왔다.

상념에서 빠져나오려는 이 순간까지도 자기 검열과 사유의 확장을 놓지 못하는 나는 정말 못 말리는 예민자 인가 보다.

하지만 내 세계에서의 나는 최상이고 최우선이다.

그리고 어차피 매번 똑같은 실수로 외면의 도미노 속에 또 걸어 들어가겠지만, 이내 용기를 내어 그곳을 빠져나올 것이다.

그 과정은 점점 쉬어져서 최정예 특수부대원처럼 여러 방면에서 우뚝 서서 참 멋지다고 느껴지면 좋겠다.


도망쳐간 카페를 빠져나와 집으로 걸어갔다. 캄캄해진 밤인데도 상가 안은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몇 초 망설이다가 씩씩하게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안녕하세요. 혹시 언제쯤 공사가 끝날까요?”

“다음주안에는 끝날 거예요. 이제 시끄러운 작업은 다 끝났습니다. 많이 시끄러우셨어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끝나는 날짜를 알았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집에 돌아와 곧바로 책상에 앉아 내 입맛에 맞게 그의 말을 조금 손보았다. 노트 한 구석에 적어두고 형광펜칠을 해서 두고두고 눈에 띄게 해 두었다.


"생각도 실컷 하고, 실수도 안 할 수 없어. 그냥 해. 그게 니 최선일 거야.

그리고 너무 늦지 않게만 움직이자. 가장 먼저 너의 구렁텅이 같은 마음만 외면해.

그러면 너는 누구에게도 외면당하거나 외면할 필요가 없어질 거야.

스스로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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